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으로 들어가기
카롤리네 발 지음, 전은경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 도서제공





"스물두 번째 레인 작품 이후 또 다른 이야기"





이다는 물에 빠지지 않고 잠수를 한다


우리는 보통 상실 앞에 두 가지를 기대한다. 힘든 일에 무너지거나, 이겨내거나.

그런데 주인공 이다는 그 어느 쪽도 택하지 않는다.

무너지지도, 딛고 일어서지도 않는다.

그냥 계속 살아가기.

누군가의 부재로 인한 나의 삶이 처음엔 낯설고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점차 시간이 흘러 익숙해지는 나의 삶을 받아 들이는 그런 이다의 태도가 아주 삶을 정직하게 대한다고 느껴졌다.



끝나지 않는 상실 ,


읽다보면 금쪽이 이다가 왜 그리 뾰족하고 화만 내는지 점차 이해하게 된다.

이다의 상실은 단발이 아니었다. 사람을 탈진하게 만들어 버리는 그런 고통들이 이다를 통과한다.

친구와 여행 후 돌아온 집에선 엄마의 따스한 안부가 아닌 죽음이 있었고, 형부와 함께 훌쩍 떠나버린 언니.

하나는 돌이킬 수 없는 부재이며 하나는 살아는 있지만 더 이상 함께하지 않는 부재이다.

그들의 빈자리는 과연 이다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이다는 그 부재들을 동시에 안고 산다. 그래서 끝나지 않는 더이상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매일 조금씩 확인되는 빈자리들. 그것이 이다를 바라보며 독자로서 내가 느꼈던 유독 무거움이 느껴지는 이유였다.

괜찮아질까, 이다는 앞으로 어떻게 할까.

사랑하는 이가 있었더라면, 친구가 더 있었더라면, 언니가 옆에 있었더라면, 이다가 좀 더 강인한 성격이었더라면이라는 생각이 계속 책장을 넘기게 만들었다.

결국 견딜 수 없었던 그녀는 집을 떠나 '뤼겐섬'으로 향하게 되면서 진정한 극복을 할 수 있을까.





수영이라는 몸짓

이 소설에서 수영은 단순한 행동이 아님을 느꼈다. 이다에게 수영은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는 하는 몸짓이다.

물속에서 그녀는 고통을 정면으로 통과하고, 마치 책이 슬픔보다 이다의 고통과 분노의 초점에 맞추듯이 동시에 그 고통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버린다.

도망이 아니라 잠수. 회피가 아닌 직면.

하지만 그 경계가 흐릿하게 묘사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살려는 행위와 가라앉으려는 행위가 같이 표현될 때, 나는 이다의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자꾸만 아찔함이 느껴졌다.

물에 들어갈 때마다 이번엔 어느 쪽일까.

거침없이 날 것을 보여준 감정선을 따라가다보면 작가가 설정한 배경이 왜이런지 궁금해졌다.

그 불안이 소설 전체의 긴장을 놓아주지 않은 채 주인공을 응원하게 만들어 희망으로 향하는 나의 생각이 깊어졌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이다가 된다


긴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든 상실을 피할 수 없다. 사람을 잃고 관계가 끊어지고, 곁에 있어야 할 사람이 어느날 없어진다. 그 방식은 제각기 달라도 빈자리가 생긴다는 사실은 같다.

이다의 이야기가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어딘가 독자들에게 깊은 마음 한구석을 건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느꼈다. 우리는 이미 조금씩 이다이거나, 언젠가 반드시 이다가 된다.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괜찮아지지 않은 채로도 물에 들어갈 수 있다고, 그것만으로도 오늘을 조용히 흘려보낸 거라고 말한다.

다시 물 밖으로 밝은 햇살을 받으면 앞으로 나아가진다.

폭풍을 피하지 않는 다는 건 용감한게 아닐 수도 있다.

그냥 그것 말고는 방법을 모르는 것일수도.

그리고 어쩌면, 그게 우리 대부분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폭풍 다음에는 뭐가 오나요?

폭풍 뒤에는 무거운 폭풍, 그 다음은 대형 폭풍같은 폭풍

그 다음은 대형 폭풍이지."



<스물두 번째 레인>으로 언니 틸다의 이야기를 풀어냈고, 이번엔 <폭풍으로 들어아기>로 이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다음은 알코올 중독자였던 엄마가 결국 이자리에 없을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아무래도

기나긴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가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