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비평 202호 - 2023.겨울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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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과비평』 2023년 겨울호 특집은 ‘삶을 돌보는 사회를 위하여’라는 주제 아래 팬데믹을 거치며 팽창한 돌봄담론을 점검하고 체제전환에 유의미한 지점을 재구성한다. 팬데믹 못지않게 사회적 위기감이 팽배한 지금 더욱 긴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대화에서는 새 정부 출범 1년을 되돌아보며 한국이 맞닥뜨린 정치‧경제‧외교적 위기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짚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논했으며, 후꾸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를 다룬 지난호 대화의 일본 현지 반응을 현장란에 담았다.

 개벽사상의 사상적 깊이와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한 논단의 글들이 혐오와 대립을 극복할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한편, 등단 30주년을 맞은 김소연 시인의 작가조명 인터뷰와 전북 부안을 다룬 ‘내가 사는 곳’ 연재, 창작란의 신작들도 풍성한 읽을거리가 되어준다.

 이번호 특집은 그간 확대된 돌봄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차원에서 돌봄에 대한 남다른 상상력을 보여주는 작품을 통해 돌봄의 실질적 가능성을 살펴본다. 본지 편집부주간이자 문학평론가 백지연은 돌봄의 결핍이 민주주의의 결핍과 연동되어 있는 점을 짚고 돌봄의 수행 속에서 시민성을 새롭게 사유할 가능성을 탐색한다. 김애란과 금희의 소설을 꼼꼼히 분석해 시민적 덕성이 돌봄의 과정에서 어떤 갈등을 마주하며 획득되고 있는지를 섬세하게 들여다보며, 백온유의 소설을 통해 돌봄 주체가 겪는 독특한 시간성과 취약성이 시민공동체라는 든든한 배경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시인 박소란의 글은 세권의 첫 시집을 중심으로 시인들의 내밀한 경험과 생활에 대한 고찰이 돌봄을 어떻게 사유하고 있는지 살핀다. 최지은의 시로부터 돌봄의 경험이 빚어낸 정서적 유대성이 어떻게 관계의 지속을 야기하는지 발견하고, 조온윤의 시에서 돌봄이라는 행위가 왜 서로를 보살피는 효과를 낳는지 따져보며, 최재원의 시를 통해 고통을 매개로 한 결속의 경험에서 탄생하는 돌보는 주체를 그려 보인다. 최근 젊은 시인들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고통과 대결하며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살피기에도 맞춤한 글이다.

 영화평론가 조혜영은 하이데거의 ‘염려’ 논의를 끌고 와 그것을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쳐 돌봄이 지닌 맥락을 증폭시킨다. 창조성을 지닌 ‘산만한 돌봄’에 주목하여 실존적이고 일상적이며 생태적으로 얽혀 있는 돌봄의 모습을 제시하는 한편, 최근 몇년간 죽음과 돌봄을 함께 서사화하는 한국영화의 경향 속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자기 생존을 넘어 자기돌봄의 모습을 어떻게 발견하고 있는지 살핀다. 더불어 영화제작 환경을 돌보는 일을 통해 어떻게 새로운 영화적 세계가 창조될 수 있는지 논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나라 안팎으로 전방위적 위기감이 고조되는 지금, 국내만 보더라도 국가 경제와 나라살림, 노동, 외교, 사법, 교육, 환경 등 다방면에서 문제가 터져 나오는 형국이다. 본지 편집주간 이남주의 사회로 정치학자 서복경, 전 민주노총 위원장 양경수,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이태호가 참여한 이번호 대화에서는 이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지 꼼꼼하게 따져보고, 전환을 위한 모색과 현 정권의 양상이 어떻게 충돌하고 있는지 분석하며 앞으로의 지향을 모색한다. 노동운동계와 시민사회 내부에서 오가는 생생한 논의를 들여다볼 기회인 한편 ‘생성 합의’와 ‘공론장’에 대한 열띤 토론 속에서 우리가 위기에 맞서는 하나의 큰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다

 논단에서 종교철학자 이정배는 개벽사상에 내재된 독창성과 풍부함을 다양한 종교의 언설과 비교‧대조하며 알차게 그려내 기독교와 개벽사상과의 관계를 다시금 사유케 한다. 기독교에 대한 수용과 재구성을 포함하여 개벽사상에 내재한 다양한 종교의 흔적과 맥락들을 자상하게 알려주는 동시에 근대성의 한계를 사상적 자원의 깊이로 돌파해 보이는 대목들이 눈길을 끈다.

 이어지는 정치인, 국방전문가 김종대의 글은 급박하게 변해가는 국제정세 속에서 한미일 안보협력의 실질적인 의미를 자세히 논하고, 우리나라가 맞닥뜨린 주권의 문제와 외교적 손실 등을 따져 설명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동맹국의 확장억제력이 아니라 협력과 공존, 평화에 기반한 억제력이라는 주장은 물론이고 그 근거로 활용된 구체적인 정보들이 튼튼하다.

 현장에는 지난호 대화 「후꾸시마 문제, 원전사고부터 오염수 방류까지」에 관한 일본 현지의 반응이 실렸다. 오끼나와 출신 역사연구자 사끼하마 사나가 후꾸시마 문제를 오끼나와의 사례와 겹쳐놓으며 그 속에 내재한 착취의 구조와 불평등을 밝힌다. 또한 후꾸시마 문제를 국가와 거대자본의 문제로 인식하고 국제적 협력 속에서 동아시아의 비핵화 사안으로 확장하여 사고해야 함을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문학을 읽기 좋은 계절, 이번호 시 소설 신작이 선물처럼 독자들을 찾아간다. 시란에 고형렬 김명기 김민지 박일환 박지일 전수오 전욱진 정끝별 채인숙 하재연 허유미 황인찬까지 열두 시인이 정성스럽게 쓴 신작시를 보내주었다. 소설란에는 권여선 오선영 정지돈 정찬의 각기 다른 개성이 넘치는 신작 단편이 실린 가운데 김금희의 장편연재 3회가 다음호 완결을 앞두고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작가조명에서는 등단 30주년을 맞이한 김소연 시인을 동료 시인이자 평론가인 장이지가 만났다. 시를 통해 무엇인가를 곡진히 기다린 사람의 언어가 도달한 ‘끝’의 세계를 시인의 입말을 통해 다가가볼 수 있다. 장이지의 시선으로 30년간 김소연의 시가 통과한 변화가 서사화되는데, 이는 그간의 한국시사를 암시하는 대목처럼 읽을 만도 하다.

 이지은의 문학평론은 팬데믹 상황이 세계를 재조직하는 과정에서 ‘자가’와 ‘가족’이라는 생존의 단위를 부각하고 그 위에서 팬데믹 이전의 젠더 차별적 질서를 강화한 현상을 되짚는다. 최은미의 소설 『마주』와 「여기 우리 마주」가 팬데믹 상황에서 구조화된 질서에 문학적 상상력으로 맞대응하는 방식을 예리하게 분석한 글이다.

 지난호부터 리뷰 형식으로 독자들을 찾아가는 문학초점은 시인 신용목, 문학평론가 하혁진 한영인이 이번 계절의 시, 소설, 평론 중 의미있는 작품을 선정하여 꼼꼼하게 읽고 나아가 적극적인 가치평가의 장을 시도한다. 한국문학의 치열한 현장이 궁금한 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자료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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