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야기--편지

편지 - 랜덤하우스 히가시노 게이고 문학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써야할까...

편지를 쓸 때 흔히 할 수 있는 잠깐의 고민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책 '편지'를 읽고 나서 지금 이 글을 쓰려고 하니 역시 드는 고민.

고생스런 삶속에서 부모님을 모두 여의고 단둘이 남겨진 형과 동생. 늘 너희는 대학을 가야한다 하시던 어머니때문인지 형은 공부도 잘하는 동생을 어떻게든 대학에 보내고 싶다. 다만 문제는 학비 감당이 힘들다는 것. 그러다가 전에 이삿짐 센터서 일할 때 우연히 봐둔 혼자 사는 부잣집 할머니를 떠올리고 돈을 훔치려고 마음먹게 된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두둑한 돈봉투를 들고 나오는데, 문득 군밤봉투가 눈에 띈다. 아, 동생 나오키가 저걸 정말 좋아했지! 가지고 가자라는 찰나의 생각에 걸음을 멈추고 되돌아 들어갔다가 외출중이라 생각했던 할머니가 집에 있었음을 발견하고, 신고하려는 할머니를 그만 살해하고 만다. 그리고 15년간의 감옥살이, 그리고 동생에게 매달 쓰는, 내용마저 검열당하는 편지....

 나오키에게는 형이 '강도살인'으로 붙잡혔다고 경찰에게 통보당한 것 자체가 믿을 수 없는 괴로운 일이었지만, 그 이후 자신에게 붙은 '강도살인범의 동생'이라는 꼬리표로 인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할지라도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겪게 된다. 사람들의 시선, 그로인해 좋아하던 음악을 할 수 있었던 밴드 데뷔의 좌절, 사랑하는 사람과의 억지 이별 등등...이제 자신의 아내와 딸마저 사람들이 수근수근대는 것을 들어야 한다. 도대체 형은 어떻게 저렇게 맘편하게 편지 따위나 계속 보내는거지? 심지어 형의 편지 그 자체로 일이 크게 틀어진 적이 몇 번이나 있으니 이렇게 생각하긴 싫어도 형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큰 짐이다. 왜, 왜, 범죄자는 형인데 내가 그런 것도 아닌데 난 이런 삶을 견뎌내야 하냐고!

 전에 릴리 프랭키의 '도쿄타워'의 카피에 '지하철에서는 읽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이 소설은 정말 공공장소에서 읽으면 큰일 날 소설이다. 소설의 초반부터 시작한 눈물이 끝날 때까지 내내 멈추지를 못한다. 나도 밤에 좀 보다가 잤더니 다음날 눈이 퉁퉁 부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슬픔에 더하여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하는 것이었다. 결코 그 어느 하나의 잣대로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결론 내릴 수 없는 문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면 안되는 거야'라는 말이 있고, 나오키의 삶을 보면 너무나 안타까워서 마음 한구석이 아려오며, 사회가 정이 없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지만 과연 같은 입장에 있을 때 나는 먼저 손을 내밀 수 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종종 그의 작품을 통해서 어려운 문제를 제기해놓고는 그것에 대한 답을 독자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도록 어느 한 쪽 편을 들기 보다는 담담하게 그 문제의 양면을 묘사하고는 한다.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나오키의 좌절과 괴로움을 현실감있게 보여주면서도 또한 한편으로는 한 회사의 사장의 입을 통해 범죄자가 저지른 '사회적 자살'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그것도 범죄자에게는 하나의 형벌이라는 측면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렇다면 아마, 형인 츠요시가 마지막 편지를 썼을 때 그는 그 벌의 참 뜻을 알게 된걸까?)

이 소설을 읽다보니 같은 작가의 '방황하는 칼날'이 떠올랐다. 방황하는 칼날은 편지와는 반대로 '피해자 가족'을 중심으로 쓴 글. 전에 이 책 리뷰도 쓴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함께 읽으면 문제를 바라보는데 좀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페이지를 휙휙 넘기게 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솜씨는 여전하다. 어쩜 그렇게 매끄럽게 잘 읽히는지. 게다가 지금까지 읽은 소설 중에서 읽고 난 후 아무리 못해도 중간 이상의 만족은 줬던 그의 소설들. 그래서 나는 아마 곧 또 다른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읽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