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의 서평에서 서이제의 소설이 단단한 단편영화 같다고 한 말을 봤는데, 매우 공감한다.단편 영화들은 대개 짧은 시간에 하고자 하는 말이나 보여주고 싶은 장면을 담아내야 하기 때문에 창작자의 목소리가 크게 들릴 수 밖에 없다. 서이제의 소설도 정말 손쉽게 현실과 허구를 허물어 그 안에 내용을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첫번째에 수록된 단편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윤 감독의 취지가 '한 인물에 대한 사랑으로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계속 마음에 남았다. ‘나’가 어느 부분에서 사랑을 느꼈는지는 모르지만, 사랑을 느껴야 한다는 영화의 취지에 의식하여 감정이 생기게 된 건지… 현실과 허구가 쉴새없이 교차되며 결국 온전한 허구란 영화에 존재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 감독이나 작가가 만드는 작품의 인물들은 오로지 신과 같은 창작자에게 창조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창작자는 부모 정도에 그치고 아이와 같은 인물들의 세세한 감정과 움직임을 다 알 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성별에 크게 초점 두지 않았다는 것도 좋았다. 이 소설에서는 사랑으로 엮인 현실과 허구라는 커다란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 퀴어이든 이성애든 성별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방향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마무리가 영화의 도입부처럼 느껴지는 것도 좋았는데, 완벽히 열린 결말이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너무나 오랜만에 만난 세연과 수민은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너무나 먼 화면에서 창문 너머로, 카페 안으로, 천천히 가까워질 둘의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계속 이어나가게 된다. 시공간을 허물고 현실이 된 것 처럼 자세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