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 뮤지컬 《순신》, 영화 《한산》 《명량》 《노량》의 감동을 『난중일기』와 함께
이순신 지음, 장윤철 옮김 / 스타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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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역사의 가장 치욕적인 고통과 함께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임진왜란은 아이로니컬하게도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고 있으며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는 이순신이라는 명장을 배출하기도 했다.

 충무공 이순신은 임진왜란에서 조선의 수군을 지휘해 한산도, 명량, 노량 등지에서 왜병을 격퇴하고 전란의 전세를 조선의 승리로 이끈 명장이다. 사후 조선 조정으로부터 충무공(忠武公)의 시호를 받았다. 《난중일기》는 이순신이 임진왜란이 발발하는 조선 선조 25년(1592년) 음력 1월 1일(양력 2월 13일)부터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이틀 전인 선조 31년(1598년) 음력 9월 17일(양력 10월 16일)까지의 2,539일간의 군중에서의 생활과 전란의 정세에 대한 내용을 적은 진중의 일기이다.

 이순신 3부작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은 “잠들기 전 《난중일기》를 습관처럼 읽으면서 남의 일기를 흠처 보는 재미도 있었다.”고 했고, 영화 ‘한산’에서 이순신역을 연기한 박해일은 “이순신 장군은 붓과 활이 잘 어울리는 군자다운 무인”이라고 했다.

 역사인물인 이순신은 조선 인종 원년인 1545년 서울 건천동에서 태어났다. 자는 여해(汝諧)다. 32세 때인 1576년 무과에 급제해 공직에 나섰으나 강직한 성품 탓에 모함을 받아 파직했다가 복직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충청 병사 군관, 발포 수군만호, 함경도 건원보 권관, 훈련원 참군, 사복시 주부, 조산보 만호 겸 녹둔도 둔전관, 전라순찰사 군관 겸 조방장 등을 거쳤다.

 1591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었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해전, 적진포해전, 당포해전 등을 이끌며 전승했다. 1593년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된 후 1594년 장문포해전, 영등포해전 등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1597년 조정을 기망한 죄로 파직되어 투옥되었고 출옥 후엔 도원수 권율 밑에서 백의종군했다.

 그해 여름 원균이 이끌던 조선 수군이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하자 삼도수군통제사에 다시 임명되어 그해 9월 명량해전에서 12척의 배로 130여 척의 왜선과 맞서 대승을 거두었다. 1598년 노량해전에서 왜선 500여 척과 싸우다 총탄에 맞아 54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1643년 ‘충무(忠武)’의 시호를 받았으며 1793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1795년 정조의 명에 의해 유고 전집 『이충무공전서』가 발간되었다.

 이 책은 조선 중기의 무신(武臣) 충무공 이순신이 임진왜란 7년 동안 일본군과 싸우면서 군중에서 쓴 일기이다. 《난중일기(亂中日記)》는 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76호로 지정 당시 명칭은 ‘이충무공난중일기부서간첩임진장초(李忠武公亂中日記附書簡帖壬辰狀草)’다. 그러다 2010년 8월 25일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李舜臣 亂中日記 및 書簡帖 壬辰狀草)’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번역가 장윤철은 중국어학자 및 중문학자이며, 부산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북경대학교 대학원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하였다. 저서를 기반으로 중국을 한국에 소개하고 한국을 중국에 소개하는 한·중 문화 교류가 꿈이며 또한 전쟁과 혼돈의 중심을 산 지도자 조조의 삶과 재능에 관심을 갖고 그를 연구하여 복잡한 현대를 사는 삶의 지혜를 얻고자 했다.

 전작으로 왕경국 박사와 편저한 『유식의 즐거움』 『조조 같은 놈』 『조조 같은 놈 매뉴얼』 『내 안에 적을 깨워라』가 있으며 편역서로 『조조는 어떻게 영웅이 되었나』 『조조의 용병술』이 있다. 편저로는 『단순하고 재미있는 심리학의 재발견』 『조조의 진면목』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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