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수수께끼
세스 노터봄 지음, 금경숙 옮김 / 뮤진트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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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에로니무스의 그림을 처음 접한다.

히에로니무스라고 하면, 보통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스어로 쓰여진 수많은 저서를 라틴어로 옮겨놓은 카톨릭 교부를 생각할 것이다.

불가타 성서를 비롯해 수많은 그리스어 서적이 그의 손에 의해 다시 태어났으니까.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니다. 히에로니무스(1450~1516)는 네달란드의 화가다.

이렇게 상상의 날개를 활짝 핀 그림은 처음 보았다.

스페인 프레도 미술관에 다녀온 사람들이 다음에 가면

제롬(영어식으로 히에로니무스는 제롬으로 불린다)의 그림을 보고오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건성으로 들었는데, 이렇게 화집으로 보니 정말 놀라웠다. 

15세기에 그려진 초현실주의 작품 아니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나 그려질 그림 같았다.

 

이 책은 세스 노터봄이 히에로니무스의 그림을 보면서 그림과 감상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변주해 나간 책이다. 한 마디로 놀랍다. 노터봄의 생각을 따라가다보면

인류와 예술이 얼마나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문명을 형성해 왔는지 생각하게 된다.

알타미라나 쇼베의 동굴에서 발견된 3만년 전의 그림, 수많은 동물의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위작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마도 히에로니무스의 그림을 다른 설명없이 15세기에 그려진 것이라고 한다면

나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20세기의 초현실주의자들이 사물의 관계를 해체하고 기존의 이해를 뒤집었던 일을 히에로니무스는 이미 15세기에 혼자 화실에 웅크리고 앉아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운 책이다. 히에로니무스의 그림도 그렇지만 그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노터봄의 생각도 놀랍다. 이렇게 어렵고 중의적인 표현으로 가득한 노터봄의 생각을 우리말로 옮긴 번역가도 놀랍다. 금경숙의 이력을 보니 공학자다. 나도 공학을 하지만, 공학자들의 장점중의 하나는 분석적인 읽기가 뛰어나다는 것. 노터봄의 원작과 그 행간에 숨겨져 있는 생각까지 옮겨놓은 듯한 번역가 금경숙님에게도 고마움을 느낀다.

롤랑 바르트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기억도 정확하게 재현하지 못한다. 우리 앞에는 항상 숱한 장애물이 가로 놓여있기 때문...
롤랑 바르트를 인용한 노터붐의 말은 히에로니무스의 작품을 우리가 어떻게 감상해야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열쇠로 이해된다. 쉽지 않은 책이지만 노터봄의 말을 한 줄 한 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15세기, 촛볼이 밝혀진 히에로니무스의 화실에 닿아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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