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촌공 최억남 - 임진란 보성의 젊은 호랑이
최대욱 지음 / 바른북스 / 2023년 5월
평점 :
절판


저자 최대욱은 어릴 적에 보성강을 놀이터 삼아 자란 탓인지 물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래서 늘 물을 쫓고 또 물처럼 살고자 노력했다. 청천을 닮아 누군가의 갈증을 해소하는 창조적 글 작업을 하고 싶었고, 청천을 따라 세상의 이치를 깨달으며 지혜롭게 살고자 하였으며, 청해를 닮아 자정하며 모든 것을 포용하는 넓은 마음을 가졌다. 500년 종갓집에서 태어나 조상 '故최억남' 님에 대한 가문의 자부심과 존경심이 남달랐다. 최억남 조상님에 대한 기록은 수없이 많았으나 조경남의 '난중잡록'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가문에 내려오던 기록을 뒷받침할 객관적인 증빙 자료가 발견된 것이다. 

최억남 조상님은 순수의병으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장수였다. 그러나 훌륭한 행적에 비해 나라의 은공은 늦고 작게 내려졌다. 저자는 귀중하게 찾아낸 기록들을 바탕으로 최억남 조상님의 일대기를 쓰고 싶었다. 그리고 승조 사업을 크게 일으키고자 하였다. 그래서 최억남의 13대 직계 후손인 저자는 2년 동안 열정으로 이 소설책을 지필하였다.

제 1장은 출생과 소/청년 시절, 제2장은 무인 관직 시절, 제3장은 의병 활동 시절, 제4장은 옥과현감 시절, 제5장은 무예 스승 시절과 영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록으로 '최억남 연보'가 실렸다. 총 450page의 거대한 분량이며, 후손으로 자랑스러운 조상님께 갖춰야할 태도를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되는 책이기도 하다. 

본문 '성주성 탈환' 중에서는 이런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왜군은 점차 성문을 열고 가마대 뒤를 따라 나와 성주성을 등진 채 진을 치고 있었고, 임계영은 전라좌의병에게 독려하며 한 치도 물러나고자 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양 진영에서는 화살이 비 쏟아지듯 날아다니고 함성 소리는 눈보라를 따라 천지를 진동했다. 시간이 갈수록 전투는 치열해졌다. 온종일 이어진 전투 과정에서 서로 죽도록 싸워서 전장이 모두 핏빛이 되었고 성 밑에 쌓인 송장이 언덕과 같았다. '

'날씨는 매섭고 춥고 눈보라까지 휘몰아치는 혹한의 계절이었다. 장윤은 말이 피곤해 달리지 못할 정도로 열심히 뛰어다니다 말에서 내려 걸으면서 용맹을 떨쳐 한 화살에 한 놈씩 죽인 것이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최억남도 말을 타고 달리며 적을 쏘아 대니 쏘는 대로 왜군이 쓰려졌다.'

조상님 '최억남'은 전라남도 보성군 출신으로 본관은 탐진, 자는 경대/한부이고, 시호는 방촌이다. 1591년(선조 24년)에 별시 병과로 무과에 급제하였고, 훈련원 봉사, 전라남도 옥과현감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전라좌의병 훈련관, 우부장, 부장을 거치면서 왜군을 물리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소설 '방촌공 최억남'을 지필한 저자 최대욱은 1961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출생하였으며,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졸업,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졸업,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박사 졸업을 하였고, 현재 청천교육문제연구소 이사장, 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청천', '수술실은 오히려 안락한 휴식처', '초의무사 실기1,2'를 출간하였다. 논문으로는 'Giddens의 제3의 길 실천 계획을 통한 한국 교육 정책 이념 갈등 해소 방안', '교육기본법 구현에 대한 현장 교사들의 인식 연구', 'Finland 교육 성공 요인 분석을 통한 한국 적용 모형 구안'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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