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을 비는 마음
김혜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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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단편집을 기피하게 됐다. 진득하게 이어지는 장편 소설이 더 좋았다. 그럼에도 '김혜진'이라는 세 글자에 홀린 듯 서평단에 신청했다. 아무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다. 무슨 정보를 안 들 안 읽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더 선호하는 단편집이 있다면 발표한 시기도, 연재한 지면도 제각각이지만 모아두고 보니 큰 주제가 중심을 잡아주는 책이다. 『축복을 비는 마음』은 중심을 잡아주다 못해 연작소설이라고 해도 될 만큼 각 단편이 유사성을 띠고 있다.


집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작가 김혜진은 언제나 사회적인 소설을 쓴다. 이번에 그가 바라본 곳은 집이다. 집엔 집주인이 살 수도, 세입자가 살 수도, 관리인이 살 수도, 투기꾼이 살 수도, 연애하는 커플이 동거할 수도, 입주 청소 노동자가 살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 제일 많은 주거 형태인 아파트를 고층부터 찬찬히 리프트를 타고 구경한 듯한 기분이 드는 소설집이다.


∣이 나라는 부동산 때문에 망할 거야. 이 썩은 빌라들에 도대체 몇 사람의 밥줄이 달려 있는 거야, 세상에. (산무동 320-1번지, p.170)


서울의 밤은 반짝인다. 높은 건물들이 빛을 내고 강물이 반사한다. 저 수많은 반짝거림 속에 내 몸 하나 누일 곳이 없을까. 기숙사, 고시원, 셰어하우스, 원룸을 전전하며 집을 알아보고 계약하고 입주 청소하고 이사했던 과거의 나를 옆에 앉혀놓고 같이 읽었다. 이 단편은 그 원룸, 이 단편은 저 원룸 때 생각난다 그치?


∣그녀는 어제와 오늘, 내일이 겹쳐 있는 듯한 자신의 하루하루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 (...) 자신의 삶에 무언가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이대로라면 삶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미래」, p.209-210)


「사랑하는 미래」의 문장이다. 반복되는 일상에 안정감을 느끼면서도 이대로 괜찮나? 동시에 불안한 주인공이 내 모습과 비슷해 동질감을 느꼈다. 제목답게 사랑스러움이 묻어났다. 김혜진 소설에서 느끼긴 조금 힘든 감정이라 신선했다. 연인을 사랑하듯이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근거림으로 이 단편을 닫고 나오면 표제작이자 마지막 단편이 기다리고 있다.




∣축복을 비는 마음으로 하는 거죠, 뭐. (「축복을 비는 마음」, p.270)


「축복을 비는 마음」은 입주 청소를 하는 인선과 경옥의 이야기다. 더 힘든 집을 만나면 억울하지 않냐고 경옥이 묻는다. 그리고 위 문장으로 답하는 인선이다. 이 작품을 읽는 나는 앞서 7편의 단편을 통해 일곱 개의 집을 들여다봤다. 마지막이자 제목이 되어준 대사.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 소설'집'은 다세대가 살고 있는 다른 형태의 집이다. 책장은 하나하나의 창문일 수 있다. 그들이 어떤 형태로 살아가든 맞이할 미래가 사랑스럽기를, 축복을 비는 작가의 단단하고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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