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
한은형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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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매력적인 한국소설. 독특한 분위기의 이야기와 문체가 분명 이전의 한국소설들과는 다르다. 이 작가의 작품들을 오래 따라 읽게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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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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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책을 잡고 별생각 없이 첫문장을 읽었는데,
그 순간부터 책을 놓을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대단한 칭찬이 아니라 실제가 그랬다는 것이다.
걸림 없이, 종종 웃고 종종 심각해지며 마지막 문장까지 도착했다.
가독성이 뛰어나다는 것이 우선 느껴지는 장점이었다.
 
화자가 노인이라는 것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이나 불편함도 전혀 없었다.
일단 지적인 노인이라 매력적이었고,
게다가 이전에 연쇄살인범이었다는 것까지 별 무리 없이 받아들여져 이 또한 장점이 아닐까 한다.
 
중간중간에 출처 없이 언급되는 이야기들, 예컨대 서정주의 시나 보르헤스의 단편에서
뜻밖의 반가움을 만났다.
소설에서 오랜만에 느껴보는 종류의 기쁨이었다.
 
누구든 읽어보아도 후회 없는 쌉싸래한 소설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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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 샬리마르
살만 루슈디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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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슈디가 왜 거장인지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좋다.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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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물고기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수철 옮김 / 문학동네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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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놀라운 소설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프랑스 문단의 살아있는 신화라는 르 클레지오는 그 명성이 전혀 아깝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말하는 것이 소설이라면 그는 최고의 소설가다. 미세하고 유려한 그의 문장은 한 줄 한 줄이 감탄으로 치장하기에 적절하다. <황금물고기>는 한 소녀의 성장을 다룬 소설이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의 근원에 대해 탐색하고 있는 소설이다. '우리는 실상 모두 예술가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대답과 함께 내어놓고 있는 것이다. 삶의 진실을 찾는 일이 예술이라면 아마도 우리는 모두 예술가일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고, 그 근원을 찾으려고 한다. 소설가인 최수철은 이를 ‘표류, 혹은 근원에로의 항해’라고 표현했다. 라일라의 항해가 먿는 장면은 이러하다.

저 멀리, 길이 끝나는 곳, 마지막 오두막집 앞에, 사막이 시작되는 그곳에 검은 옷을 입은 한 노파가 텅 빈 마당으로 통하는 문을 등지고 등받이 없는 걸상에 앉아 있다. 천으로 가리지 않은 그녀의 얼굴은 불에 탄 가죽처럼 까맣고 주름살 투성이이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지 않고 자기 쪽으로 다가가는 나를 빤히 바라본다. 그녀의 눈빛은 돌처럼 냉혹하다. 그녀는 장에게 줄 암몬조개 화석만큼이나 오래되고 단단해 보인다. 그녀는 진정한 힐랄 족, 초승달 부족의 여인이다.

(중략)

더 이상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이제 나는 마침내 내 여행의 끝에 다다랐음을 안다. 어느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이곳이다. 말라붙은 소금처럼 새하얀 거리, 부동의 벽들, 까마귀 울음소리. 십오 년 전에, 영겁의 시간 전에, 물 때문에 생긴 분쟁, 우물을 놓고 벌인 싸움, 복수를 위하여 힐랄 부족의 적인 크라우이가 부족의 누군가가 나를 유괴해간 곳이 바로 이곳이다. 바닷물에 손을 담그면 물살을 거슬러올라가 어느 강의 물을 만지게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사막 먼지에 손을 올려놓으며, 나는 내가 태어난 땅을 만진다, 내 어머니의 손을 만진다.

르 클레지오 <황금물고기 中>

  문명과 자연의 사이에서 생명력이 강하고 원시적인 생동감을 간직한 주인공 라일라가 결국 고향에 닿는 장면이다. 이곳은 물리적 고향인 동시에 근원적 고향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나는 자유로우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근원을 찾은 사람은 그 뿌리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자유’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갈망하는 것이 ‘자유’아니던가. 어쩌면 그동안 우리들은 근원에서 도피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가. 이러한 화해의 손길은 르 클레지오의 여러 문장 속에 스며들어 있다. 유태인과 아랍-아프리카계의 화해, 문명과 자연의 화해, 근원과 자유의 화해. 이 따듯한 손길이 자연으로의 회귀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황금물고기’는 그래서 물살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

  열역학 제 2법칙은 닫힌계에서 총 엔트로피(무질서도)의 변화는 항상 증가하거나 일정하며 절대로 감소하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에너지 전달에는 방향이 있다는 것이다. 즉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과정들은 가역과정이 아니다.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는 방향으로 가게 되어있지만, 생명은 항상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살아왔다. 그것은 질서를 세우는 일이다. 문명은 자연에 거슬러 조직적으로 발전하고 연어는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른다. 이것이 생명의 위대성이다.

  그러나 이 과정이 항상 좋은 쪽으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문명을 만들면서 자연을 무수히 파괴해 왔으며, 때문에 우리는 많은 원시적인 힘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르 클레지오는 이것을 경계하는 동시에, 그 아픔을 치유하고 새로운 출발을 위한 근원에로의 회귀를 도모하고 있다. 이것은 이 소설이 그저 문명과 자연의 대립이라는 일차적 화두에서 이미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오히려 그는 더욱 커다란 자연의 포용성에 대해 예찬하고 있다. 주인공인 라일라는 그래서 에코페미니즘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우리가 늘상 생각해왔던 자연의 여성적인 이미지, 여신-가이아(Gaia)-의 이미지가 투영된 것이다. '라일라'라는 거대한 생태계가 문명의 탄압을 받아 시련을 겪게 되지만, 결국 그 둘은 땔 수없는 관계이며 이들의 어울림과 균형을 통해 근원으로부터 통합된다.

  르 클레지오는 이러한 거대한 주제를 한 소녀의 성장기를 통해 아름답게 완성해냈다. 이 소설엔 프랑스의 역사가 들어있고, 또한 무수한 이민자들의 아픔과 현실이 또한 들어가 있다. 라일라가 만나는 무수한 사람들, 랄라 아스마와 조라, 타가디르, 후리야, 노노, 하킴, 엘하즈, 주아니코, 시몬느 등의 삶은 매우 현실적이다. 우리가 이 소설 속의 이야기를 실제로 받아들인다 해도 무방할 만큼, 묘사는 치밀하고 캐릭터는 강렬하다. 그리고 그들이 겪는 사건은 물론 그들이 처한 상황들도 우리로 하여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소설은 이 불가해한 삶이 아름답다고 말해 준다. 그리고 그가 써낸 눈부신 문장들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이토록 아름다운 소설은 흔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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