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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얼굴들
황모과 지음 / 허블 / 2020년 6월
평점 :
#황모과 #밤의얼굴들
한국과학문학상 제2회 수상자 김초엽을 거치고 4회 수상자로 황모과작가가 선정되었다.
15년 전 일본으로 이주해 만화 제작일을 하고 만화번역일을 하던 작가이기에 일본이 배경인 작품이 다수다. 그러나 올곧은 역사관을 가지고 있으며 현대 한국 사회도 놓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와 민주화운동을 관통하며 외면 받아온 이들의 영혼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sf는 작가의 가치관을 어디로 튈지 모르게 온 상상력을 동원해 펼친다는 점에서 매력 있다고 생각한다.
정세랑이 친환경 sf, 김초엽은 우주 속에서 꽃피는 인류애 sf 라면 황모과는 소외된 이들을 찾아 과거 속으로 들어가는 sf다. 잊혀진 이름들을 부르며 살뜰히 그들을 챙긴다. 다정한 그의 문체에 몸에 소름이 돋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했다.
수많은 분들이 인생을 바쳐 쟁취한 민주주의에 무임승차한다는 부끄러움을 안고, 깨어있는 시민들 앞에 생애 첫 단편집을 바칩니다. (...) 여러분이 싸우셨기에 어떤 책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치관이 담긴 작가의 말이 인상 깊다. 다음 책이 너무나 기다려진다.
#연고늦게라도만납시다
일본의 공동묘지에서 몰래 살고 있는 남자. 어떤 여자가 한밤중에 무덤가를 헤매는 것을 발견하는데...
#당신의기억은유령
치매를 극복하고자 뇌에 메모리 칩을 넣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오류가 발생하고...
#탱크맨
기억상실에 걸린 남자가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갇혀있다. 그는 기억나지 않는 죄를 뉘우치라고 강요받는데...
내가 제일 좋았던 작품이다. 마지막에 글을 이해하고 전율이 돋았고 다 읽자마자 다시 새로 읽어보았다.
#니시와세다역B층
괴담마니아 괴짜 일본친구와 기묘한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지하철역을 찾는다. b1과 1층사이 b층에 정말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만다.
#투명러너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나는 같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니상과 친해진다. 그와 같은 애니매이션을 보고 자랐기에 금방 친해질 수 있었는데...
#모멘트아케이드
누군가가 체험한 기억 데이터를 파고 사는 거래소가 생겼다. 무기력하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던 중증 우울증이였던 나는 연인과의 소소한 산책을 하는 아름다운 기억을 찾게 되고 이 기억의 주인공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무덤은 내 삶의 터전이다. 오늘 밤도 앞마당을 거닐듯 천천히 무덤가를 산책한다. 비석에 적힌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보는 것이 유일한 일과로, 망자를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남기고 간 흔적들이 천천히 풍화되는 것을 들여다본다. - P9
구차한 삶을 저주하듯 매일매일 개를 발로 차며 살았던 젊은 할아버지도, 가난한 집에 묶여 있다가 식용으로 생을 마친 비운의 개도 연민하지 않았다. 인간이든 개든 지붕 없는 곳에 사는 게 운명이라 여겼다. 그게 내가 구축한 유일한 방어기제였다. - P50
세상의 이야기가 다양한 냄새를 풍긴다. 처연하고 초연하고 담담한 타인의 감각이 세상에서 가장 뜨겁게 내 안에서 재현된다. - P81
서울에서 비행기로 1시가나 반밖에 걸리지 않는 곳이지만, 바다를 건너와서 보니 한국 소식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한국에서 아등바등 허송했던 세월은 바다를 건너면서 고스란히 비행기 창밖으로 쏟아버렸다. 이제는 주변에서 늘 말하던 당위나 의무같은 게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 P113
"그만 죽고 싶다." 엄마는 어떻게든 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이렇게 반어법으로 표현했어요. "죽긴 왜 죽어, 살아서 부귀영화를 누려야지." 저는 이렇게 반어법으로 답하며 엄마와 이별할 날만을 묵묵히 기다렸습니다. - P175
니상의 한가로운 삶의 태도가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면 그는 오지랖 넓은 이들에게참 많은 참견을 들었겠다 싶었다. 한국에선 나이 마흔쯤이 되면 대출금으로 땜질 했을지언정 집은 한 채는 있어야 하고, 남들로선 알 수 없는 사정이 있을지언정 가정이 있어야 한다. 죽이고 싶은 상사를 끌어안고 있을지언정 규칙적으로 월급을 받는 직장이 있어야 하며, 실패 확률이 80퍼센트가 넘는다는 걸 알지언정 자영업을 시작 할 도전정신은 품고 있어야 한다. 이런 한국 사회의 사회적 굴레에서 벗어나 일본에 와 있으니, 니상의 삶을 보고 있자니 숨통이 조금 트였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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