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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 세트 1 : 1~12권 - 전12권 (무선) ㅣ 대망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박재희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5년 4월
평점 :
말하자면 나의 전쟁과 평화이고 지금의 내 그림자이며 과거의 군상을 그림으로써 다음 세대의 빛을 모색해가는 이상 소설이라고도 말하고 싶다. – 저자 서문에서 “야마오카 소하치”
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대망을 읽다가 오다 노부나가가 죽는 장면에서 책을 집어 던지고 울었다고 했다. 그것이 내가 이 책을 인지한 첫 순간이다. 그 이후로도 여기 저기서 자주 보이는 이 책을 읽어야지 하다가 시간이 좀 생긴 요즘에서야 읽게 되었다. 일권을 집어둔 순간부터 마지막 장을 덮기까지 4개월이 걸렸다.
삼국지보다 재미있었다. 아니 뭉클했다.
전투의 상세한 묘사라든가 전략적인 면은 삼국지보다 못하지만 이에야스의 인내, 검소함 그리고 천하의 평화를 바라는 마음은 내 마음을 곳곳에서 울렸다.
일본의 통일을 흔히 사람들은,
“노부나가가 시작하고 히데요시가 이루어내고 이에야스가 뿌리내렸다”라고 한다. 그 중간에 우리의 역사 속에 너무나도 중요한 사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우리들은 이 일본 통일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른다. 일본 동부의 조그마한 성, 미카와에서 성주의 아들로 태어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와 헤어져 슨푸에서 12년 간 인질 생활을 한다. 이 인질생활은 훗날 그의 인내의 기반이 된다. 일본을 빠르게 통일해 가던 오다 노부나가가 야마모토에게 승리하자 비로서 독립을 한다. 오다 노부나가는 강성했지만 그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세력을 키워갈 수 있었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에서 부하의 반란으로 죽게 되자 이틈을 타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실권을 장악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사카로 본거지를 옮기고 주코슈, 시코쿠를 정복하며 마침내 일본의 통일을 이루어 낸다. 농민으로 시작해 일본 최고 지위까지 오른 히데요시의 눈은 바깥을 향하고 조선 침략을 강행한다. 그 전에 히데요시는 이에야스의 영지를 박탈하고 에도의 황량한 땅을 영지로 준다. 하지만 이에야스는 이 위기로 기회로 삼고 자신의 훗날 터전으로 만든다. 동쪽으로 밀려났기에 이에야스는 오히려 임진왜란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자신의 병력을 보존할 수 있었다. 자식이 없던 히데요시는 60이 넘은 나이에 아들을 얻고 이 아들을 이에야스에게 부탁한 채 세상을 떠난다. 이 아들을 둘러싼 히데요시의 가신들은 이에야스와 격돌하나 결국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에야스가 승리하고 결국 일본의 쇼군이 된다. 그리고 300여년간 지속되는 에도 막부를 연다.
이에야스가 일본을 통일하기까지 수많은 위기가 있었으나 어린 시절부터 습득한 인내를 바탕으로 위기들을 무사히 넘어간다.
“인생의 짐은 무거울수록 좋다. 그 무거운 짐을 견디는 일이 그대를 더욱 키울 것이다.” – 어린 시절 이에야스에게 셋사이 선사가 건낸 말
“느릿하게 움직이는 물이란 아주 답답해 보이는 법이야. 그러나 그러한 물도 같은 뜻을 서로 구하여 모이면 폭포도 분류도 될 수 있지. 서두르지 마라. 천천히 큰 강이 되어 가자꾸나. 나는 앞으로 서두르지 않겠다. 그러나 잠시도 멈추지는 않는다.” – 이에야스가 미카와 지방의 반란을 진압한 후
“모두들 나를 따라 교토에 들어가 지온사에서 한 번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죽은 자에게 서두를 일이란 없다. 인내뿐이다. 인내만이 통행이란 걸 단단히 마음에 새겨둬라.”- 노부나가가 죽은 후 포위를 피해 탈출하며
“우리가 서쪽에 있으면 조선 전쟁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에도 땅이 황폐한 것에 나는 오히려 신에게 감사하고 있다.”- 영지를 박탈당한 후 동쪽으로 쫓겨나며
‘사람의 행복을 산산이 부숴버리는 것은 천지를 진동시키는 큰 사건보다 때로 손 끝에 박힌 아주 작은 가시인 경우가 많다.’
“별이 나쁠 때는 몸을 삼가고 가만히 있는 게 좋다. 아니면 목숨에 관계되는 파국이 오리라. 10년 일하고 2년 쉬너라. 이 2년이 소중한 휴식이다.”
“미쓰나리님, 전진만 알고 후퇴를 모르면 실패하는 것은 싸움터에서만의 일이 아니오. 인간은 언제나 인내가 첫째요, 귀하는 지금 중대한 시련 앞에 서계시오. 마음을 가라앉히고 잘 생각해보시오. 이 이에야스도 지금 귀하가 맛 보고 계신 것과 같은 입장에 몇 번이나 섰던 일이 있으므로 말하는 것이오.” – 쫓기고 있던 정적 미쓰나리와 마주 앉아
그는 이러한 끊임없이 인내하며 일본을 통일한다. 지금 내방에 걸려있는 이에야스의 유훈은 아래와 같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르지 마라. 불편함을 일상사로 생각하면 그리 부족한 게 없는 법이야. 마음 속에 욕망이 솟거든 곤궁했을 때를 생각하라.
참고 견딤은 무사장구의 근원이요, 노여움은 적이라 생각하라. 이기는 것만 알고 지는 일을 모르면 해가 그 몸에 미치게 된다. 자신을 나무라고 남을 탓하지 마라. 미치지 못하는 것이 지나친 것보다 나으니.”
人の一生は重荷を負うて 遠き道を行くが如し, 急ぐべからず。不自由を常と思えば不足なし。心に望み起らば困窮したるときを思い出すべし。堪忍は無事長久の基, 怒りは敵と思え, 勝つことばかり知りて, 負けることを知らざれば, 害その身に至る。己を責めて人を責めるな, 及ばざるは過ぎたるより勝れり。 -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훈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검소함도 곳곳에서 기억에 남는다.
“여전히 보리밥이었다. 거기에 그릇바닥이 훤히 비쳐 보이도록 멀건 된장국 한 그릇과 단무지 외에 방금 소금단지에서 뽑아낸 것 같은 말라비틀어진 정어리 한 마리가 올라 있을 뿐이었다.
자야, 인간이란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존재야. 이따끔 나도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반성하곤 하지. 맛있는 것이 먹고 싶어질 때면 잘 생각해보면 몹시 피곤해있을 때야.
인간은 피곤해서는 안돼.
내가 피곤하다고 말한 것은 육신의 피로를 말한 것이 아니다. 정신면의 피곤을 말하는 거야. 미식을 하고 싶어질 때는 해 야할 사업, 즉 목적이 흐려져있을 때라고 말한 것이야.
육체는 아무리 맛있는 것만 골라 먹고 몸을 아끼며 잠잔다 해도 100살을 넘길 수 없다. 때가 되면 기력은 반드시 쇠퇴하는 법, 그러나 정신은 죽는 날까지 쇠퇴하지 않게 할 수 있어.
나는 남의 힘의 고마움을 잘 알고 늘 감사하며 지낸다. 하지만 자기 역량의 효력도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 그러니 내 밥상에 맛있는 반찬이 올라 있지 않으면, 이에야스가 아직 자신만만하게 정신의 피로를 잊은 채 크나큰 목적을 위해 꾸준히 일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주게.
나는 가난한 백성이 있는 한 그들에게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할 호사는 삼가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지.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신불의 사랑하는 자식들이거든. “
12권의 분량. 일본 통일 전후를 살았던 이에야스의 70여년 생애를 4개월에 걸쳐 읽어내며 느낀 감동을 이 글로 전하기는 힘들 것 같다. 짠하게 마음 속 깊이 그의 생애는 남아있다.
물론 다른 전국시대 소설을 보면 이에야스를 너구리로 묘사하고 히데요시와 한 약속을 어긴 야비한 사람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이에야스가 어떤 모습인지는 내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저자가 이차세계대전에 참전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고뇌 속에서 써내려 간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 대망]. 그가 이름 붙인 그의 “전쟁과 평화”. 그 속에 이에야스는 내가 짧지만 긴 인생을 살아가며 큰 힘이 되어줄 것 같다.
내 인생 최고의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