예상 표절 - 문학과 예술의 전통적 연대기를 전복하여 무한히 확장된 독서의 세계로 빠져들다 패러독스 3
피에르 바야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여름언덕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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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상표절, 독서 그리고 글쓰기의 지평을 활짝 열어젖힌 책, 인간지성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멋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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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책들 - 어느 누구도 영원히 읽지 못할 그 작품
조르지오 반 스트라텐 지음, 노상미 옮김 / 뮤진트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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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책들'을 위한 진혼곡

........(스트라텐 저, 노상미 역. 뮤진트리)

 

  없는 책의 서지목록을 작성한 적이 있다.

  본 적은 없지만, 어딘가 있었으면 하는 책쓰인 적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책알렉산드로스나 바티칸 서고 아래쪽에서 오랜 세월 잠들어 있는, 하지만 아무도 그 존재를 확인한 적이 없는 책. 크세르크세스의 말발굽이 휩쓸고 간 이즈미르의 모래언덕에서 오랜 세월 풍화를 견디고 있을지도 모를...... 부재의 이유야 얼마든지 있는 법이다. 시간은 책과 기억에 대해 무자비하고 책의 질료인 종이는 너무나 쉽게 부스러진다. 게다가 불은 또 얼마나 쉽게 종이를 소멸시키는가.

 

     시학 제ll. 희극에 관하여

     압살롬의 변명

     오디세우스의 재출항

     사라진 도시, 우르의 인명부

     비잔티움 도서관 서지목록

     단테와 호메로스의 대화.........

 

  부재의 이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화이든 망각이든 아직 쓰이지 않았든, 내가 작성한 서지목록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무지로 인해  가치를 얻는다. 내가 아직 만나지 못했다 해서 이 책이 쓰이지 않았다는 근거는 없으니까. 이 세계는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것의 존재를 허락하지 않는가. 그러니 서지목록을 작성하는 나의 작업도 그저 바램의 투사만은 아닐 것이다

 

2. ‘사라진 책들을 위한 진혼곡

  스트라텐의 책 사라진 책들은 저자가 알고 있는, 하지만 지금은 현존하지 않는 책에 대한 진혼곡이다. 검열이나 소실 부주의 또는 고의적인 훼손 등 그가 추적하는 책이 사라지게 된 배경은 모두 다르다. 책은 사람의 이야기다. 사람의 이야기가 좋을 수만은 없고 더욱이 사회적인 위치가 있는 공인이라면 자신의 치부가 쓰여진 책을 어떻게든 소멸시키려고 할 것이다. 스트레텐이 다루는 책은 모두 8권이다.

   첫째 책은 이탈리아의 유명작가 로마노 빌렌치의 소설 거리. 저자는 이 책의 원고를 읽은 적이 있지만 출판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그의 아내에 의해 소실되었다. 개인의 사적인 보호와 문화유산으로서의 책의 가치에 대한 비중 그리고 그 경계는 어디쯤인지 저자는 의미있는 질문을 던진다.

  두 번째 책은 바이런의 자서전이다. 그는 수많은 여성과 염문을 뿌린 옴므파탈(homme fatal)이었을 뿐만 아니라 여동생과의 근친상간으로 세간의 욕을 먹었고 특히 당시에는 사형에까지 처해졌던 범죄인 동성애의 혐의까지 받고 있었다. 바이런이야 그렇다치고 책이 출판된다면 그와 염문을 뿌렸던 동성의 연인들은 사회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바이런은 출판업자에게 2000파운드를 받고 원고를 넘겼지만 결국 불 속으로 사라졌다.

   세 번째 책은 헤밍웨이의 처녀작을 비롯한 초기 3년간의 저작이다. 이 책은 기차의 선반에 올려놓았다가 도둑을 맞았고 사라졌다. 헤밍웨이는 이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통스러워했다. 초기의 작품은 미숙한 점이 많아. 그러니까 없어진 게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구... 지인들은 그를 위로하지만, 그가 쏟은 열정이 보상될 수는 없을 것이다.  

  네 번째 책은 폴란드의 유명작가 브루노 슐츠의 메시아. 슐츠의 죽음은 어이가 없다. 나치의 두 장교가 서로 말다툼을 하다가 홧김에 살해한 것이다. 죽기 전에 슐츠는 메시아라는 소설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 주었지만 전쟁의 와중에 출판되지 못했고 사라졌다.

  다섯 번째 책은 고골리의 죽은 혼이다. 이 책은 저자의 완벽주의에 의해 끊임없이 다듬어지다가 파기된 작품이다. 태워졌는지 분실되었는지 아니면 완성작인지 미완성작인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소설이 쓰여졌고 지금은 없다는 것.

   여섯 번째는 영국의 작가 라우리의 신곡이다. 단테의 신곡과 같은 형식을 취한 작품이었는데 화재로 인해 그의 집이 불타면서 함께 소실되었다. 지옥편이 일부 남아 전하기는 하지만, 지옥과 연옥 천국에 이르는 단테의 신곡과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는지는 우리의 상상에 맞길 수밖에 없다.

  일곱 번째는 발터 벤야민의 역작들. 그의 책은 죽기 전에 바타이유에게 아케이드 프로젝트, 아렌트에게 역사철학 테제원고를 넘겨 살아 남았지만 그 외의 수많은 역작은 모두 사라졌다. 작가는 이 책이 언젠가 어디에서 불쑥 나타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는다.

  마지막은 미국의 시인 실비아 플라스가 썼다는 이중 노출이다. 실비아는 그의 산문집에서 이 책에 대하여 말한다. 하지만 그의 소설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의 남편이었던 휴즈는 조지아 대학교에 한 묶음의 문서를 맡긴다. 실비아 사후 60, 그러니까 2022년까지 비공개로 할 것을 요구한다. 2년 후면 실비아의 유고가 다시 세상에 빛을 보게 될까.

 

3. 사라진 책은 태어날 책

  8권의 책이 사라진 이유는 모두 다르다. 부주의로 인해 잃어버리거나 화재로 인해 소실되고 어떤 책은 고의로 훼손된다. 사회적 또는 정치적인 검열로 인해 금서가 되거나 완벽을 지향하는 자기검열의 덫에 걸리기도 한다. 이렇게 소멸되는 책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은 작가를 아끼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큰 상실감을 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멸은 이 세계를 지탱하는 힘이다. 소멸이 곧 생성의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이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렇다. 씨알의 썩음이 새 봄의 향연을 펼치고 가슴 아린 죽음이 새 생명의 자양이 된다. 이 세계를 움직이는 법륜의 유일한 원칙이 있다면 소멸과 생성의 순환이다.

   지금 없는 책, 사라진 책 역시 그러한 순환의 고리에 잠시 머무는 것으로 여겨도 좋지 않을까. 나의 서지목록은 치기 어린 언롱에 불과하다. 그러나 누군가 나의 서투른 작업을 보고 같은 제목의 책을 쓸 생각을 한다면 그렇게 무의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구지 말하자면 서지목록이 서가에 꽂혀진 책과 반드시 대칭을 이루어야 할 이유도 없다. 이 세계에 있는 책이 아니라 있어야 할 책에 대하여 서지목록이 자리 한 켠을 내어준다고 해도 그렇게 큰 낭비는 아닐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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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은 이 세계를 지탱하는 힘이다.
소멸이 곧 생성의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이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렇다. 씨알의 썩음이 새 봄의 향연을 펼치고 가슴 아린 죽음이 새 생명의 자양이 된다. 이 세계를 움직이는 법륜의 유일한 원칙이 있다면 소멸과 생성의 순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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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책들 - 어느 누구도 영원히 읽지 못할 그 작품
조르지오 반 스트라텐 지음, 노상미 옮김 / 뮤진트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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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책은 생성의 질료로서 작용한다. 저자가 찾아나서는 책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사라졌다. 그러나 모든 것이 순환하는 이 세계의 법칙으로 볼 때 사라진 책은 누군가의 질료가 되어 다시 생성될 것이다. 너무나 아름답고 책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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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수수께끼
세스 노터봄 지음, 금경숙 옮김 / 뮤진트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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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수수께끼는 히에로니무스 자체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그림이 탄생한 배경도 수수께끼지만 이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노터봄의 글도 정말 아름답다. 그림과 언어의 틈, 그리고 화가와 너터봄 사이에서 깊이 있는 시선으로 작품을 이해하고 우리 말로 옮겨놓은 번역가에게도 고마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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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수수께끼
세스 노터봄 지음, 금경숙 옮김 / 뮤진트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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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에로니무스의 그림을 처음 접한다.

히에로니무스라고 하면, 보통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스어로 쓰여진 수많은 저서를 라틴어로 옮겨놓은 카톨릭 교부를 생각할 것이다.

불가타 성서를 비롯해 수많은 그리스어 서적이 그의 손에 의해 다시 태어났으니까.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니다. 히에로니무스(1450~1516)는 네달란드의 화가다.

이렇게 상상의 날개를 활짝 핀 그림은 처음 보았다.

스페인 프레도 미술관에 다녀온 사람들이 다음에 가면

제롬(영어식으로 히에로니무스는 제롬으로 불린다)의 그림을 보고오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건성으로 들었는데, 이렇게 화집으로 보니 정말 놀라웠다. 

15세기에 그려진 초현실주의 작품 아니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나 그려질 그림 같았다.

 

이 책은 세스 노터봄이 히에로니무스의 그림을 보면서 그림과 감상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변주해 나간 책이다. 한 마디로 놀랍다. 노터봄의 생각을 따라가다보면

인류와 예술이 얼마나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문명을 형성해 왔는지 생각하게 된다.

알타미라나 쇼베의 동굴에서 발견된 3만년 전의 그림, 수많은 동물의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위작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마도 히에로니무스의 그림을 다른 설명없이 15세기에 그려진 것이라고 한다면

나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20세기의 초현실주의자들이 사물의 관계를 해체하고 기존의 이해를 뒤집었던 일을 히에로니무스는 이미 15세기에 혼자 화실에 웅크리고 앉아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운 책이다. 히에로니무스의 그림도 그렇지만 그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노터봄의 생각도 놀랍다. 이렇게 어렵고 중의적인 표현으로 가득한 노터봄의 생각을 우리말로 옮긴 번역가도 놀랍다. 금경숙의 이력을 보니 공학자다. 나도 공학을 하지만, 공학자들의 장점중의 하나는 분석적인 읽기가 뛰어나다는 것. 노터봄의 원작과 그 행간에 숨겨져 있는 생각까지 옮겨놓은 듯한 번역가 금경숙님에게도 고마움을 느낀다.

롤랑 바르트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기억도 정확하게 재현하지 못한다. 우리 앞에는 항상 숱한 장애물이 가로 놓여있기 때문...
롤랑 바르트를 인용한 노터붐의 말은 히에로니무스의 작품을 우리가 어떻게 감상해야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열쇠로 이해된다. 쉽지 않은 책이지만 노터봄의 말을 한 줄 한 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15세기, 촛볼이 밝혀진 히에로니무스의 화실에 닿아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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