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개장의 용도
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낡고 삐걱대는 공간, 불안정한 관계, 설명되지 않는 믿음과 환상이 이 책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이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은 현실에서 한 발 비껴선 지점에서 출발하지만, 끝내 다시 현실을 바라보게 만든다. 귀신과 미신, 꿈과 같은 환상적 장치들은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만큼은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이 책의 소설들은 불안정한 인물들을 통해 ‘살아간다는 감각’이 얼마나 위태로운 균형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인물들은 저마다 결핍과 불안을 안고 살아가며, 그 감정은 설명되지 않는 믿음과 선택의 형태로 드러난다. 환상은 도피처가 아니라 외면해왔던 감정과 상황을 직면하게 만드는 통로로 작동한다.

특히 2인칭 서술이나 시점의 혼재, 현실과 꿈의 중첩 같은 서사적 장치는 독자를 안전한 관찰자의 위치에 두지 않는다. 독자는 인물의 감정과 선택을 함께 감당하며, 쉽게 해소되지 않는 질문과 여운을 마주하게 된다. 읽기를 마치고 나면 몇몇 장면과 문장, 특히 이야기의 시작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글을 읽고 쓰는 일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이처럼 섬세하고 단단한 소설들을 한 권에서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