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꾸 래봉 - 마영신 만화
마영신 글.그림 / 창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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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요상한 책.

제목만 들었을땐 외래어인가, 요즘 애들이 쓰는 신조어인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첫 장을 들춰보니, 아하. 새끼 손가락이 밖으로 휘어서 '삐꾸"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초등학교 5학년 박래봉 의 이야기.

'고래가 그랬어'에 연재된 만화란다. 아. 책 잘보는 애들이 푹 빠져서 보는 그 잡지.

 

그리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는 내내 불편하다.

나도 학교에 근무하고 있지만, 담임을 맡고 있지 않아 아이들의 생활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어른들의 눈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교 폭력이 있다고 알고는 있지만 정말 이 정도일까.

초등학교 5학년들이 정말 이렇게까지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무심할 수 있을까.

 

'반장이 이런 것도 모르네'라고 무심코 중얼거린 한 마디에 시작된 학교폭력.

학교 싸움짱인 반장에게 시달리던 래봉이는 새로 전학 온 싸움 잘하는 은철이의 도움으로 반장의 폭력에서 벗어난다. 래봉이와 함께 반장 패거리에게 시달리던 동관이도 함께.

학원 뺑뺑이만 도는 래봉이와 술만 마시는 아버지와 가스를 흡입하는 불량한 형이 있는 은철이, 엄마가 없는 동관이 세 아이 모두 각자의 아픔과 부족함이 있는 아이들이다.

가해자 입장인 반장도, 좋은 대학을 가서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아버지의 기대에 대한 스트레스로 힘없고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고, 반장의 여자친구는 중학교 선배들에게 찍혀 상납을 해야하는 처지다.

래봉이와 은철이, 동관이가 함께 어울려 놀다 실수로 동네에 불을 내고, 큰 불로 번지기 전에 불길은 잡았지만 보상 과정에서 세 아이의 부모가 싸우게 되고 그 때문에 아이들도 멀어진다.

집안 문제로 래봉이와 동관이의 가림막이 되어주던 싸움 잘하는 은철이가 전학을 간 뒤, 래봉이와 동관이는 6학년이 되어 반이 갈리고, 반장 패거리와 다시 같은 반이 된 래봉이는 더욱 교묘해진 반장 패거리의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성추행까지 당하게 된다.

담임 선생님에게 사실을 이야기 하나, 공부 잘하고 집안 좋은 반장이 가해자이기에 학교에서의 도움은 없었고, 결국 래봉이는 자살을 시도한다.

 

정말. 이것이. 2015년 지금 아이들의 현실인걸까.

내가 매일 같이 출근해서 보는 그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인가.

가끔 말썽을 부리긴 하지만 해사하게 웃으며 볼 때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저 아이들 사이에서 이런 교묘하고 잔인한 일이 일어나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 시작이, 그저 사소한 말 한 마디에서 시작된단 말인가.

 

마지막 작가의 말에, 작가의 고백이 이 현실의 이유가 될 수 있으리라.

래봉이의 괴로움에 익숙해졌고, 처음과 달리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는.. 내 안의 폭력성을 느낄 수 있었다는 작가의 말.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가해자인 반장 패거리였다면 나도 그랬으리라.

내가 피해자인 래봉이였다면 나 역시도 괴롭힘에 익숙해졌으리라.

아이들의 학교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걸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도 크고, 도움을 요청할 때 제대로 된 도움을 주지 않고 그 순간만을 모면하려 한 어른들의 잘못도 큼을 다시 한 번 깊이 느낀다.

 

다행히, 래봉이는 래봉이를 지켜봐주던 페니스터치맨 아저씨의 도움으로 죽지않고 살아났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반장 패거리와 다른 학교가 되어 괴롭힘에서는 벗어났지만, 책의 마지막 장.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 보여주며 끝난다.

 

허구보다 더 무서운 현실, 그리고 그 현실을 그대로 투영해 보여주는 허구.

아동 문학은 아이들에게 즐겁고 예쁘고 행복한 것만 보여주어야 한다는 예전의 생각에서 벗어나 이런 다크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요즘 아동 문학의 흐름인 듯 한데, 이런 묵직한 작품들이 아이들에게 역기능만 주는 건 아닌지.. 순기능을 할 수 있기를.

 

 

날라리

음악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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