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1
손아람 지음 / 들녘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문학의 신예 80년대생 작가의 작품을 읽고 싶다는 단순한 동기로 고른 이 책. 작가 손아람은 딱 80년에 태어난 현재 한국 나이로 서른 살 직전에 서 있다. 내가 스물 아홉 때는 직장생활에 치이며 음지에서 고달프게 살았는데, 이 아이는 떡하니 상·하 두 권으로 된 책까지 냈구나 하는 비교심리가 가장 먼저 고개를 들었다. 재능의 축복을 받은 아이로고.

 이런 편견을 고이 담아 책을 펼쳐든 지 10분 정도 흘렀다. 손아람은 나의 생각과 전혀 다른 사람이며, 독서동기와도 동떨어진 책을 골랐음을 깨달았다. 일단 손아람은 작가가 아니고 음악가였으며, 글쓰기 재능까지 갖추었으니 축복을 받았음은 사실일지 몰라도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아 음악가로서는 불행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불행한 신체조건을 극복한 천재음악가의 감동적인 불굴도전기라든가 하는 책은 아니다. 도전을 하기는 한다. 내용으로 봐서는 천재도 뭣도 아니다. 그러나 청춘만은 시퍼런 세 명의 머슴아들이 가슴 속에 품은 음악의 꿈을 향해 무모하게 ‘레츠고’한다. 그들의 음악은 힙합이다. 쥐가 찍찍거리는 소리조차 메아리칠 듯한 음습한 클럽 대기실은 그들의 환상을 부수지만, 리듬으로 일렁이는 관객들의 환호성은 그들을 힙합의 세계에 더욱 깊이 끌어당긴다. 오르락내리락 상황의 기복을 겪지만 마침내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라는 그룹을 구성, 막 제도권에 진입해 빛을 보려던 찰나 음반사 간부의 사기로 어처구니없이 팀 해체라는 결말에 다다르고 만다.

 이른바 청춘의 불타는 도전, 그리고 시련이라는 뻔한 카피를 뽑을 만한 내용이지만 이 책이 뻔하지 않은 소설로 머물 수 있는 이유는 몇 가지 댈 수 있다.

 첫째는 실명으로 등장하는 여러 힙합가수들의 세계가 실감나게 묘사돼 있다는 점이다. 힙합의 ㅎ자도 모르는 나로서는 처음 듣는 이름이 태반이었지만 <진말페(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의 약칭)>를 다 읽고 나서는 한국의 힙합 역사를 대강이나마 꿸 수 있었다. 책 마지막 페이지에는 친절하게도 현진영, 서태지와 아이들, 조PD부터 휘성, 은지원에 이르는 한국의 힙합계보가 실려 있기도 하다. 한국 힙합계의 큰 손이 된 조PD와의 일화(실화임이 분명하다) 등도 눈길을 끈다.

 둘째는 주인공 손아람의 날카로운 시선을 따라가 보는 재미다. 책에는 손아람의 고3 시절부터 이후 최소 2년간(정확하게 몇 년째에 그들의 음악생활이 끝이 났는지는 나오지 않는다)에 걸친 이야기가 쓰여 있다. 고등학생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문턱에 선 손아람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사회의 교육이든, 대학이든지가 레이더에 걸리고 만다. 15년 경력의 노련함으로 반시간 가까이 학생을 구타해도 증거 하나 남기지 않는 담임, 그 담임의 밥벌이를 뺏기 위해 기회가 된다면 공교육을 폐지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겠다는 손아람의 악담, 그리고 모든 유의미한 정보는 답안지에 표시되어야 하는 한국교육의 현실 등등이다. 요즘 베스트셀러라는 ≪완득이≫처럼 성장소설 느낌이 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혹시 문학적 완성도를 기대한다면, 이 책은 읽지 않는 편이 낫다. 그러나 푸르뎅뎅하게 멍이 들어도 아픈 줄 모르고 달려가는 청춘이 그립다면, 혹은 그런 청춘의 심리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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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플북스 2010-05-04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손아람씨의 두번째 장편소설 <소수의견>이 출간되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