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두 얼굴 -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나와 가족의 심리테라피
최광현 지음 / 부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가족의 두 얼굴>

소은선


#. 가족에게서

당신에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단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사랑, 친구, 평화, 봉사, 종교 등 여러 답이 떠오른다. 그래도 어쩌면 이미 지금 우리 머릿속에는 이 단어가 크게 자리 잡고 있을지 모른다. 바로 그 말, 가족.


내가 모든 것을 다 잃어 상처받고 다시 재기할 수 없을 만큼의 시련 속에 있서 내 영혼이 너덜너덜 해져 이제 나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하였을 때, 가족은 그 존재만으로 나에게 무한한 에너지를 수혈해준다. 잃었던 자신감을 찾을 수 있는 힘을 주어 나를 일어서게 한다. 다시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갈 이유를 준다. 그 어떤 철통같은 성벽보다 나에게는 내 가족만큼 나를 보호해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은 없다.


그러니 내가 가족에게서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내 인성의 미성숙함 때문이거나 내 배우자, 내 주위 사람들의 성격장애나 행동의 문제이지, 내 가족이 나도 모르는 상처를 주고 나 또한 내 가족 누군가의 영혼에 상해를 입히고 있다는 것은 당연히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이 책, <가족의 두 얼굴>을 읽기 전까지는.



#. 가족, 그 따뜻하면서도 아픈 이름

<가족의 두 얼굴>의 저자, 최광현은 유럽에서 대학병원 임상상담사와 가족치료사로 활발히 활동하였고 현재는 상담대학원 교수이자 트라우마가족치료 연구소장을 맡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뜬구름 잡는 이론을 내세워 책을 읽는 도중 길을 잃게 만드는 여느 상담책들과는 달랐다. 어려운 말로 가족의 심리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학교 안에서 그리고 외국에서 겪은 무수한 상담 사례와 경험을 토대로 그가 만난 상처 입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트라우마를 안고 성장한 가족 구성원이 향후 새로운 가정을 꾸렸을 때 그 트라우마가 어떻게 발현되어 다시 그 가족에게 아픔과 상처를 생산해내는지에 대하여 바로 내 옆 이웃의 이야기처럼 가깝고도 현실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하지만 한국 사람은 본인의 치부가 공공연히 드러나는 일에 익숙하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인지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하였을 때 내 약점과 내 마음의 장애, 그리고 모난 내 성격이 어쩌면 ‘소은선’이 자라온 가정환경과 가족구성원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지적에 자꾸 반발하고 싶었다. 부정하고 싶었고, 당신이 틀릴 수도 있을 거라고 반문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지금 내 문제에 나의 가족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믿고 싶었으니까. 책을 읽어나가면서 결국 나는 마치 내 치부를 들킨 것 마냥 얼굴이 붉어졌고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내 가족이 마치 나를 이렇게 만든 범인이었던 것처럼 원망의 마음도 생기다가, 또 어느 부분에서는 내가 가해자의 모습이었다고 느껴져 몸서리 쳐지기도 했다. 이건 분명 내가 아는 ‘가족’이 아닌데...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저자의 말과 저자가 언급하는 문제 가족의 일례에서 나는 점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서였구나, 내가 그 때 그랬던 것이...’, ‘그래! 정말 그때 내 마음이 이랬었어!’, ‘엄마가 그 당시 이런 마음이셨겠구나’, ‘아빠는 그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이제야 내 안의 상처가 어디서 오는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고 내 가족들이 겪었을 마음의 짐이 우리 가족 안에서 왔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 선택과 운명, 두 개의 얼굴

<가족의 두 얼굴>에서는 다양한 사례의 가족의 아픔이 실려 있다. 부모와 자식 사이 문제, 형제․자매 사이 문제, 부부 문제, 그리고 결혼상대자를 고르는 데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가정환경의 영향과 가족 중 한 명의 희생을 요구하는 가족의 양상까지 속속들이 우리 일상속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아버지의 모습과 닮은 남편을 고르는 딸의 대한 이야기에서는 이런 말하면 좀 우습지만 저자가 족집게 점쟁이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주위 친구들이 겪고 있는 시어머니와의 갈등이나 가족에 의해 착취당하는 내 가까운 지인의 이야기가 이 책에서 일례로 비슷하게 묘사되고 있을 때는 그 들에게 이 책을 보여주며 너의 잘못만은 아니라 가족 안에서 그 해결점을 찾아야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우리가 가족을 선택해서 구성원으로 묶이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태어나면서 자연히 가족이 형성되고 피를 나누었다는 대전제 아래 남과는 다른 끈끈한 관계에 묶여 평생을 살아간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가족 간의 인연을 끊고 사는 이들도 더러 있다. 무슨 이유에서든 ‘남’보다 못한 가족이 되어버려서 차라리 남남인 것이 서로를 위해 나은 경우, 가족은 부서지기로 결정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어쩌면 이 책 제목, <가족의 두 얼굴>에서처럼 가족이 가진 두 얼굴 중 하나의 부정적인 얼굴만을 보고 성급히 관계를 절단해버린 셈이다. 나머지 그 반대편 얼굴! 우리가 믿고 있는, 우리가 아는 가족의 본 얼굴, 따뜻하고 세상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그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었다면 가정파탄이나 가족 구성원의 해체는 생기지 않았지도 모른다.


#. 그래도 다시 가.족.

뾰족한 모서리에 팔이 긁혔다. 피가 난다. 약을 바르면 된다. 계단에서 헛발을 디뎠다. 다리가 부러졌다. 병원에 가서 깁스를 하고 몇 달간 뼈가 붙을 때까지 기다린다. 왜 아픈지 알고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아는 상처는

더 이상 상처가 아니다. 내 육체를 한 단계 더 강하게 해 줄 일종의 체력장이다.


그런데 몸 안 깊숙한 곳에서 자라는 병은 겉으로 표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먹고 온 내장과 조직을 검사하지 않는 이상, 특별히 몸에서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지 않는 이상 내 속이 아파 병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다. 가족 안에서 곪아가는 상처는 마치 이와 같다.

사랑하지만 그 만큼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가깝지만 가까운 만큼 더 깊게 찌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자식을 질식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식이라서 내 부모의 가슴을 난도질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내 남편이니까, 내 아내니까 내 혀끝에서 나가는 말이 상대방의 가슴에 아물지 않는 상처를 입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족은 아프다.

훗 날 내가 이러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더 아프다.

책 하나를 읽으면서 이렇게 몸살을 하기는 처음이다.

내가 온 마음을 다해서 나보다 더 사랑한다고 믿는 내 가족이니까.


그리 두껍지도 않은 책인데 <가족의 두 얼굴>을 통해서 가족의 심리와 트라우마, 그리고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어떻게 상처를 아물게도 할 수 있는지 그 길을 보았다. 멀고도 긴 길.

언젠가 나도 자녀를 낳고 가정을 만들었을 때,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보여주었던 가족의 두 얼굴 중 밝은 얼굴로 내 아이와 남편을 마주해야지. 그래서 그들에게 ‘우리 가족은 참 따뜻했어’라고 기억되게 하리라.

가족 안에서 받는 따뜻한 기운으로 나아가 세상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사람으로 키워주고 싶다. 나 또한 그러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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