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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크라잉 북 - 지극한 슬픔, 은밀한 눈물에 관하여
헤더 크리스털 지음, 오윤성 옮김 / 북트리거 / 2021년 5월
평점 :
#더크라잉북
<더 크라잉 북>이라는 제목만 보면 울음, 눈물 = 슬픔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감동했을 때 흘리는 눈물, 이유 없이 흐르는 눈물, 이물질이 눈에 들어갔을 때의 눈물, 양파 깔 때 나오는 눈물 등, 눈물도 참 다양하다. 시인 헤더 크리스털은 울음에 대해 '탐구'를 한다. 자신에게 일어났던 개인적인 가벼운 일들부터 시작하여 정치적 사건, 인종차별 문제 등 다양한 시선으로 울음이 끼치는 영향을 조사하며 여러 작가들의 말을 빌려 눈물에 깃든 내밀한 이야기를 공유한다.
밑줄긋기
p81
바다에서 실종된 네덜란드의 퍼포먼스 아티스트 바스 얀 아데르는 몇 편의 유명한 실험적인 단편영화를 남겼다. <너무 슬퍼 이야기할 수가 없어>에서는 손글씨로 된 제목이 몇 초간 떠 있다가 아데르가 흐느끼는 장면이 3분쯤 이어진다.
단편영화 영상이 궁금했는데 혹시나 하고 유튜브에서 I'm too sad to tell you를 검색하니 맨 위에 나온다. 왜 울었을까? 사연이 궁금해지는.
p181
난 헌책에서 작은 얼룩을 발견하는 걸 좋아한다. 이 중 어떤 게 울보 독자의 눈물샘에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해하면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읽을 때 눈물 자국보다도 뭔가 흘린 자국의 흔적을 보면 궁금해진다. 뭘 하면서 책을 읽었던 걸까?
p268
포토샵으로 눈물을 지운 사람의 얼굴 사진을 보여 주면 그 사람이 웃고 있는 건지 울고 있는 건지 구별하기 어려워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움직이는 영상이 아닌 정지된 화면으로 보았을 때, 웃고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했으나 울기 바로 직전의 모습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p291
부알라(Voilà)라고 말한다. 내가 엄마에게 무언가를 가져다줄 때, 그녀를 돌보던 시기에 쓰던 표현.
다른 사람은 그냥 스치듯 아무 생각 없이 흘린 말일지 몰라도 당사자에게는 특별하고 기억에 남는 단어가 있지. 그것을 우연히 들었을 때의 몰아치는 감정이란. 노래도 그렇지 않나? 나만의 추억이 담긴 말과 노래.
마지막 장에 '이 책에 나오는 주요 작가들' 챕터도 눈여겨볼만했다. 그런데 많은 예술가 중에 자살한 인물들이 꽤 보여서 그것은 좀 충격이었다. 우즈강에서 투신자살, 워싱턴 애비뉴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 카리브해로 뛰어들어 자살. 감수성이 풍부하고 기본적으로 예민해서 그런 것일까...? 생각이 많아서 그런지 우울증에도 많이 걸린 듯 보였다. 그중에서 인상 깊었던 인물 두 명.
레나토 로살도 _ p252
필리핀에 사는 일롱곳 부족에게는 머리 사냥이라는 잔인한 관습이 있었다. 한 장소에 매복해있다가, 그곳을 지나가는 첫 번째 사람을 죽이고 그 머리를 베는 것을 말한다. 일롱곳 부족이 머리 사냥을 하는 이유는 가까운 사람을 잃었을 때, 그 분노와 비통함을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런 잔인한 관습이 왜 생겨났는지 알아내기 위해 한 미국 인류학자는 자신의 아내와 함께 현지 조사를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아내가 절벽에서 실족사를 했고, 이를 계기로 그는 비로소 머리 사냥이라는 끔찍한 관행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엽기적이면서 너무나 슬픈 사연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의 무너지는 기분은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겠지만 그 슬픔을 다른 사람을 죽임으로써 푼다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이런 관습이 어쩌다 생겨나게 된 것이고 누가 시작한 것일까? 아직도 관습이 실행되고 있지는 않겠지?
조앤 디디온 _ p171
미국 작가, 저술가. 사회 불안과 정치 스캔들 등 미국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대담하게 써 내려가 작가로, 오바마 정권 시절 인문학 훈장을 수상할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조앤 디디온의 초상'이라고 넷플릭스 다큐가 있다고 하는데, 찾아봐야겠다. 보고 싶은 넷플릭스 리스트에 추가!
부끄럽고 말하기를 꺼려 하는 주제 눈물. 작가 자신도 글을 쓰는 과정에서 눈물에 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한 번이라도 울었던 모든 장소를 지도로 그려보면 어떤 모습일까란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된 더 크라잉 북. 한 페이지 정도의 울음, 눈물에 관한 짧은 글들이 엮여 있어 부담스럽지 않게 읽기에 참 좋다.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많고,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작가들의 글들이 인용되어 필사하고 싶은 문장들도 많이 보여서 더욱더 마음에 들었다는 점. 시간적 여유를 두고 다른 페이지들도 차근히 필사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