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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201호 - 2023.가을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평점 :
『창작과비평』 2023년 가을호는 200호를 갈무리하고 새로운 출발점에 서는 마음으로 대전환을 향한 실천적 과제를 고민하는 종요로운 글들을 묶어 내었는데, 특집에서는 ‘한국이라는 서사’라는 주제 아래 최근 정치, 문화 등 다방면으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며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을 어떻게 사유할 수 있을지 사회정치, 문학사, 한국학, 동아시아론을 거쳐 다각도로 점검하였다.
후꾸시마 오염수 방류에 관한 실질적 쟁점을 짚은 대화와 군비경쟁 및 핵전쟁의 위험 속 한반도 평화를 고민하는 논단 역시 급변하는 세계적 흐름 앞에 선 우리에게 유의미한 질문을 던졌으며 역사학자 고 강만길 추모 산문과 동물행동학자 이원영의 ‘내가 사는 곳’ 산문 및 가사노동자 권리 투쟁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현장란도 풍성해 제주와 한국 현대사를 아우르는 역작 『제주도우다』의 작가 현기영의 인터뷰도 눈길을 끈다.
이번호 특집 편에서는 문명 전환 시대 한국에 대한 담론적 진단과 비평을 바탕으로 한국이 가진 서사적 가능성에 대한 창조적인 진로를 모색한다. 그리고 정치학자 이남주는 그동안 한국이 이루어온 발전과 성취가 새로운 문명 전환 시대의 과제와 결부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한국에 대한 담론적 사유의 활로를 찾아 현재 정부가 주도하는 글로벌 중추국가 담론과 외교안보정책이 근본적으로는 분단체제 재공고화와 연결되어 있음을 지적하면서, 궁극적으로 분단체제의 극복을 통해 한국의 가능성을 새롭게 만들어가기를 제안한다.
문학평론가 강경석은 최근 한국문학 연구와 비평에서 성행하는 문학성에 대한 논의들에 주목하여 탈민족주의와 근대문학 종언론의 시각의 한계와 문제점을 예리하게 분석한다. 특히 문학성 회의론과 연결되는 최근의 주류 문학사 연구들이 “단절론적 청산주의와 자기 시대의 특권화”에 매몰된 부분을 지적하고, 전통과 현재를 창조적으로 연결하며 문명 전환기에 새롭게 써나가야 할 한국문학사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지점이 긴요하다.
이어지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정헌목의 글은 한국학에 대한 기존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내포하는 본질주의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세계적인 맥락에서 한국적인 것을 새롭게 이해하기를 요구하는 분위기 속에서 문화적 성취를 넘어 지금의 한국을 만들어낸 과정을 객관적으로 성찰하며, 바깥으로부터의 질문에 답하기 위한 한국학의 새로운 과제를 강조한다.
중문학자 백지운은 급변하는 미중간 패권경쟁체제의 위기 속에 한반도에서 발신할 수 있는 동아시아 담론의 현재성을 살펴본다. 리영희의 극동아시아론에 대한 논의를 경유하여 과거 냉전의 이분법에서 벗어나려 했던 전환시대의 논리를 성찰하고, 현재 동아시아의 문명론적 의제가 현실에 새롭게 개입할 가능성을 타진한다.
대화 편에서는 최근 뜨거운 사회 쟁점이 되고 있는 후꾸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를 다룬다. 일문학자 남상욱의 사회로 송기호 변호사, 원폭피해 연구자 오은정, 탈핵활동가 이헌석이 참여한 이번 대화에서는 오염수 방류에만 초점이 맞춰진 채 소모적으로 이어지는 논의의 한계를 넘어서 오염수 방류의 기원이 되는 원전사고의 이면과 핵산업의 본질적 성격, 오염수 방류의 실질적 쟁점을 꼼꼼히 논의한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망가진 재난 대응 시스템과 민주주의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고민하며 국제사회 연대를 촉구하는 중요한 토론으로 주목을 요한다.
논단 · 현장 편에서는 국제정치학자 서재정은 논단에서 한반도의 군비경쟁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위기상황을 다룬다. ‘선제타격’ 독트린이 득세하며 한미일 대 북중러의 진영화가 구축되는 긴급한 현실을 환기하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국이 ‘선도적’으로 긴장완화 조치를 취하는 한편 ‘일방적’인 군비동결과 군사훈련동결을 선언하고 실천할 것을 간곡히 요구한다.
현장 편에서는 여성학 연구자 최시현이 가사·돌봄유니온의 최영미 위원장을 만나 가사근로자법이 시행된 1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와 외국인 가사인력 도입에 따른 최근의 논란 및 가사·돌봄노동의 플랫폼화까지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한다. 가사·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며 가치로서의 돌봄과 노동으로서의 돌봄을 함께 생각해보는 뜻깊은 글로 일독을 권한다.
시를 싣는 란에서는 김개미, 김석영, 김선우, 민구, 손세실리아, 이동우, 이세기, 이은규, 장이지, 진은영, 최정진, 황유원이 다채로운 시적 개성으로 자리를 빛내주는 가운데, 창비신인시인상 수상자 이하윤의 시와 더불어 특별기고를 통해 동일본대지진 후의 재난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재일시인 김시종의 작품을 소개한다. 신예작가 특집으로 꾸린 소설란에서는 김기태 김지연 전지영 주영하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지난호 연재를 시작한 김금희 장편이 2회째를 맞아 한층 무르익은 이야기를 펼쳐가면서 창작란의 풍요로움을 더한다.
작가조명 편에서는 제주와 한반도 현대사의 뿌리가 담긴 역작 『제주도우다』를 출간한 현기영 작가를 본지 편집위원인 문화인류학자 백영경이 만났다. 제주의 근현대사를 총체적으로 다룬 작품의 현재적 의미를 실감하는 한편, 사라진 제주 공동체와 애도의 공동체를 딛고 대안적 삶을 만들 수 있는 서사적 상상력에 대해 깊고 진지한 대화가 오간다.
독문학자 임홍배는 문학평론에서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거둔 성취를 자상하게 짚으며 과거사에 대한 새로운 서사적 해석과 지역서사의 현재적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다. 특히 아버지를 통해 그려진 사회주의자의 형상을 섬세히 조명하면서 파괴적인 폭력에 굴복하지 않는 인간성 재현에 대한 깊은 감동을 전한다. 창비신인평론상 수상자 권영빈은 최진영의 소설 『구의 증명』을 중심으로 한국사회의 죽음을 둘러싼 지배적 정동을 파악하고, 죽음의 리얼리티가 사라진 현실에 대한 저항으로서 작품이 보여주는 고유한 애도의 방식을 새롭게 읽어낸다.
문학초점 편에서는 비평적 글쓰기의 활로를 모색하며 새로운 리뷰의 형식으로 독자들을 찾아간다. 문학평론가 김영희 정주아 송종원이 참여하여 이번 계절 시, 소설, 평론에서 의미있는 작품을 선정해 섬세한 읽기와 예리한 분석을 보여준다.
산문 · 촌평 편에서 역사학자 허은의 산문은 분단국가의 민주화와 남북의 평화통일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사학자 고 강만길 선생의 생애를 곡진하게 돌아본다. 고인의 제자이자 같은 사학자로서 반식민 민족주의자, 공동체를 중시하는 사회주의자, 반전 평화주의자의 신념에 기반한 강만길 역사학의 현재성을 통찰하는 글로 마음 깊이 와닿는다. ‘내가 사는 곳’ 이번호 연재는 극지에서 동물을 연구하는 동물행동학자 이원영이 보내온 글로 채웠다. 십년째 남극 과학기지를 오가며 겨울을 보내는 필자의 삶과 남극에서만 만날 수 있는 생태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촌평란도 이 계절에 주목할 만한 양서들을 선정하여 알차고 품격있게 꾸려졌다. 학술서에서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도서를 망라하며 AI 기술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 장애 인권 투쟁, 인간의 마음과 문화를 통해 본 진화론 등에 대한 폭넓은 문제의식을 담았다.
문학상 발표 란에는 제41회 신동엽문학상인 이동우 시집 『서로의 우는 소리를 배운 건 우연이었을까』, 이주혜 소설집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에 돌아갔다. 2023 창비신인문학상의 심사평과 수상자 이하윤(시), 권영빈(평론)의 수상소감도 실렸다. 아울러 제38회 만해문학상의 최종심 대상작 목록과 심사평도 이어진다. 만해문학상 수상작은 본지 겨울호에 발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