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작가 중에서도 특히 자기만의 색깔이 느껴지는 작가, 은희경씨는 글을 너무나 매력적이고 치명적으로 잘 쓰신다. 은희경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된 건 <새의 선물>이다. 열두 살 이후로는 삶을 다 알아버려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는 어린 진희의 태도에 굉장히 놀라면서도 조금씩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는 새의 선물의 속편 같은 작품이다. 주인공 진희가 어른이 되고 난 후의 이야기랄까. 서른이 된 진희는 더욱 냉소적이고 삶에 초연한,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로 자신을 철저히 구분하며 삶에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자신의 삶을 관조적인 태도로 바라보는 그녀의 태도는 여전하다.

 

 

 

서술자이자 주인공인 진희는 현석, 종태, 전남편 상현 등 세 명의 남자와 엮여 있으며 이들과 인연을 풀어가며 소설이 전개된다. 진희의 사랑방식은 로맨틱한 사랑도 아니고 무척 솔직하고 냉소적인, 일명 쿨한 사랑. 어떤 사람들에게는 약간은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다. 그녀는 사랑에서도 어느정도 균형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애인은 셋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상대에게 집착하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게 한다고 본다. 사랑이 한 곳에 쏠리면 무거워지기 때문에 짐을 나누듯 항상 만날 수 있는 애인을 나눠두는 것이다. 이 사람이 떠나도 다른 사람이 있기에 사랑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 때문에 그녀는 모든 사랑을 즐기지만 깊숙하게 들어가지 않는다. 그 상대도 유부남도 가리지 않고 다양하다.


자신의 전부를 걸어 사랑을 하기보다는 상처 입기 두려워 어느 정도 거리를 띄우는 사랑을. 사랑을 즐기되 몰입하기 않는 것이다. 삶을 불신하기에 사랑도 불신하는 그녀는 사랑에서도 거리를 둔다. 인생에 있어 사랑은 필수이지만, 변하지 않는 사랑을 없다고 생각한다.

 


결혼과 이혼, 임신과 낙태, 불륜과 양다리까지 서슴치 않는 그녀는 사랑의 대상에 집착하기보다는 사랑이라는 행위 자체에 중심을 둔다. 사랑을 상실할 수는 있지만 사랑에 패배해서는 안된다는 것.  더 잘 사랑하기 위해 사랑에 대해 의심하고 이리저리 문제삼는 것이다다만 깊이 들어가지 않는 사랑을 고수한다. 단 하나에 매달려서 집착하게 된다면 삶은 그녀를 불행에 빠뜨릴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녀는 계속하여 방황하게 된다. 하지만  사랑이란 것은 나 혼자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통제하에 두고 싶어하는 진희에게는 더 힘들게 느껴질 것이다. 상대의 마음까지 통제하고 나만의 계획대로 할 수는 없으니까.

 

소설은 사랑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사랑에 대한 우리의 편견, 사유방식을 바꿔 놓으려는 듯하기도 하다 ' 사랑은 이러이러 해. 이런 것들이 사랑이야' 라고 선을 그어 놓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일침을 놓는 듯한 이야기. 나는 진희의  삶의 방식을 전부 다 동감하는 건 아니지만 또 어느 부분에서는 작가에게 나도 모르게 설득을 당하는 듯하다. 어떤 부분은 공감하고 이해되는 것 같기도 하고.  두고두고 곱씹어 볼만한 아리송송한 어구들이 많다.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그녀의 사랑방식이 슬프지만 약간의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너무나도 다른 사람의 삶이지만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진희의 선택과 가치관 역시 수많은 사람의 삶의 방식 중 하나이니까.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답은 없지만 우리네 삶의 방식은 모두가 다양하고 제각각이다. 그렇게 본다면 그녀 특유의 삶의 방식도 잘못된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의 사랑방식을 따라가고 싶지는 않다. 그녀가 취하는 쿨한 태도는 인생과 적당히 타협하려는, 길게 보면  사랑이든 어떤 것이든 끝을 보지 않기 때문에 또한 발전도 변화도 별로 없을 것 같아서이다. 어떤 경우에는 바닥을 찍을 만큼 온 몸을 깊게 담아 경험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랑이든 뭐든 간에.

 

 

줄거리에 중점을 두어 읽기보다는 작가의 통찰있는 문장과 글에 더 눈이 간다. 문장과 통찰 자체만 보아도 굉장히 임펙트 있는 작품이다. 단어와 단어 사이까지 촌철살인의 아포리즘은 생각을 이끌어내는 데에 탁월함이 느껴진다. 문장 그대로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 많은 소설이다.소설 중간중간 진희의 입장에서, 또는 작가의 시선으로 통찰해 놓은 문장들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착 감긴다. 책을 덮고도 여운이 남은 만한 그녀의 수많은 문장들. 진희가 살고 있는 환경, 그속에서 그녀가 바라보는 것들, 그녀의 삶의 태도와 생각들을 적은 부분들은 필사를 하고플 정도로 좋다. 정확하고 완벽한 답을 주지 않지만, 이리저리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brown_and_cony-3



마지막 페이지에 문학 평론가 김미현씨의 해설도 읽는 맛이 있다. 해설을 보고 새롭게 다시 보이는 부분도 있고, 내가 간과하고 지나갔던 부분의 의미를 좀 더 깊게 해설해주니 다시 한번 소설 앞 장을 뒤적이게 된다.

 

 

사랑에 집착하고 싶은 마음, 사랑에서 집착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도를  잘 이끌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파멸로 이끄는 것도, 사랑을 하게 만드는 것도 사랑에의 의지이니까. 의지가 과다하게 심해지면 집착이 되기도 하고  의지가 덜해지면 사랑에 냉소적으로 변해버리기도 한다. 진희는  사랑에서 집착이 싫어 관조적인 태도를 취하고  깊이 들어가는 것을 꺼려했을까? 사랑을 지혜롭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어떤 방법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진희의 사랑이 좀 더 따뜻하고  자신을 더  내보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을 하게 되면 누구나 그 마지막 사랑이 되고 싶어 하지만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다. 사람의 마음과 삶은 변하고 흘러가기 마련이기에 그 마지막이 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랑을 춤에 비유한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비록 마지막 춤을 추게 되는 것이 내가 아닐지라도 지금 현재 춤을 추는 것에 충실할 수 있기를. '마지막 춤의 대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상대와 춤을 즐기는 것이 마지막 춤을 즐기는 방법' 이라는 문장이 여운으로 계속 남는다.


 

누구나 마지막 춤 상대가 되기를 원한다. 마지막 사랑이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마지막이 언제 오는지 아는 사람이 누구인가. 음악이 언제 끊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마지막 춤의 대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상대와의 춤을 즐기는 것이 마지막 춤을 추는 방법이다.


 

우리는 누군가 만나고 헤어진다. 또 다시 누군가를 만나고 다시 헤어진다. 삶을 살면서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있듯이. 소설 속 진희도 크고 작은 만남과 헤어짐을 연속해서 겪게 된다. 이 반복은 만남과 헤어짐, 사랑과 고독, 현실과 환상, 등과 같이 짝을 이뤄 반복된다. 사랑에 관해서도 완벽한 결론은 없다. 영원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이 반복되는 것뿐이고 우리는 그 속에서 나름의 답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사랑과 고독, 우리의 인생과 그 이면에 관한 예리하고 날카로운 사유를 담은 소설을 만난 것 같다. 수려한 문장과 통찰은 어느 고전 책들에도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시적인 표현도 중간중간 있는 것 같고 은희경 작가의 색깔이 짙은 작품인 것 같다. 기억하고픈 부분이 많아 포스트잇도 많이 썼다. 촌철살인의 문장들은 많지만 아래에 대표인 예들을 몇개 적어본다.

 

     


배신은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을 하지 않는 것

(배신이야말로 하늘 아래 새로울 것이 없는 삶을 약간이나마 변형시켜 준다.)

배신과 반칙이 없는 세상이란 누군가 앞서 살았던 삶에 대한 복제일 뿐이다.

배신이란 대열에서 이탈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제 3의 것의 존재를 일깨워준다.

모든 것을 두 가지로 나누는데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제 3의 것은 불온하며 불리하겠지만 말이다

. 그 중에서 가장 불온하고 멋진 배신은 사랑이 아닐까.

사랑은 자유를 배신하고 법치주의를 배신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하고

지속되기를 거부함으로써 사랑 자체를 배신한다.

사랑은 나 스스로 만든 환상을 깨뜨려서 나 자신까지도 배신한다.

 

비는 땅에게는 생명이고 소녀에게는 그리움이나 약속이고

우산 장수와 나막신 장수의 어머니에게는 인생의 모순된 단면이며

조종사에게는 결항이고 떠나려는 사람에게는 미련,

젓은 빨랫대에게는 노동의 전조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차단기이다.

나는 현석의 뒷모습조차 보지 못했다. 보이는 것은 오직 비뿐이다.

 

 

 

 

가볍게 살고 싶다.

아무렇게라는 건 아니다. 


 


 

 나는 사랑의 소모를 두려워했다. 마치 광합성처럼 스스로 제 먹이를 만드는 녹색 식물처럼, 햇빛을 받아들이고 물을 길어올려 자기 안에서 스스로 먹이를 만드는 사랑을 원했다. 내 몸속에서 혼자 사랑이라는 먹이를 만들고 그것을 먹으며 생존해가기를 말이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황량한 겨울 들판을 헤매며 타인을 찾아 울부짖고 싶지는 않았다. 

 

   



밑줄 북북  

 

p.42

그러나 섹스의 깊이는 계속 소리만 질러대는 단조로운 고음부 코러스에 있지 않다. 무반주 첼로 연주처럼 힘 있고 유장하면서도 견딜 수 없도록 고독한 데 있다. 만약 섹스가 터질 듯한 환희의 코러스 뿐이라면 인간은 쉽게 섹스의 바닥까지 도달해버릴 것이며 그 일을 평생 되풀이하고 싶어할 리도 없다. 가장 가깝게 합해지는 순간 가장 고독하게 분리되는 어떤 부조리한 동반섹스의 순간에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p.44

삶을 불신하기 때문에 늘 불행에 대한 예상을 하고 그 긴장을 잃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이 겉으로는 강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나타날지 몰라도 실은 나의 가장 비겁한 면이다. 어떤 일에 자기의 전부를 바친다면 그것만으로 그의 삶은 광채를 얻는다. 하지만 나는 내 전부를 바친 일, 그 끝에 잠복하고 있을지도 모를 파탄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언제나 나 자신의 삶까지도 관객처럼 거리 밖에서 볼 수 있게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p.46

상대가 어색한 얘기를 꺼내려 하면 이렇게 나는 내 쪽에서 미리 비약해버림으로써 이야기의 핵심을 흐려놓을 때가 있다. 진지한 말을 농담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내 버릇이기도 했다.

 

p.75

내가 사는 것은 언제나 현재이며 나는 지속을 믿지 않는 것이다. 내가 왜 일찍부터 삶의 이면을 보기 시작했는가. 그것은 내 삶이 시작부터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차피 호의적이지 않은 내 삶에 집착하면 할수록 상처의 내압을 견디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아마 그때부터 내 삶을 일정한 거리 밖에 두고 미심쩍은 눈으로 그 이면을 엿보게 되었을 것이다.

p.85

결혼 체험이 군 복무나 현장 근무, 해외 연수의 경험처럼 그 사람의 실력을 보장해주는 이력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되지 못할 것도 없다. 어떤 문제에서 사람들은 오직 하나, 딱 한 번이어야 한다는 강박에 너무 쉽게 굴복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반드시 하나뿐라야 하는 것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결혼도 마찬가지이다.

p.92

순간에 깃들이는 짧은 공유의 느낌이 사랑의 한 조각이라고 중얼거렸던 것도 같다.

p.95

재미있는 말을 잘해주는 애인도 있었지만 나는 그보다는 말 없이 바라볼 때 기분이 좋아지는 애인 쪽에 더 마음이 끌린다. 말은 공허한 것이다. 듣기 좋은 사랑의 고백도 많이 하다 보면 지킬 수 없는 맹세가 된다.

p.108

문제라는 것은 어디에나 있다. 문제가 없다는 말은 문제삼지 않는다는 뜻일 뿐이다.

p.115

모든 사람에게는 나쁜 면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때로 그 점이 표출될 때 놀랄 필요는 없다, 이렇게 말하는 편이 좋겠다. 나 자신이 나쁘지 않다고 강변하려다 보면 나쁜 일면을 가진 보통 사람에서 벗어나 거짓된 사람, 정말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p.125

금기를 깨는 일에 두 번째, 세 번째라는 말은 없다. ‘맨 처음그 다음부터가 있을 뿐이다. 외도의 경험이 딱 한 번 있다는 말은 어딘가 어색하다. 한번도 없거나 많거나이다. 두 번째부터는 다 똑같다.

p.126

불순한 외박을 추궁당하지 않으려는 데 급급해 친구의 인격을 소모품으로 쓰고 버릴 만큼 사람은 이기적이다. 나는 그러나 그 행동이 뻔뻔스럽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삶의 우스운 면이 바로 이런 경우에 있다.


p.127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살아볼수록 인생은 상투적이다. 세상에는 언제나 흔한 일만 일어난다. 자기 자신에게는 대단한 사연일는지 몰라도 세상 전체로 보면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한 가지도 없다.

p.127

사람은 언젠가는 떠난다. 그러니 당장 사람을 붙드는 것보다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훼손시키지 않고 보전하는 것이 더 낫다. 그것은 내가 끊임없이 사랑을 원하게 되는 비결이기도 하다. 사람은 떠나보내더라도 사랑은 간직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사랑을 할 수 있다. 사랑에 환멸을 느껴버린다면 큰일이다. 삶이라는 상처를 덮어갈 소독된 거즈를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꼴이다.

p.128

이 감정이 사랑인지 아닌지, 상대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지 아닌지 따져보는 데에 사랑할 시간을 다 써버리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사랑은 누가 선물하는 것이 아니다. 저절로 오는 운명따위는 더더욱 아니다. 사랑을 하고 안 하고는 취향이며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은 엄연한 능력이다.

p.160

남자가 스스로를 초라하게 느끼고 있을 때 아내는 그 초라함에 속한다. 아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래도 괜찮다는 동반자로서의 위로이다. 그러나 애인은 다르다. 멋진 애인의 존재는 당신을 초라하지 않다는 말과 같다. 그것이 아내와 애인의 다른 점이다. 보통 생각과 달리 애인 노릇은 아내 노릇보다 결코 쉽지 않다. 애인은 늘 매력적이어야만 한다. 애인의 위상이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


p.160

사랑을 위로하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고향풍경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어떤 사람은 고향의 사진을 구해다 보여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다른 멋진 풍경으로 데려가 고향을 잊게 해줄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애인을 소개해 줘 풍경에 대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할 수도 있다. 삶은 우리의 정면에만 놓여 있는 게 아니다.

p.163

나는 사랑했던 남자가 행복하게 살아서 내게 잊혀지기를 바랐다. 사랑은 자주 오고 결국은 끝나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했어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나미가 노래했듯이 그 시절의 너를 또 만나서 사랑할 수없는 것이 사람의 슬픈 인연이다. 사람의 관계란 끝이 오면 순순히 끝내야만 한다. 아무리 사랑했더라도 그 시간이 지나가버린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듯 말이다.

p.168

맹세란 지키고 싶을 때만 유효하다. 모든 사랑의 맹세는 진실하지만, 사랑이 떠난 다음까지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그 맹세를 지킬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사랑할 때만 맹세를 지킨다. 그러므로 맹세란 아무 구속력도 없는 것이다.

p.199

결혼은 연속되는 내 삶의 가운데에 있는 하나의 마디일 뿐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내 삶의 중간 과정이다. 학년이 바뀌어 새로 받은 교과서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공부할 과목만 바뀌었을 뿐 삶이 달라질 것은 없다.

p.221

독신이란 자기 자신의 행동이나 노동을 일일이 의식하며 사는 일이다. 시든 꽃은 내가 버리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꽃병 속에서 썩어가고, 머그잔 바닥의 커피 찌꺼기도 내가 컵을 씻기 전에는 계속해서 그대로 말라붙어간다. 깨진 컵의 유리 조각도 나 아니면 처음 위치에 한없이 엎드려 있다. 신문 역시 내 손으로 들여다놓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현관에 버려져 쓸모없는 폐지가 되어간다. 어떤 순간 그런 것에 염증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하지 않은 일을 목록이라도 만들 듯 일일이 의식하게 만드는 공간에 짜증이 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동반할 존재라는 것이 귀찮고 벅차게 느껴져 화분 하나조차 두기가 싫어지는 때가 온다.


p.229

가볍게 살고 싶다.

아무렇게라는 건 아니다.

p.234

이번에도 삶은 나를 앞질러 갔다.

아무리 용의주도한 척하고, 미리 잘못될 경우를 예상함으로써 불행에 대비한다고 해도 다 소용없는 일이다. 정해진 일은 피할 수 없다. 인간이 자유의지로 자기가 갈 길을 선택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삶이 내주는 예제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뿐이다. 행동은 인간이 하지만 삶은 운명이 결정한다.

p.247

이유가 있는 사랑은 상대로 하여금 이유를 제공해야 하는 부담을 준다. 사랑이 무거워지는 것이다.

p.253

사람의 삶에 헤어짐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음을 완전히 부려놓을 수 있는 장소, 거기에서 영원히 멈출 만한 시간이란 없었다. 삶은 흘러가는 것이다. 그 흐름에 따라 주소를 옮기는 것뿐인데 일일이 헤어짐을 기억할 필요는 없다.

p.259

나는 희망을 갖는 일이 두려워. 결국 적응하게 되고, 지속되기를 바라고 그런 것들 모두. 희망을 가지는 것은 뭔가를 믿는다는거야. 당신은 그 결과가 뭐라고 생각해? 삶은 늘 우리를 속인다구. 삶은 말야. 믿으라고 있는 게 아니야. 배신을 가르쳐주기 위해 있는 거야.”

p.268

나는 사랑의 소모를 두려워했다. 마치 광합성처럼 스스로 제 먹이를 만드는 녹색 식물처럼, 햇빛을 받아들이고 물을 길어올려 자기 안에서 스스로 먹이를 만드는 사랑을 원했다. 내 몸속에서 혼자 사랑이라는 먹이를 만들고 그것을 먹으며 생존해가기를 말이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황량한 겨울 들판을 헤매며 타인을 찾아 울부짖고 싶지는 않았다.

p.273

누구나 마지막 춤 상대가 되기를 원한다. 마지막 사랑이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마지막이 언제 오는지 아는 사람이 누구인가. 음악이 언제 끊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마지막 춤의 대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상대와의 춤을 즐기는 것이 마지막 춤을 추는 방법이다. 마지막 춤을 추자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대답하면 된다. 사랑은 배신에 의해 완성된다고.

p.274

춤 상대가 누구든 무슨 상관인가. 춤을 즐기면 그만이다. 모든 게 다 마지막이다. 마지막 춤이 아닌 것은 없다. 그리고 또한 마지막 춤도 없다. 단지 춤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NOW in PARIS 나우 인 파리 - munge의 컬러링 프로젝트 NOW in 시리즈 2
munge(박상희) 지음 / 김영사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munge 작가의 컬러링북 시리즈 <나우 인 스페인>에 이어 이번엔 <나우 인 파리>를 만나게 되었어요. 예전 대학 때 파리를 다녀온 후로 반해서 또 다시 파리를 가보고 싶은 마음이 늘 가득하답니다. 특히 에펠탑의 야경은 나중에 꼭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죠. 그래서 이번 책은 색칠하는 내내 예전 파리 여행도 생각나면서 마치 지금 파리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꺅!!!

 

 

 

 

 

 

 

 나우 인 시리즈는 여러 도시를 주제로 한 컬러링 북인 만큼 색칠하는 동안 여행을 떠나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샘솟게 해주는 책같아요. 스트레스에 치여 지치고 휴식이 필요한 때, 색칠을 하다보면 마치 휴가를 떠나온 듯한 느낌도 들 거에요. 이미 사진으로 본 장소이더라도 직접 색칠을 하다보면 풍경이나 장소를 더 꼼꼼하고 세세하게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고도의(!) 집중력도 발휘되고 어떤 색을 칠할지 고민하면서 전체적인 부분과 조화도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파리하면 에펠탑이죠. 가장 먼저 손이 간 풍경이랍니다. 에펠탑은 낮의 모습과 밤의 모습이 다른 야누스적인 매력을 지녔죠. 밤의 에펠탑 조명도 매년 달라지는 듯해요. 저는 파리의 낮을 생각하며 에펠탑을 색칠해 보았어요. 에펠탑 아래 잔디밭에서 먹는 샌드위치 맛도 생각나고. 다음에 파리에 가면 에펠탑 아래에서 와인도 마셔보고 싶네요.

 

 

 

 

파리의 지도도 나와있답니다. 여행가실 때 컬러링 북을 챙겨가시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도도 보면서 색칠도 한다면 더 푹 빠져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행을 하면서 방문한 곳을 새롭게 드로잉해서 그려놓아도 멋진 나만의 컬러링 북이 되지 않을까요?

 

 

line_characters_in_love-7

 

 

스페인은 가보지 못한 곳이기에 처음 색칠할 때 낯선 느낌도 있었는데 파리편은 더 친숙하게 다가왔어요. 처음 시작하시는 분들은 여행 다녀온 곳을 먼저 선택하시면 더 쉽고 편하게 칠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여행을 하면서 행복했던 순간들도 자주 떠올라서 미소를 지으며 색칠도 하고 드로잉도 할 수 있을 거랍니다.

 

 

 



 

 

 

루부르 박물관과 물랑루즈도 칠해봅니다. 장소별로 칠하고 싶은 곳을 먼저 색칠해도 좋을 것 같아요. 루브르 박물관은 바깥도 굉장히 멋지지만 내부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죠. 너무 커서 계속 길도 헤맸지만 다리아픈 줄 모르고 열심히 구경했던 기억이 납니다.  색칠을 하다보면 나만의 색 스타일도 찾을 수 있을 거에요. 내가 어떤 색을 자주 쓰고 어떤 색 조합을 좋아하는지. 자신의 선호도와 나에 대해 더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답니다. 그런 의미에서 컬러링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활동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프랑스하면 아름다운 건축물 말고도 음식, 그리고 와인, 화장품도 유명하죠. 특히 이런 부분들을 컬러링북에 다 포함해준 작가님의 배려와 센스가 느껴집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많아서 그런지 이번 시리즈에서는 특히나 문화적인 부분들까지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답니다. 열심히 색칠하고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많아요. 슈퍼마켓에서 파는 종류별 와인들도 하나하나 찾아보기도 하고. 와인 종류까지 많이 알게 되어 일석이조이네요. 거기다  유명 화장품까지. 그 중에는 제가 써본 화장품들도 있어서 더 반가웠어요.



색칠을 하며 가장 눈이 즐거웠던 디저트 부분이랍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달달한 디저트류라 더 재밌게 꼼꼼하게 색칠했어요. 뺑오 쇼콜라, 타르트, 밀페유, 크로아상, 몽블랑, 마카롱까지.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네요. 색칠을 하다보니 너무 먹고 싶어서 결국 마카롱까지 사서 먹었어요. 달달한 마카롱을 먹으며 색칠 인증!!!

특히 eclair 에끌레어 라는 디저트를 처음 알게 되었어요. 첨엔 밀페유 같은 건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직접 사진이라도 보고 칠해야 할 것 같아 찾아보았어요. 찾아보다보니 모양도 너무 예쁘고 먹어보고 싶네요. 경리단길 쪽에 에끌레어 맛집이 있다던데 꼭 가봐야겠어요. 무슨 맛일까 계속 궁금하네요. 블로거님의 후기로는 다들 너무 맛있다고 극찬!!!  색칠하다보니 새로운 정보까지 알게 되고 ​신기했어요.

moon_and_james-1

책 첫장에 언급되 있듯이 컬러링 북의 목적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휴식과 자유라고 생각해요. 색칠에 부담을 느끼지 말고 원하는 색으로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칠하라고 저자도 이야기하고 있답니다. 꼭 똑같이 칠하거나 꼼꼼하게 하려고 너무 애쓰다보면 도리어 짜증이 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절대 부담을 느끼지 말고, 자신만의 느낌대로 자유롭게 칠하시길 권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파리 컬러링 북이라 더 애착이 가네요. 낭만과 사랑의 도시 파리를 한껏 느끼고 싶은 분들께 권하는 책입니다. 여행하는 기분도 느끼고 스트레스도 풀고 자유로움을 만끽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요. 또 다른 도시의 컬러링북도 꼭 해보고 싶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의 법칙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편혜영 작가님의 신작 <선의 법칙>. 책 표지부터 마음을 끌었던 소설이다. 나는 책을 볼 때 표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표지는 소설의 주제를 보여주기도 하고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표현해주기도 한다. 궁금증을 일으키는 표지에는 나도 모르게 손이 가게 된다. 요즘은 북디자인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자가 많아 그런지 출판사에서도 표지 선택에 독자들의 의견을 많이 묻기도 한다. 이번 책도 독자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결정된 책이라 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때부터 끌렸던 표지가 책으로 나오게 되어 더 인상적이다. 연필로 그려진 차분한 감긴 눈. 어떤 의미일까? ()의 법칙인지, ()의 법칙인지 이중적인 의미가 들어있는 걸까? 읽기 전에 '이란 말속에 담겨 있는 많은 의미들을 생각해보았다



사람들은 각자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서로에게 언제나 영향을 미치며 살아간다. 인간의 삶은 타인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고 받는다. 설사 모르는 타인이라 할지라도. 하지만 살다보면 이것을 쉽게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닌데, 나 혼자만의 세계에서 우리는 타인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선의 법칙은 이런 것을 포착한 소설이 아닐까.


가스폭발 사고로 아버지와 집을 잃은 윤세오의 이야기. 갑작스럽게 걸려온 전화로 동생의 죽음을 알게 된 신기정의 이야기. 이 두 이야기가 맞물려 진행된다. 작가의 눈으로 본 두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각자의 이야기가 있으며 서로 관계가 맞물리기도 한다. 두 인물 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두 인물 사이에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읽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두 인물들을 연관시켜 보기도 했다. 이야기를 읽을수록 교묘하게 선처럼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어렴풋이 신기정과 윤세오 모두 그들과 연계된 사람들의 죽음으로 부터 삶이 변한다. 윤세오는 '복수'를 위해서 살아가기로 한다. 신기정은 동생의 죽음의 의미를 찾기로 한다.

 

 

윤세오는 아버지의 죽음을 보고 아버지의 죽음의 원인을 찾기 시작한다. 자살로 추정하는 경찰과는 달리 윤세오는 아버지에게 빚을 독촉하러 오던 이수호라는 인물을 떠올린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을 야기한 존재가 이수호라고 단정짓고 증오를 키우게 된다. 신기정 또한 동생의 죽음을 더듬어가다가 동생의 휴대폰에서 윤세오라는 인물을 발견하게 된다. 윤세오과 연결된 이수호, 신기정과 연결된 원도준이란 인물까지 각 인물들은 비슷한 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윤세오와 부이, 신기정의 동생으로 연결되는 고리는 여러 인물들 간의 관계성을 형성시키며 독자들을 궁금하게 만든다. 이 셋은 도대체 어떤 관계일까?

 


윤세오와 부이, 신기정을 중심으로 형성된 다단계 회사의 모습을 보며 참혹함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조미연이란 친구가 윤세오를 처음 다단계에 끌어들일 때, 그리고 윤세오만 남기고 떠나버릴 때, 윤세오가 결국 부이를 끌어들일 때, 그리고 다단계 회사 속에서의 삶 그 모든 과정 속에서의 인간 군상의 모습을 아주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인간을 서로 갉아먹는 밑천으로 만드는 그 과정이 사실적이면서도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어 작가가 현실을 굉장히 자세히 그리고 세밀하게 그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leonard_special-24

서로가 서로를 밑천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 과연 그것을 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라면 그러지 않을 것이라 확언하는 사람이라도 그 상황, 현실에 처하면 모르는 것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법이니까. 책 속의 한 문장이 이를 잘 보여준다.


다 절대로 그럴 리 없는 사람들이 해요. 인간은 원래 그럴 리 없는 존재거든요. 죄다 그럴 것 같은 사람뿐이면 무서워서 어떻게 살겠습니까. 사람은요, 성추행할리 없는데 그렇게 하고요, 사기칠 리 없는데 사기칩니다. 물론 자살할 리 없는데 자살하고요.”

 

 

또한 똑같은 상황을 겪고 나서도 다른 선택을 하게 된 인물들. 그 차이는 무엇일까? 작은 차이일 수도 있겠고, 어느 한 순간, 한 점에서 그 차이가 생겼을 수도 있겠다. 사람에게 모든 일은 다르게 다가오는 법이고 받아들이는 것도 다르니까.

 

 

선에 대한 개념을 생각하며 다양한 인물들 간의 이야기를 따라 읽다보면 소설은 매력적이고 만족스럽게 끝나게 된다. 신기정의 동생 이야기가 더 자세히 영향력 있게 나왔더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신기정이 윤세오를 찾아가며 동생의 죽음을 밝히려고 했는데 동생의 삶에 대해서는 많이 나와 있지 않아 궁금함이 많았다.

 

 

데면데면한 관계였던 동생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관계의 의미, 삶의 자세를 다시 생각해보는 신기정의 모습.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아버지에 대해 더 큰 관심과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된 윤세오의 모습. 그 속에서 우리도 죽음과 삶, 삶과 죽음, 그리고 자신과 타인이란 존재에 대해 더 고찰하게 될 것이다.

 


사람은 무엇인가?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각자의 삶의 방식 또한 다양하다. 무엇이 선하고 바른 삶이라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궁금하다. 수많은 점 같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도 괜찮은 삶이란 무엇일까? 절대선과 절대악도 없다고 본다. 하지만 그 속에는 사람이 존재한다. 사람이란 본래 그럴 일 없는 일도 하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면서 선이라는 말에 담긴 의미를 곰곰이 떠올려본다.

 

 

선의 법칙에서 선은 바르고 착한 것도 떠오르지만 연결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삶을 지탱해주는 선의 법칙. 적극적으로 보면 타인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이 될 것이다. 소극적으로 보면 연결은 타인이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를 인정해주는 것이 아닐까. 존재 자체를 인정해주고 타인의 삶 자체를 인정해주는 것. 그 속에서 인간은 삶을 지속하고 싶어질 마음을 더 가지게 될 것이다. 누군가 삶을 끊고 싶어질 때 다른 누군가 그 삶을 이어질 수 있게 선을 연결해주는 마음. 그러한 다양한 삶이 연결되며 수많은 선들이 이어질 때 우리 사회는 연대할 수 있을거라 기대해 본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먹먹하면서도 새로운 희망을 감싸안은 듯한 느낌이 든다. 작가는 윤세오의 아버지, 그리고 신기정의 동생이 자살했는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독자의 추측에 맡기며 열린 결말을 보여준다. 책을 덮으며 다시 책 표지를 보니 감겨있는 눈 그림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 사람은 죽은 신기정의 동생일까? 생각 중인 신기정이나 윤세오의 모습일까? 아니면 자고 있는 것일까? 표지도 책처럼 열려 있는 느낌을 준다. 모든 것은 전부 다 알 수 없다는 사실. 그려진 인물의 눈만으로는 다 알 수 없다. 본다는 것의 의미도 그냥 눈을 떠서 보는 것이 진정으로 본다는 것이 아니듯. 사람과 삶 또한 겉으로만 보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빙산의 일각같은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다 아는 척, 다 이해하는 척하는 사람들에게 경고장을 날리는 것 같다. 겸손함과 존중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인상 깊었던 마지막 애도 장면을 실어본다.

 

동생이 지금 이 자리에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없으리라는 사실에 슬퍼하는 일, 삶의 마지막 순간 홀로 있었을 동생을 애틋해하는 일이었다. 지금 엄마가 그러는 것처럼, 미안함이나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동생이 그리워서. 그것이 애도의 첫 번째 순서였다.

다른 이유 다 제쳐두고 전적으로 그 사람이 그리워서 애도하는 장면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맞닥들이는 현실 속에서 수많은 이유와 뭔가의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제일 먼저 해야할 일, 사람이 우선이 되는 행위를 제쳐두고 부수적인 것들에 얽매여 있는 건 아닌지. 전적으로 그 사람을 위해, 한 존재에 대한 온전한 말과 행동이 얼마나 있었는지 다시 한번 되새겨 볼 시간이다.

 

 

편혜영씨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선의 법칙>은 편혜영 작가에 대한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극심한 사회문제인 다단계, 3금융권의 문제, 돈이 우선시되는 삶 속에서 악착같이 살아가는 사람들,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고발하는 듯하면서도 담담하게 보여준다.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움과 섬세한을 지닌 작가,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꼭 읽어봐야겠다.

 

 

 

 

 

 

 

밑줄 북북

   


p.42

그런데요, 이런 일은 다 절대로 그럴 리 없는 사람들이 해요. 인간은 원래 그럴 리 없는 존재거든요. 죄다 그럴 것 같은 사람뿐이면 무서워서 어떻게 살겠습니까. 사람은요, 성추행할리 없는데 그렇게 하고요, 사기칠 리 없는데 사기칩니다. 물론 자살할 리 없는데 자살하고요.”


p.53

연기는 신기정이 무난히 선생 역할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상담을 청하는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고민될 때, 감정 표출이 정당한지 의심스러울 때, 통제할 수 없는 아이들 때문에 화가 날 때면 자신이 선생 역할로 거대한 실험극에 참여했다고 생각했다.

p.65

언제나 똑같은 모습으로, 수도 없이, 열을 지어 그런 날들이 지나갈 것이다. 미래는 캄캄한 복도일 것이다. 아무리 더듬더듬 찾아가도 복도 끝에 나 있는 문은 꽉 잠겨 있겠지.

p.74

시작한다고 해서 시작되는 것은 없고 끝낸다고 해서 끝나는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윤세오는 이 일에 분명한 시작점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모든 것을 결정짓는 단 하나의 지점. 이전과의 연속성이 깨지는 지점. 많은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 순간부터 모든 게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는 지점.

p.75

지금껏 알던 삶이 언제든지 작동을 멈추거나 방향을 바꾸거나 짐작할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는 불확실한 것임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p.96

악의가 악이 되는 것은 언제부터일까. 상상하고 품는 것만으로 악이 되는 걸까, 실행될 때 비로소 악이 될까, 실행하더라도 실패하면 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p.96

윤세오에게 악의는 차갑지만 뜨겁고 단단하지만 여리고 뭉툭하지만 날카롭고 묵직하지만 가벼운 무기와 같았다. 마음이 용광로처럼 들끓다가 얼음처럼 차가워지는 것은, 그 주기가 잦고 빨라진 것은 악의의 본성 탓이었다.

p.104

동생을 홀로 죽게 했다는 죄책감을 덜고 자신을 괴롭히는 생각들로부터 벗어나려고 시작한 일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지금의 처지를 상기시키는 것으로부터, 원도준의 분노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동생만큼 그 자리를 완벽하게 채워주는 것은 없었다.

p.120

어디로 선을 긋건, 윤세오-동생-부이로 연결되는 선이건, 동생-부이-윤세오로 이어지는 선이건, 그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상상 속에서는 모든 게 가능했다. 그 세 이름 중 신기정이 제대로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신기정은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동시에 각자의 자리에 머무는 그 선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마치 거기에 그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p.120

함께 연결되어 있던 시절에는 그들도 차마 몰랐을 것이다. 그들 중 누군가 몇 년 후 외로이 죽음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그들 누구도 그 죽음을 애도하는 일에 참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p.131

윤세오에게 악의는 일시적으로 파동을 일으키고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었다. 이수호와의 아침 출근길 동행 때마다 그것을 확인했다. 악의는 생활에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생활을 부추겼다.이수호와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그 일을 치를 수 있다고 생각해야 비로소 보통의 일상이 가능해졌다.

p.135

일단 마음에 품은 악의는 없던 것이 될 수 없었다.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내면을 좀먹었다. 이수호를 떠올리면 윤세오는 쉽게 상처와 거짓말과 죽음과 분노의 세계로, 협박과 조롱과 폭력과 비아냥이 빈번한 곳으로 돌아갔다.

p.185

그런 생각이 들면 장도리를 찾아 쥐었다. 이수호를 겨냥하는 게 아니었다. 불행을 곱씹는 일에 최선을 다한 스스로에게, 제 인생을 후회하느라 주변을 돌보지 않은 자신에게, 아빠의 외로움과 고통을 모른 척한 무심한 자신에게 겨누었다. 팔에 힘을 주지는 않았다. 그 정도의 용기는 없었다.

p.196

동생을 외로이 방치한 사람이라면 멀리 갈 것도 없이 신기정 자신이었다. 충분히 스스로를 경멸했다. 간혹 동생이 그걸 깨닫게 하려고 신기정을 윤세오의 좁은 고시원에 보내고 부이라는 사람을 찾게 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p.208

무엇이 동생은 살아남는 데 실패하게 하고 윤세오와 부이는 성공하게 했을까. 어떤 사람에게는 절망이 삶의 끝이 되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어째서 절망이 또다른 시작이나 그저 일상이 되는 것일까.

p.221

시간이 지나서야 드는 생각인데, 그곳은 전당포나 다름없었다. 스스로를 저당잡힌 채 가능한 인간관계를 모두 팔아치웠다. 일을 하면 할수록 실패가 자명해졌다. 거기에서 일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화를 냈고 가까이 오지 말라고 경고했고 두 번 다시 연락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사람들의 반응만 보면 전염병에 걸린 것에 다름아니었다.

p.224

윤세오는 부이를 잘 봐두었다. 서로 연결된 존재라고 생각한 나머지 독립된 개인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부이는 언제나 자신을 먼저 생각했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알았고하고 싶은 것을 했고 원하는 대로 삶을 이끌고자 했다.


p.227

그저 찾을 수 없는 것뿐이었다. 그러니 언제고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우연은 원할 때는 못본 척하지만 원치 않을 때는 조력을 베풀기도 하니까.


p.233

죽음은 남아 있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데, 그 과정을 알려고 애쓰면 조금 나아지는 것일까. 이미 충분히 고통받고 외로워서가 아니라 그것이 결코 줄어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될 테니까.

p.234

신기정에게 자신도 같은 처지임을 털어놓지 않았다. 자주 아빠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하고 짐작하고 재구성해본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아빠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여러 번 상황을 모른 척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 사고가 일어나자마자 자신 역시 신기정처럼 아빠가 자살했으리라 생각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 신기정과 달리 아빠의 죽음에 대해 알려고 한 적이 없어서였다. 윤세오에게는 누가 아빠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하는 것만 중요했다.

p.244

윤세오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157번지가 불탔을 때 그렇게 되었다. 그 이후로 화석이 된 채로 삶을 유지해왔다. 그저 시간 속에 몸을 묻고 지냈다. 오늘 살아남아 다시 미래가 주어진다고 해도, 미래의 윤세오는 또다시 그렇게 살 것이다.

p.244

두 사람은 윤세오에게 사람이 서로 밑천이 되는 존재가 아님을 가르쳐줬다. 사람은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했다. 좋기만 한 것도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좋을 때도 있었고 나쁠 때도 있었다. 의지가 될 때도 있고 서운할 때도 있었다. 기쁨을 느끼게도 하고 화가 나게도 했다. 그게 보통의 관계였다.

p.247

삶은 언제나 상상 이상으로 깊었다. 어느 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p.266

그애는 자라면서 독립적이고 자주적으로 굴었다. 실은 엄마와 신기정이 그렇게 했다. 동생은 늘 그곳에 있었다. 가까워지기 싫어 엄마와 신기정이 가지 않았을 뿐이다. 동생이 가진, 한데 섞이지 않는 사람의 비밀과 은밀한 신비감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p.267

엄마와 서로 몸을 기대고 있는 동안 신기정은 동생을 위해 가장 먼저 했어야 할 일을 깨달았다. 죄책감을 느끼는 일도, 통화 기록을 살피는 일도, 동생이 만나지 못한 윤세오를 대신 찾는 일도 아니었다.

동생이 지금 이 자리에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없으리라는 사실에 슬퍼하는 일, 삶의 마지막 순간 홀로 있었을 동생을 애틋해하는 일이었다. 지금 엄마가 그러는 것처럼, 미안함이나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동생이 그리워서.

그것이 애도의 첫 번째 순서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셜록 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 앤터니 호로비츠 셜록 홈즈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의 영원한 히어로, 셜록홈즈. 중학교 때 황금가지에서 나온 셜록홈즈 시리즈를 처음 접했던 기억이 난다. 너무 재밌어서 푹 빠져 읽으면서 다음 권이 나오기만을 늘 기다리며 서점에 갈때마다 찾아보곤 했다. 매력적인 주인공 홈즈와 왓슨의 추리를 읽으며 셜록의 추리법에 감탄하고 동생과 따라해 보기도 하고.

 

 

누구에게나 셜록홈즈는 어린시절의 추억이자 함께 성장해온 인물일 것이다. 셜록홈즈 시리즈가 계속 나오길 바라며 아쉬움을 느낄 독자는 나뿐 아니라 굉장히 많을 듯하다. 특히 그 시리즈 중에서도 라이헨바흐 폭포 사건은 잊지 못할 사건 중 하나다. 셜록홈즈와 뗄 수 없는 숙적 제임스 모리어티가 대결을 벌인 희대의 사건!!! 이 둘은 대결 도중 종적을 감추어 세간에 사망한 걸로 결정이 난 베일에 쌓인 사건이다. 이번 책은 라이헨바흐 폭포 사건에서 감춰진 이야기를 앤터니 호로비츠라는 작가가 재구성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그 사건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숨겨진 내용들을 다른 등장인물들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고 하니 흥미가 생겼다. 물론 넓게 보면 셜록홈즈 시리즈의 연장으로 볼 수 있으니 셜록광인 나는 읽기 전부터 눈이 휘둥그레질 만했다. 저자인 앤터니 호로비츠는 셜록 홈즈 재단이 셜록홈즈 이야기를 새롭게 창조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허락한 작가라고 한다. 코난 도일이 아닌 작가가 셜록홈즈 이야기를 쓰면 자칫 작품을 망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는데 역시 기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했는데 예상외로 스토리와 인물구도 모두 탄탄하고 짜임새 있어 깜짝 놀랐다. 기회가 되다면 꼭 저자의 다른 시리즈인 실크하우스의 비밀‘도 찾아 읽어보고 싶다.

 

 

line_characters_in_love-15

 

 

 

 

 

 

이야기는 홈즈와 그의 숙명의 라이벌 악당 제임스 모리어티의 대결이 펼쳐진 라이헨바흐 폭포 사건에서 시작된다. 폭포에서 떨어져 사망한 제임스 모리어의 시체가 발견되고 홈즈는 생사가 불분명하게 된다. 이를 조사하기 위해 영국 경찰인 애설니 존스 경감이 등장한다. 한편 미국 핑커튼 사무소의 수석 탐정 프레더릭 체이스는 동료인 조너선 필그림의 죽음을 조사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오게 된다. 프레더릭 체이스는 미국에서부터 쫓고 있던 또다른 거물 악당 클래런스 덴버루가 모리어티와 교류했다는 정보를 가지고 모리어티의 시체를 조사하던 중 애설니 존슨 경감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그의 시신을 조사하던 중 편지의 메모에서 왓슨이 쓴 주홍색 연구의 일부를 발견하며 암호해독을 하기 시작한다. 영국인 경감과 미국인 탐정으로 구성된 콤비는 마치 홈즈와 왓슨의 역할을 재현하듯 모리어티와 덴버루의 범죄의 흔적을 밝혀내기 위해 의기투합한다.

 

 

홈즈 원작 시리즈에서 잠깐 조연을 맡았던 애설니 존스라는 형사가 주인공이 되어 등장하니 무척이나 반갑기도 하다. 그는 셜록에게 푹 빠져 셜록홈즈 시리즈를 몇 번이나 읽고 셜록식 수사법에 푹빠져 마치 자신이 셜록처럼 그럴듯하게 수사를 펼치기도 한다. 더불어 그의 옆에서 함께 사건을 해결해가는 미국 탐정 프레더릭 체이스는 왓슨의 위치에서 그의 수사를 관찰하고 돕기도 한다. 처음엔 어색한 느낌도 있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그럴듯한 수사와 두 사람의 콤비에 빠져 몰입해서 읽게 된다.

 

 

 

이 책은 셜록홈즈와 왓슨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책 곳곳에 셜록과 셜록홈즈 시리즈에서 나온 것들이 때때로 언급된다. 셜록홈즈 이야기에 등장했던 ‘빨간머리 클럽’에서 나온 악당 존 클레이도 다시 등장해서 무척 신기했다. 등장 모리어티와 모리어티와 연관된 여러 범죄자들, 특히 미국에서 건너온 새로운 악당 클래런스 덴버루까지 등장한다. 전체적인 작품의 구도는 애설리 존스와 프레더릭 체이스의 콤비, 그리고 클래런스 덴버루가 새로운 악당 역할을 이어받고 있는 듯이 보인다.

 

 

 

비록 홈즈와 왓슨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독자들을 사로잡을 만한 그물망처럼 꼼꼼하게 얽혀있는 이야기로 책을 다 읽은 후 다 시 첫장부터 정독하게 되는 책. 읽고 난 후 소름이 쫙 돋아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하나하나 되짚어보게 된다. 그러고 난 후 “아, 그런 의미였구나!” 다시 역추적해가는 또 한번의 재미까지. 홈즈의 원래 이야기에다 현대적인 스릴러 느낌까지 더해진 더 긴장감과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에 푹 빠져 읽게 된다. 스케일도 훨씬 크고 범죄의 현장이나 기법 또한 더 잔혹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마치 한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나 범죄 미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장면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다가온다. 거기다 암호문 풀이에다 홈즈 이야기의 핵심인 추리를 통한 문제 해결의 재미도 더해져 강약이 적절히 섞여있는 탁월한 재미를 주어 한번 책을 보면 책장이 순식간에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너무 쉽게 페이지를 넘기지 말 것을 경고하는 바이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다보면 뭔가 발견할지도 모를테니까. 독자가 직접 홈즈가 되어 추리를 한다고 생각하고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무더위를 순식간에 식혀주고 간만에 몰입하는 작품이 필요하다면 ‘모리어티의 죽음’을 읽기를 권한다. 셜록홈즈의 세계에서 시원한 여름을 보내보는게 어떨까.

 



 

밑줄 북북

 

 

p.13

그래서 내가 누구냐고? 앞으로 여러분과 동행할 사람의 정체를 밝히자면 내 이름은 프레더릭 체이스라고 해 두는 것이 좋겠고, 뉴욕에 있는 핑커턴 탐정 사무소의 수석 탐정으로 그때 당시 난생처음으로(처음이자 마지막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유럽을 찾은 길이었다.

p.112

증거를 고려했을 때 내릴 수 있는 결론이 하나뿐이라면 아무리 있을 법하지 않을 결론이라도 묵살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p.204

그이는 홈즈 씨가 쓴 책을 전부 다 읽었어요. 그의 방법을 연구하고 그의 실험을 따라했어요. 그와 함께 일을 했던 경찰들을 모조리 찾아다녔고요. 한마디로 셜록 홈즈는 그의 인생의 패러다임이 되었죠.

p.205

그이를 보호해 주세요. 그이가 어떤 사람들을 상대하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걱정스러워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인 것 같아서...... 그이는 얕은꾀라는 걸 전혀 모르는 성격이거든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의 시간들 - 이보영의 마이 힐링 북
이보영 지음 / 예담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도 나처럼 위로받기를……

배우 이보영이 건네는 사랑과 성장의 페이지

 

​배우 이보영씨가 읽은 책들이라니 궁금해진다

moon_and_james-3

 이보영은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한 문학소녀였으며, 대학에서도 국문학을 전공한, 누구보다도 책을 사랑하는 배우라고 한다. 연기 생활로 바쁜 일정이 끝나면 서점에 들러 한꺼번에 읽고 싶었던 책을 잔뜩 사오곤 하는 독서 마니아. 그녀가 독서를 통해 받은 위로와 사랑, 성장의 이야기를 풀어낸 《사랑의 시간들》이 예담에서 출간되었다.이 책에서 그녀는 자신의 서가에서 삶에 위로가 되고, 힘을 주고, 깨달음을 주었던 책들을 빼내어 그 책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책과 함께 울고 웃으며 마음에 담아두었던 내용들을 그녀는 늘 곁에 지니던 노트에 한 자 한 자 적었던 것을 모아 낸 책이다.  많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들을 직접 고르고,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와 생각들까지 정성스레 담았다고 하니 기대가 되는 책이다.

 

 

 

 

 

 

 

 

 

 

책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읽는 책은 늘 궁금한 법이다.  지하철에서도 누군가 책을 읽고 있으면 어떤 책일까 궁금해서 꼭 책 제목을 알고 싶을 정도로. 그 사람이 읽는 책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듯, 다른 사람의 서재가 늘 궁금하고 내가 읽는 책을 넘어 다른 사람들이 읽는 책도 읽고 싶어진다.

 

 

 

 

내가 책모임에 나가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부터이다. 독서 모임에서도 내가 읽은 책을 이야기 하는 것도 좋지만 다른 이들이 어떤 책을 읽는지 알게 되는 것도 큰 즐거움 중 하나다. 같은 책이지만 내가 느꼈던 것과는 다른 것들, 새로운 시야를 얻을 수도 있고, 때로는 공감을 얻기도 하고. 나는 여러 가지 책을 다 읽고픈 독서 욕심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모임에서 다른 사람이 들고온 책이나 추천한 책은 꼭 읽게 된다. 책을 읽고난 후 다른 사람이 쓴 서평이나 글도 자주 읽는 편이라 서평관련 책은 손이 간다.

leonard_special-4

 

예쁘고 연기잘하는 배우 이보영, <너의 목소리가 들려>, <내 딸 서영이> 등 그녀가 나온 드라마도 몇 편씩 봤던 기억이 난다. 그녀가 책을 좋아한다고 한다. 대학에서도 국문학을 전공하고 바쁜 일정이 끝나면 서점에 들러 한꺼번에 읽고 싶었던 책을 잔뜩 사오곤 하는 독서 마니아라고 한다. 이를 증명하듯 책 표지에는 서가에서 책을 꺼내드는 그녀의 모습이 있다. 어떤 사람이든 책을 고르고 책을 읽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 같다.

그녀는 쉴 때에는 혼자만의 공간인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위로를 받기도 하고 에너지를 충전한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나도 이보영씨와 성향이 비슷한 것 같다. 주말엔 아무데도 가지 않고 집에서 독서하는 여유로운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걸 보니.

 

책을 통해 그녀는 위로를 받았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책에서부터 위로를 받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독서를 통해 공감과 위로를 받기도 하고 아픔을 이겨내고 성장하기도 했던 시간들을 얘기해주고 있다.

 

 

 첫 장을 넘기면 그녀의 싸인이 인쇄된 부분이 나온다. 처음에 진짜 싸인인줄 알고 놀랬지만...그래도 독자들이 책을 통해 위로받기를 바라는 그녀의 마음이 전해져온다. 그녀는 자신의 서가에서 삶에 위로가 되고, 힘을 주고, 깨달음을 주었던 책들을 빼내어 그 책에 얽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녀 나름의 서평집이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경험이나 그녀의 생각도 덧붙여 있는 에세이 집이기도 하다. 같은 책을 어린 시절 읽었을 적 느낌과 그녀가 배우 생활을 하며 여러 경험을 한 후에 읽은 느낌도 같이 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그 과정 속에서 성숙하고 배워나가는 그녀의 모습에 인간적인 느낌도 많이 든다. 3년간 쓴 글들을 모아 출간한 책이라고 하니 그녀의 수첩 속 가장 가까운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바로 옆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다정한 문장들이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이다.

  목차를 보면 소설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책 목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 내가 읽은 책이 나오면 더 반가운 기분 !!! 읽다보면

책이야기 뿐만 아니라 영화나 경험담, 어린 시절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배우 ‘이보영’이라는 한 사람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화면에서 보이는 외적인 모습만 아는 것이 진짜 그 사람은 아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녀 내면의 이야기와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배우 이전에 한 사람의 독자로서 그녀가 느낀 바를 진솔하게 풀어내어 나도 무척이나 공감하며 읽었다. 읽다보면 다음 책이 궁금해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책이다. 그리 길지 않아 한 호흡에 여유있게 쉽게 읽을 수 있다.





 

 이보영씨가 책을 읽고 있는 사진도 많이 실려있다. 책을 사랑하는 배우라 그런지 서재, 거실, 침대 맡 등 집안 곳곳에는 책이 가득하다. 실제 그녀의 집에서 촬영한 사진들 속에서 그녀의 서재도 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서재를 엿보는 것만큼 매력적인 일이 있을까. 한 사람의 내밀한 마음까지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니까.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삶을 사는지 서재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그녀가 책 읽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독서하는 사진들, 메모하는 사진들까지 더해져 책을 읽다보면 그녀의 책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사진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있다.

멋진 서재를 가지는 것은 나의 꿈이기도 하다. 집 거실을 서재로 만들고 책을 사랑하는 남편과 알콩달콩 같이 책을 읽는 걸 상상하면 상상만으로도 천국일 것 같다!!!

 ​

moon_and_james-1

 

 

그녀가 읽은 책 중에 내가 읽었던 책이 나오면 반가운 기분이 들고 마치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제목은 들어봤지만 아직 못읽어본 책들, 그리고 그녀가 읽고 추천한 책들 목록을 보면서 앞으로 읽을 책이 더 많아지니 더 행복하다. 평소에도 책에 관한 책들이나 서평을 담은 책들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녀가 추천한 책들도 꼭 읽어봐야겠다. 그러고 난 뒤 다시 이 책을 읽으면 훨씬 와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직접 이보영씨를 만난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읽은 책과 그 속의 그녀의 생각을 통해 꽤 가깝게 느껴진달까. 외적인 아름다움 뿐 아니라 내적인 지혜와 아름다움까지 가진 그녀는 매력이 넘치는 배우같다. 마이 힐링 북 제목처럼 독자들에게 책으로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쉼표같은 책이다.

밑줄북북

p.22

기나긴 터널을 빠져나온 후 어떤 선택의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자문한다. 이 선택이 혹여나 오늘 나의 행복을 방해하지는 않을까?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지만 궁극적으로 나는 행복하다.

p.82

내 젊은 날을 관통하는 가장 큰 중심은 언제나 사랑이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하리라.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일만큼 나를 살아 있게 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일은 없다.

p.119

여기서 재미란 기이한 열기를 동반한 흥분 상태를 말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밀레니엄 시리즈는 내 생애에서 가장 독특한 독서 경험이었다. 책한테 반해서 어쩔 줄 모르는 기분이었달까. 라르손의 서재 어딘가에 밀레니엄 시리즈의 나머지 원고들이 숨겨져 있다가 수년 내에 세상에 나타나면 얼마나 좋을까.

p.137

<위키드>는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인생에서 누가 옳고 그르다고 일방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조금은 편협한 세계에서 살던 나에게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해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