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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황무지
S. A. 코스비 지음, 윤미선 옮김 / 네버모어 / 2021년 12월
평점 :
'보러가드' 는 사촌과 함께 작은 정비소를 운영하고 있는
평범해 보이는 한 가정의 가장이지만 사실 그는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업계 최고의 범죄현장 드라이버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 어둠의 세계에서 발을 뺀 그였지만
딸의 대학 등록금, 어머니 요양비, 밀려드는 대출금... 파산 직전의 현실적인 문제들이 한꺼번에 덮쳐오니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가장 어려우면서도 쉬운 그 일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하필 딱 이때 ~ 예전 동료였던 '로니'가 보석가게 강도 작업을 제안하는데
절묘한 타이밍, 절실한 상황에 이미 대답은 정해졌으니
마지막 딱 한 번!!! (이 말처럼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말이 또 있을까요.)
어둠 속을 향한 질주, 그의 드라이빙이 다시 시작되게 됩니다.
생의 출발선상에서부터 공평하지 않은 레이스를 달려야 하는 사람들, 결국 어둠의 생활로 들어서는
그들의 삶을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서 무수히 보아왔는데
주인공 보러가드 역시 그러합니다.
다만 지금의 그는 과거를 완전히 청산해야 할 이유와
꼭 이 길을 선택하지 않아도 될,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다른 선택지도 분명 존재하긴 합니다.
여기에 작가는 '몽타주 집안'이란 이중장치를 해놓는데
그도 어쩔 수 없는 끈끈한 피가 흐른다는 것이지요.
피는 물보다 진하다... 보러가드에겐 가족애와 가족력, 모두에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 우리는 결국 태어난 태어난 대로 사는거야." (p 178)
" 전 항상 제 자아가 두 개라고 생각해왔어요, 어떨 때는 버그가 됐다가, 또 어떨 때는 보러가드가 되는 거죠. 보러가드에게는 와이프와 아이들이 있어요 ··· "
(P 342)
'버그', '보러가드' ... 이 두 개의 자아를 분리해서 생각했던 그가 이 둘이 공존할 수 없는 현실을 느끼며 결국 어느 자아를 선택하게 될지
'나'는 또 어떤 그를 기대하고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가장 생각하게 되는 부분입니다.
가족에 대해서만큼은 뭉클한 이 남자 '보러가드'지만
날카로운 직감, 냉철한 행동으로 거침없이 나아갑니다.
그냥 범죄조직의 드라이버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나'야말로 그를 과소평가했던 건 아닌지 ...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이어지면서
화려하지는 않은 '버그(보러가드)'란 캐릭터에 완전히 빠져들게 됩니다.
기술이라고는 운전밖에 없지만 타고난 감각이 이끄는 움직임은 부족함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자, 날아오를 시간이다." 보러가드의 속삭임으로 시작되는 질주는 짜릿한 전율과 함께 엑셀러레이터를 밟으며 그 누구도 멈출 수 없게 만드니까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장면 장면들이 눈앞에 그려지는데 이것은 이 작품이 가진 매력의 일부일 뿐입니다.
지나침 없는 감정으로 무덤덤한 듯 그려지지만
군더더기 없는 섬세함으로
오히려 그래서 더 그에게 집중하게 됩니다.
결코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을 보러가드, 그의 삶이 페이지 끝으로 전해지는데
영화에서처럼 일방적으로 장면에 끌려가는 것이
아닌 그와 함께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나 할까요.
책을 읽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맥주 한 캔을 마시면서~
어둠의 황무지로 향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극찬,
압도적인 수상작으로서의 작품성과 재미는 이미 예상했지만
남은 페이지가 줄어드는 게 너무 아쉬울 만큼
맘껏 즐겼던 시간이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적 요소를 식상하거나 뻔하지 않게
어떤 장면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으면서도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글을 읽는 즐거움까지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올해 읽은 최고의 스릴러, 저만의 평가를 내려봅니다.
S.A. 코스피 처음 만난 작가지만
엄청난 필력을 제대로 느낀 터라 벌써 작가의 다음을 기대하며, 기다려봅니다.
-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