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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예찬 -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ㅣ 예찬 시리즈
다비드 르브르통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1월
평점 :
나는 걷는게 좋다.
어렸을 적부터 그랬다.
교통 수단에 길들여진 내가 걸을 때 다르게 보이는 세상이 신선했고, 누군가와 걸을 때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편안하면서 함께 걷는다는 유대감이 좋았고, 걷는다는 운동을 하면서 운동을 해야한다는 의무감을 어느 정도 해방하고 걷기 뒤에 오는 이완감이 좋았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많은 이들이 걷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때로는 외로웠고 빠른 교통수단에 비해 상대적인 기회비용을 날린 것 같아 불안하기도 했다.
이 책은 걷기를 예찬하는 책이다. 걷기를 사랑한 수많은 이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이유를 적었다. 내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있고 공감하기 어려운 것도 있지만 나처럼 다른 이들도 걷기를 사랑했다는 점에서 큰 위안을 얻는다. 내 나름의 이유를 하나 하나 찾아가는 시작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걷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고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행위만이 아니다. 고통을 극복해나가고 근원적인 나를 만나러 가는 순례길이다.
'나는 하루에 최소한 네 시간 동안, 대개는 그보다 더 오랫동안 일체의 물질적 근심걱정을 완전히 떨쳐버린 채 숲으로 산으로 들로 한가로이 걷지 않으면 건강과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지 못한다고 믿는다. 나는 단 하루라도 밖에 나가지 않은 채 방구석에만 처박혀 지내면 녹이 슬어버리고 오후 4시- 그 하루를 구해내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가 넘어서, 그러니까 벌써 밤의 그림자가 낮의 빛 속에 섞여들기 시작하는 시간에야 비로소 자리를 비울 수 있게 되면 고해성사가 필요한 죄라도 지은 기분이 된다. 솔직히 고백하거니와 나는 여러 주일, 여러 달, 아니 사실상 여러 해동안 상점이나 사무실에 하루 종일 틀어박혀 지내는 내 이웃 사람들의 참을성, 혹은 정신적 무감각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끼의 검소한 식사가 때로는 최고의 만찬보다 더 나은 것이니 그 포만감과 유쾌함은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는다. 온종일 걷고 난 뒤의 허기와 달콤한 피로가 뒷받침하게 되면 별것 아닌 음식이 침을 고이게 하는 미식으로 변한다.'
'오늘을 걷는 사람은 개인적 영성의 순례자이며 그는 걷기를 통해 경건함과 겸허함, 인내를 배운다. 길은 걷는 것은 장소릐 정령에게, 자신의 주위에 펼쳐진 세계의 무한함에 바치는 끝없는 기도의 한형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