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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라는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은 어디론가를 향하여 끝없이 펼쳐진 길이었다. 황혼녘 노을과 함께 펼쳐진 표지의 그 길은 왠지 모르게 위에 쓰여진 긴 제목과 함께 어우러져 나의 가슴을 울리게 했다. 그 길 위로 누군가, 혹은 누군가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내가 원래 신경숙씨의 신작을 기다리던 팬이기도 했지만, 서점 안을 서성이던 나의 발길을 잡은 것은 신경숙이라는 세 글자 이름보다도 그 책에서 느꼈던 알 수 없는 기묘한 기분 이었다. 책을 가슴에 안고 돌아와 첫 페이지를 펴고 폴 발레리의 '젊은 파르크'라는 시를 보았다. '눈부신 금강서으로 빛나는 외로운 이 때'를, '내가 울려는 이 때'를 누가 우느냐고 묻는 시를 읽으며 작가가 이번에 하려는 이야기 역시 그리 만만한 이야기는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한번 숨을 길게 쉬고 다음 페이지를 넘기자 건조하게 뚝뚝 끊어진 여덟 글자가 내 가슴을 콕콕 때려 왔다. 내.가.그.쪽.으.로.갈.까. 왜 작가는 글자 사이의 부드러운 여백과 맨 끝에 붙는 물을표를 떼어버리고 사이사이에 딱딱한 점들을 박아 놓았을까.
윤, 명서, 미루, 단. 표지의 버석하고 기다란, 그러나 아름다운 길을 걸어가는 네 명의 청춘이다. 이들은 서로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다만 단순히 한 마디로 정의내려질 수 없는 복잡한 실타래이다. 사랑과 상처라는 크고 무거운 짐을 온 몸으로 끌어안고 물을 건너는 이 청춘들에게 윤교수가 지어 준 '크리스토프'라는 이름은 애달프다. 그들이 등에 지고 건너편으로 건너게 해 주려는 아이는 끊임없이 이 청춘을 무겁게 한다. 그들의 다리를 휘어잡는 범람한 시대의 강물이 또한 그러하다. 리뷰라 하여 의미없이 줄거리를 나열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줄거리가 아닌 글자 하나 하나로 가슴에 박혀 들어와야 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최루탄 연기가 그득하고 잔해가 나뒹구는 아수라의 거리 속에서 마주한 윤과 명서에 대하여, 미루의 화상입은 손과 타버린 가슴의 잿더미에 대하여, 어둠 속에서 총소리와 스러져간 단이에 대하여 제대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내 곁에 놓인 노란 책뿐이라고 생각한다.
어두운 시대를 온 몸으로 뚫어가며 서로를 뜨겁게 사랑했던 이 네 명의 청춘 앞에서 나는 깊은 애잔함을 주체할 수 없었다. 신경숙 작가는 결국 또 나를 울리고 말았다. 그것은 리진, 엄마를 부탁해와 같은 다른 그녀의 소설이 주는 눈물과는 같으면서도 또 다른 차원의 눈물이었다. 그 뜨거움의 정도는 비슷하지만. 나는 눈물을 걷고 보았다. 그들은 그렇게 치열하게 몸부림치면서 그 길을 끝내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 앞에 주어진 아름답고 아픈 청춘의 길을. 미루와 단이를 떠나보낸 윤과 명서는 윤교수의 별장을 찾았다. 윤은 대문 앞에서 주저앉아 긴 울음을 토해냈고 다시 일어나 세 사람은 산으로 향했다. 하얀 눈에 발자국을 꾹꾹 눌러 담으며 산을 올랐다. 상실, 그 상처와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청춘은 성숙을 이루어 내 것이다. 윤과 명서는 서로를 사랑했지만 그들은 가까이 다가가는 대신 한 발짝 멀어지는 것을 택했다. 끊어짐도, 이어짐도 아닌 채 연결되어 있는 두 사람의 마지막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청춘'이라 불리우는 때의 출발점이자 정점에 서 있는 내게 이 책이 준 의미는 한 가지로 정리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차분하게 읽어가던 책장을 떨리는 손으로 넘기게 했고 이 책을 덮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수십 개의 종들이 울려퍼졌다. 시대의 아픔, 청춘의 고독과 사랑과 같이 일시에 마주하기 힘든 얼굴들을 대면하여 때론 감당하기 벅찬 순간도 있었다. 책으로 뜨거워지는 가슴은 그 여운과 따스함이 길게 남기 마련이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더욱 이 가슴이 쉬이 식어지지 않을 책이다. 내.가.그.쪽.으.로.갈.까. 라는 물음부터 발을 떼서 내.가.그.쪽.으.로.갈.게. 라는 답에 도달했다. 나 또한 달려나갈 수 있을까. 내가 그쪽으로 갈게라는 대답과 함께. 애타게 나의 전화기의 벨을 울리게하는 누군가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