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아이가 대체로 자동차를 좋아하는 부류와 동물, 특히 공룡을 좋아하는 부류로 나뉜다면서요. 만약 그렇게 보자면 저희 아들은 후자입니다. 길고 긴 공룡이름을 외워대며 나와의 대화를 이끌어 갈 생각이지만 제가 공룡 이름 외우기에는 영 소질이 없는지라 늘 난관이었죠. 하지만 아들이 공룡을 좋아하다보니 책의 종류도 이상하게 공룡책만 모아지더라구요. 차에 관련된 책은 상대적으로 좀 적구요. 전집 속에서도 공룡만 찾아보던 아이! 그에 비해 조심성도 많고 큰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자신감있게 표현해 버리는 아이. 책이 공룡과 관계된 것 같고, 자연사 박물관이라는 말에 집 가까운 곳에서 접해 줄 수 없었던 내용을 전해 주고 싶은 마음에 주문해서 제가 먼저 들춰 보았지요. 엄마로서 적당히 유식해 보이고 싶어서 나오는 공룡들을 미리 익혀 두려구요.그런데 왠걸요. 글자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생각했죠. 아직 글자를 다 깨치지 못한 아이에겐 제격이겠다구요. 처음 읽는 영광을 아들에게 돌려 두었습니다. 이곳 저곳 넘겨 보던 아이가 자기가 동화를 들려 주겠다더군요. 어려운 이름 몇개를 지어 넣어 전후좌우가 맞지 않는 이야기들을 늘어 놓았고 우리는 무척 행복했습니다. 책을 통해 자기의 생각을 가질 수 있었고 표현 할 수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그 후 한권의 책을 가지고 아빠 엄마 아들 순서대로 구연동화의 구연자가 되기도 하고 관객이 되기도 하며 수십가지의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의성어 의태어들을 보태고 목소리를 낮추어 가며 들어보는 글자없는 책의 읽기 과정은 영화 감독이 될 수도 있었고 새가 될 수도 있었고 공룡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면 가득 메운 공룡의 거무틱틱한 얼굴과 툭 불거진 눈도 무섭지 않았고 내 앞에 있는 친구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시간과 공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내용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읽는 시간의 길이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 책은 가족들에게 참 재미있는 책으로 기억됩니다.-지금은 이 책을 그다지 들춰보지는 않지만 너의 책장에 꽂힌 이 책을 다시 보면서 너의 어릴 적 의자 위 그 추억을 다시 챙겨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