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 경계의 시간, 이름 없는 시절의 이야기
허태준 지음 / 호밀밭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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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평>

졸업과 취업, 그 내면을 들여다보다

 

 

1. 학생들, 교문을 나서다

나는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20여 년 간 밥벌이를 하면서 여러 아이들을 만났다. 나는 오래 눌러 앉아 있으나 아이들은 3년을 다니고 좋든 싫든 학교를 떠난다. 졸업한 아이들은 간간이 소식을 전해온다. 사회나 대학에 적응이 끝나면 뜸해진다. 연락이 닿지 않게 되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셈인데, 교사들의 관심도 거기까지이다. 간혹 그렇지 않아서 십 수 년이 지나도록 소식을 주고받는 아이들이 있지만 성공(?)하였거나 여전히 힘들거나 한 아이들 몇몇이 그럴 뿐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렇게 잊혀지고,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게 된다. 사회의 변화를 가늠하면서 세상 속으로 나아 간 아이들의 속사정들을 다만 짐작할 뿐이다.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들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과 달리 특성화 고등학교 학생들은 절반이 취업을 하고 절반은 진학을 한다. 최근에는 취업하려는 학생들이 훨씬 많으나 그들을 모두 수용할 만한 현실적 사회적 환경과 여건은 여전히 충분하지가 않다. 적성과 재능, 장래의 희망, 성적, 집안 사정 등 학생들의 진로 결정 앞에 놓인 선택지는 고려해야 할 요인들이 다양하다. 특별히 정해진 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성공하기도 하고 더러 실패하기도 해서 선택과 결정의 순간 그 명암은 서로 엇갈린다. 먼 장래를 두고 보면 어떤 결정이 옳은 것인지 예단하기 힘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람의 일을 운발이라 말할 수는 없다. 학생은 학생대로, 교사는 교사대로 최선을 다한다. 학생은 목표한 곳에 지원할 자격을 갖추기 위해 오래 공들이며 노력하고, 보다 나은 조건의 취업처를 찾아 지원하고, 몇 차례의 시험과 면접을 준비한다. 교사도 늘 거기 함께 있다.

어떻든 학생들은 교문을 나서고, 더러 교복 대신 작업복을 입고 그들의 세상과 삶을 맞이하게 된다. 가르치는 일에는 한결같았을지 모르나, 그것으로 교사가 할 도리를 다했다고 하면 학교를 나서는 아이들은 기댈 데가 줄어들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미주알고주알 간섭할 수도 없다. 그래서 다만 아이가 나서는 바깥의 사정은 어떠한지, 그곳의 환경과 인식은 사람이 사람답게 노동할 만한 곳인지 살피는 것을 외면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2. 마이스터고 졸업생의 자전적 에세이,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우리가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그 말과 행위에 주목한다.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사람의 말과 행위가 성실하였는가, 진실하였는가를 따져보게 된다. 성실성은 게으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진실성의 문제도 단순한 거짓의 반의어가 아니다. 성실함과 진실함에는 진정성이 뒤따른다. 진정성은 어떠한 타율적 규범이나 질서가 강요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내면의 온 정성이 그가 이루고자 한 일에 고스란히 스며있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나아가 그 언행이 개인의 성취뿐만 아니라 사회의 가치 실현에도 기여하고 있는가를 따져보게 된다.

사람이 쓴 글을 평가하는 것도 이러한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체험과 사유가 녹아있는 자전적 에세이를 마주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의 삶이 성실하였는지, 진실하게 세상을 살았는지 보게 된다. 그리고 말하고자 하는 것의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 자기 환경을 해석하고 대응하며 삶이 어떠한 굴곡과 변화를 겪었는지, 대안적 삶은 어떻게 설계하였는지, 반성적 성찰이 우리시대의 주류적 흐름과 모색에 닿아 있는지 등을 살펴보게 된다.

허태준은 마이스터고를 다녔다. 학교를 다니면서 현장실습을 하고, 졸업하고 산업체기능요원으로 복무했다. 그의 목소리는 앳되지만 현장에서 성실하게 일했고, 정직하게 자기 삶을 감당하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경계의 시간, 이름 없는 시절의 이야기(호밀밭, 2020)는 그가 쓴 자전적 에세이다. 책 속에는 현장에서 일한 경험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현장실습생으로서 겪은 혼란과 학창시절의 추억, 불안했던 정서들, 산업기능요원으로 회사에서 겪었던 크고 작은 사건과 갈등, 타인과의 관계, 차별과 편견, 또 다른 삶에 대한 꿈등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은 21세기 한국 사회 청년 노동자의 삶을 들여다볼까 한다.

우리 시대를 사는 아이들은 어느 지점에서 열의를 쏟고 보람을 느끼는지, 또 어느 지점에서 힘들어하며 머뭇거리는지를 한번 살펴보려 한다. 우리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어떠한 점에 관심을 갖고 집중해야 하는지, 아이들을 담는 사회는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려고 한다.

 

3. 현장실습과 산업체 기능요원 근무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여름까지 프로 선수를 꿈꾸며 야구를 했다. 백일장에 입상한 경험도 있어서 문예창작과가 있는 예술고에 진학하고 싶어 했다. 작은형이 대학을 가서 집안의 학비 부담을 들려고 마이스터고에 진학을 한다. 가정 형편으로 자기 의지와는 거리가 먼 진로를 결정한, 우리 주위의 흔한 친구 중 한 명이다. “기능부나 운동부처럼 교실을 벗어난 아이들을 더 이상 교육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불편한 기억을 가진 학생이다.

학교에서 수업하는 동안, 가끔 실습하면서 고개를 들었을 때 굉장히 낯선 기분들과 마주하곤 하면서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었다고 술회한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아쉬운 대로 여전히 시를 보면 가슴이 뛰고, 공책 빈자리에 수많은 문장들을 적어 두기도 하면서 편안하고 괜찮은 학교생활을 이어간다. 그의 주위에는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인문계에서 대학 가기에는 성적이 애매해서 대기업 취업을 희망하며 진학해 온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재학 내내 중상위권 성적을 유지했고, 5개의 기능사 자격증, 다수의 입상 경력이 있었으나 토익 점수만큼은 형편없었다. 대기업에 취업하지 못하고, 3학년 9월에 중소기업에 나가 현장실습을 한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일을 하고, 방송대학 프라임칼리지 강의를 듣고, 동창들이 다니는 대학의 독서 모임 등에도 참가한다. 현장실습이 끝나자 산업기능요원으로 편입된다. 열아홉 살부터 일을 시작하여 소집해제까지 37개월 간 근무한다. 일하는 청(), 대학생이 아닌 이십대, 군인이 아닌 군 복무자, 어느 한쪽으로도 완전히 넘어가지 못한 채 경계 위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는 그의 술회 속에 산업기능요원의 위치가 드러난다.

그러나 근무하는 동안 힘들기는 했지만 기댈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고 했다. 회사에 다니며 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 매달 들어오는 월급,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친구들,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독립적인 감각, 홀로 글을 쓰는 긴 새벽의 시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게 많다는 믿음을 그는 갖고 있었다. 그가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하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듣는 것이, 그의 자전적 에세이를 읽어 내려가는 문법이다.

 

4. 취업과 일, 업무일지와 불안들

그의 취업 초기 기록은 이러하다. “학교에 다닐 때는 시험기간에 요약노트 만들기를 했다. 나름 효율적인 공부법으로 묵묵히, 교과서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흩어진 정보를 압축하고, 최대한 짧고 간단하게, 단어나 핵심 위주로, 쓸데없는 정보를 걷어내면서 정리해나가면 안심이 되었다. 회사에서도 불안한 마음이 크면 클수록, 나는 더 끈질기게 무언가를 기록했다. 처음 회사에 출근했을 때도 그랬다. 조명 사이로 피어오르는 먼지와 심장을 죄는 기계음. 열아홉의 나는 긴장감에 계속 마른침을 삼켰다. 학창시절의 부드러운 여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날카롭고 뜨거운 것, 자칫 나를 상처 입힐 것만 같은 낯선 형상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작업복을 걸쳤을 뿐 공부하듯이 업무를 처리하고, 학교에서 배운 방식대로 자기 일을 놓치지 않고 야무지게 하려는 이 청년은 긴장을 통해 자기 불안을 관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의 스트레스는 여느 숙련 노동자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구든 처음에는 다 그런 것이라 말할 수 있지만 직업 사회로 진입하는 아이들의 감당하기 힘든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몇 마디 말 속에는 그의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는 회사의 공무팀에서 근무했다. 공무팀은 정해진 업무 대신 공장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부서로, 제품을 만드는 일과는 다른 업무였다. 공장에는 수많은 기계가 있고, 그 기계들은 필연적으로 여러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이었다. 기계가 멈춘다는 건 작업이 멈춘다는 이야기고, 그러면 생산성과 매출에 지장이 생기게 되니 공무팀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며 공장이 계속 돌아갈 수 있도록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 팀이었다. 알아야 하는 지식도, 다루어야 하는 기계도 다른 부서에 비해 훨씬 많았다. 그는 기계 사용법, 공구 위치, 주의해야 할 점, 말썽을 자주 일으키는 기계와 대처 방법, 강조해야 할 점과 조심해야 할 부분 등 흩어진 말들을 주워 모아 수첩에 적고 퇴근 후 다시 공책에 옮겨 적는 일을 반복했고, 그가 겪어 온 불편함과 개선점을 기록했다고 한다. 거기엔 과하다 싶을 만큼 온갖 사소한 내용도 수첩 여백을 채우고 있었다고 한다.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는 지식이, 열아홉의 그에게는 낯선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소중한 조각이었다. 무서우니까. 의지할 곳조차 마땅치 않기에 자꾸만 돌아보고, 되묻게 되고. 사람이 불안하면 무엇이든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써내려 간 업무일지는 그의 불안을 상쇄시켜 준 훌륭한 동료였던 셈이다. 적어도 그에게 첫 직장은 즐거운 곳이 되진 못했던 것 같다. 그는 현장실습에서 시작하여 37개월 동안 같은 회사에서 근무했다. 기계 설비를 고치고, 하루 10시간씩 이어지는 노동을 했다고 한다. “다시 철을 깎고, 기계를 고쳐야 한다. 용접할 일도 산더미였다고 하는 한 문장이 그의 고단함을 짐작하게 해 준다.

친구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는 그들의 노동 강도는 만만치가 않다. 그의 친구는, 선임 작업자가 그만두자 곧바로 금형 기계를 전담하며 아침에 일을 시작해서 새벽에 퇴근하기도 하였다는데, 월급 명세서에 잔업 200시간이 찍혀있었다고 한다. 최저 임금으로 월급을 300만 원 가까이 받는다고. 일반 노동자가 아니므로 퇴사나 이직이 쉽지 않으니 회사는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한다. 그 친구의 가족들도 그에게 그 정도는 버틸 만하다고 했다는데, 출발한 열차에서 내리기가 수월찮듯이 주위의 정황들은 사슬처럼 엮여 있는 법이다. 한번 발 들여 놓은 직장이라는 곳은 쉽게 벗어날 수가 없는 곳이기도 하다. 52시간 근무제(법정근로 40시간, 연장 근로 12시간)에서도 한참 더 나아 간 잔업 200시간을 한다는 것은 공분을 살 만하며, 지금도 이러한 일이 현장에서 일어나며 실제 가능하다는 것이 다만 놀라울 뿐이다.

그의 또 다른 문장을 보자. “취업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두근거리는 마음, 기대, 가능성은 하나둘 사라지고, 해야만 하는 일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나름대로 깊이 고민하고 선택한 회사도 다니다 보면 아쉬운 점이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선택은 성취가 아니라 상실인지 모른다. 손에 넣지 못한 미래가 어느새 닿지 않는 먼 곳으로 떠내려가는 것이다. 생각보다 더 힘들었고, 생각보다 더 억울했고, 생각보다 더 부족했다. 정신 차려보면 도망갈 곳조차 마땅치 않은 자신을 마주해야 했다. 가끔은 정말 숨이 막혔다.”

선택을 성취가 아니라 상실이라 말하는 데서 가슴이 아프다. 누구든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꿈꾸며 살아가지만 현실에서는 무엇인가를 시작한다는 것이 꿈꾸어 온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는 일이라는 평범한 이 말이 다소 서글프기까지 하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며, 미래의 꿈이 현재의 선택에서 일그러지는 경험을 교복을 벗고 작업복을 입은 첫 직장에서 마주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참 가슴이 아픈 것이다.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가 열려 있고, 과정도 공정하며, 결과도 정의롭다고 하지만 실상 그러한지 의문일 때도 있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상실에 관한 통찰을 인간 세상은 비켜갈 수 없으니 안타까운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첫 직장에서 겪지 않아도 될 일을 너무 많이 겪은 것 같다는 그의 진술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5.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배려, 갈등, 수치심들

기업은 일을 하는 공간이다. 일 중심으로 사람이 준비된다. 경력과 숙련 정도에 따라 업무의 경중이 나눠지고 그 효율을 따져 배치된다. 나머지 사정들은 부수적이고 후순위 고려 대상이다. 적어도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생산성의 노예일 수밖에 없다. 이익을 내는 것이 기업 경영의 궁극적 목적이니 이러한 대전제는 언제나 옳다. 그러나 직장을 바라보는 관점은 좀 다를 수 있다. 이익을 내는 것이 경영의 관점이라 한다면, 직원의 복리 등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그 반대편의 입장이다. 기업의 가치 창출이 투자 자본과 경영 전략에 달려있다고 하는 주장이 존중받으려면 그것을 지지하고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인간의 노동이라는 전제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직장은 고유한 분위기를 갖고 있고, 그것이 직원들의 심리 상태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노동하는 사람들의 인간관계도 그 영향 아래에 놓인다.

산업기능요원은 병무청에서 지정한 산업체에서 210개월 간 근무하면 현역 입대를 하지 않아도 군 복무를 이행할 수 있는 대체복무 제도이다. 공기업이나 규모가 큰 기업은 지정 업체에서 제외되고 중소기업이 주로 이들 지정 산업체에 해당한다. 취업하는 이들은 대부분, 조건이 다소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군 문제를 해결한 후 이직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산업기능요원 복무를 희망한다고 한다. 육군 병장의 복무가 16개월인 걸 감안하면 긴 시간이지만, 회사에서 일한 경력을 인정받으며 적지 않은 돈까지 벌 수 있으니 군대에 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조건이기도 하다.

저자가 근무하는 직장은 보람된 공간이면서 불편한 곳이기도 하다. 다른 부서와의 갈등, 선배의 일방적 언사와 그에게서 느낀 모욕감, 회식 자리에서의 욕설과 멱살잡이 등 숱한 일들이 지나간다. 외부 기관에서 방문하여 근무 실태조사를 하면서 폭행이나 폭언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하고 넘어가겠다고 할 때 그가 어떠한 종류의 수치심을 느꼈다고 하는 것은 상처에 관한 은유적 표현으로 읽힌다. 근무하는 회사를 의심하고 이런 저런 조건을 확인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할, 부정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기숙사에 유령이 산다는 그의 표현도 마찬가지다. 투명인간처럼 기숙사 방에 갇혀 있는 듯한 그는 끊임없이 질문한다. 왜 열아홉 살부터 일을 했을까, 왜 돈을 벌어야 했을까.

그는 불안을 이야기하지만 낙천적인 데가 있다. 일 처리가 서툰 후배의 어깨를 두드린다. 함께 일하는 동안 누구도 다치지 않기를 바라면서. 업무의 뒤편에 여전히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의 기록을 보자. “나는,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독서모임을 하고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나는, 한 번도 구속된 적이 없었다. 하루 12시간을 공장에 있으면서도,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쓰면서도, 세 명이서 지내는 여섯 평 남짓한 기숙사 방에서도, 나는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훈련소에서도 계속해서 책을 읽고, 끊임없이 뭔가를 썼던 것처럼. 사건과 대립하는 자아가 아니라, 사건이 지나가는 통로로써 자신을 인식하는 순간, ‘는 사건으로부터 독립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젊은 영혼의 목소리가 자유를 말하는 것은 늘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그 무엇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그들의 특권일 것이므로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는 아이들이 모두 이러한 생각으로 자기 삶을 살기를 기대한다. 사건이 생길 때마다 예민해지다보면 그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지 않겠는가. 이것 또한 지나가는 것이며, 다만 그 통로에 내가 서있는 것이라는 인식은 얼마나 놀랍고 신선한 것인가.

 

6. 돈과 가족, 그리고 소외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아이들이 특성화 마이스터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경향이 있다. 성적도 그만그만해서, 대학을 가더라도 수많은 대학생들의 틈바구니에서 다시 취업을 준비해야 하고, 빚을 내어 기회비용을 들이더라도 좋은 직장을 구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기 취업을 해서 돈을 모으고,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겠다는 아이들의 생각은 대견하고,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젊은 시절에 부지런히 일하고, 알뜰하게 모아서 자수성가한다는 것이 한국사회에서는 오히려 익숙한 이야기다. 자기 노동을 통해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꿈을 꾸고, 실제로 목표를 성취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모든 것이 꿈꾸는 대로 이루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겠는가.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현장실습일 때는 기본수당과 정부보조금을 합쳐 130만 원 정도의 급여를 받았다. 월급 통장과 카드는 어머니가 관리했고, 한 달에 20만 원의 생활비를 받았다. 그 돈으로 휴대전화 통신 요금을 내고,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서 책을 사고, 주말에 가끔 친구를 만나 영화를 보고 커피를 마셨다. 학교를 졸업하고 잔업을 하니 들어오는 돈이 더 많았다. 100만 원은 적금으로 넣고, 생활비를 제외하고 남은 돈은 다른 통장에 모았고, 그 돈으로 노트북을 사고, 일본어 학원에 다니고, 방송통신대학교 등록금을 내고, 서울에 올라가고, 주변 사람들한테 가끔 술 한 잔 정도는 살 수 있었다. 내가 모은 돈인데도 통장으로 들어온 금액을 환산하니 놀라웠다. 성취감만큼이나 잘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좋았다. 하지만 그런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집에서 돈을 보내줄 수 있냐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빚이 있는데, 이자를 너한테 주는 게 낫지 않겠나, 매달 얼마씩 갚으면 어떨까. 더 묻지 않고 예금을 깼다. 다음 해에는 한 번 더 돈을 보냈다. 1년 만기 적금에, 생활비를 아껴가며 모은 돈까지 전부 보냈다. ATM의 이체 한도는 600만 원이어서, 몇 번이나 같은 계좌의 비밀번호를 반복해서 입력해야 했다. 돈을 다 보내니 명세표 3장이 남았다.”

일하는 그의 주변 젊은 친구들은 대부분 집에 돈을 보내고 있었다. 대단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돈이 전부가 아니니까. 하지만 열아홉 살부터 일을 시작한 젊은 청년이 이러한 현실을 잘 이겨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로부터 빨리 돈을 벌어서 좋겠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그로 인해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했다고 한다. “시간을 지식으로도, 경험으로도, 새로운 기회로도 온전히 치환하지 못한 채 돈을 빼면 뭐가 남는 것일까,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공허한 마음으로 2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것일까하는 탄식을 한다. 그들의 부모가 뭐 때문에 필요했다, 어디다 썼다, 고마웠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그 돈들을 모두 가져갔을 때, 그들 젊은 청년들의 좌절과 탄식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성취감은 흩어지고, 불안 속에서 키워왔던 안도감도 일순간 사라져버리지 않았겠는가. 이때도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은 그들의 영혼에 어떤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 등장하는 그레고르가 불현듯 떠오른다. 그는 파산한 아버지의 채무를 온전히 자기 힘으로 해결해 가면서 가족을 부양해가는 청년 가장이었고 여동생의 학업까지 챙긴, 성실하고 모범적인 노동자였다. 벌레로 변신하기 전까지 그는 일벌레로 살았다. 한 가족의 생계가 그에게 달려있었고, 가족의 화목과 연대와 배려가 모두 그의 경제적 능력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자기희생적이었던 그레고르는 가족으로부터도 구원받지 못했다. 버림받다시피 했다. 역설적이게도 소설 속 그레고르는 경제적 이해관계 속에 매몰되어 버린, 현대사회의 소외된 인간 화석 정도로 발견될 뿐이다.

몇 해 전, 내 수업을 듣던 어느 학생이 <변신>의 독후감에 이런 생각을 적은 적이 있다. 그레고르가 벌레인 채로 죽자 잠자 부부의 눈에는 딸의 모습이 그들의 새로운 꿈과 아름다운 계획을 다짐해주는 확증처럼 보였다. 도무지 이해하기조차 힘든 가족인 것 같다. 새로운 꿈, 아름다운 계획, 왜 그것을 딸의 모습에서 찾을까? 자신들의 힘으로 해도 얼마든지 노력하면 가능할 것 같은데, 어떻게 딸에게 그것을 바라는지. 잠자 부부가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 (……) 이 책을 읽고 다시 한 번 돈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커서 부모님께 돈을 가져다 줄 때가 되었을 때, 우리 부모님도 나를 돈으로 생각할까 걱정도 많이 되지만 자식을 돈으로만 생각하는 잠자 부부처럼 저렇게 심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가 응시하는 또 다른 곳을 인용해 보자. ‘52시간 근무제’, 혹은 저녁이 있는 삶과 같이 더러 제도를 바꾸고 인식을 전환하려 하지만 현실의 경제적 효용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돈은 힘이 세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정서적 밴드는 이기적으로 회피할 수 있는,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느슨하지가 않다. 사람을 분발하게도 하지만 한없이 옭아매기도 한다.

잔업 없는 한 달. 시급제가 기본인 현장에서 잔업이 없으면 월급에 차이가 컸다. 누군가에게는 몸이 힘들고 시간이 없어도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지켜야 하는 가정이, 키워야 하는 아이가 있었다. 현장실습생으로 입사해 산업기능요원으로 편입한 이들 중에는, 마음 한편으로 회사를 거쳐 가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직원들은 아니었다. 나이가 많을수록,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을수록, 회사를 그만두거나 옮기는 선택을 쉽게 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회사는 환승역이 아닌 도착지였다. 통근버스에는 얼마나 많은 삶의 무게가 쌓여 있는 걸까.

삶을 기차 여행에 비유하며 간이역이나 환승역이나 종착역과 같이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그것을 회사나 직장에 관한 것으로 대치하여 두고 보면 조금 서글퍼지는 데가 있다.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누군가에게는 소진되다시피 했을 테니 도착역이라는 비유는 사뭇 의미심장하다.

 

7. 고졸 취업에 대한 정부 정책의 전환, 여전한 사회적 편견들

특성화고 학생들의 취업과 진학률의 변화 추이는 중요하다. 이들 자료는 진로 지도의 방향을 알려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국 사회와 한국 경제의 현재와 미래가 여기에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무적 판단까지 개입되면 한층 복잡해지고 심각해진다.

2001년에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자의 취업률은 61.9%, 진학률이 30% 안팎이었다고 한다. 2010년에는 서울지역 특성화 고등학교의 취업률이 19.1%, 진학률은 71%였다고 한다.(2010년도 서울교육통계 분석 자료집 참조) 10년 사이에 취업률이 심각하게 무너져 내리고, 대기업의 비인기 생산직종이나 중소기업 현장의 인력난은 심화되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으나 대체로 고졸자에 대한 차별대우, 열악한 노동 환경과 지나친 노동 강도, 외국인 노동자의 증가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2011년이었다. 당시 정부는 이러한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친서민 친기업을 표방하면서 고등학교 직업교육정책의 일대 변화를 단행한 바 있다. 취업률 50% 이상 달성을 목표로 마이스터고의 확대, 특성화고의 구조 조정과 장학금 지원, 특성화고 특별전형의 폐지와 재직자 특별전형(선취업 후진학)의 확대 등 굵직한 정책을 도입하였다. 특히 교육과학기술부는 고등교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특성화고 졸업생의 주된 진학 방식인 정원외 동일계 특별전형은 폐지하고 대신 정원외 재직자 특별전형을 단계적으로 확대하여 특성화고 진로 정책에 획기적인 변화를 도모하고자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산업체에서 3년 이상 일을 하고, 그것을 경력으로 대학을 가는 정책으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대학에 진학하려는 상당수의 인력을 기업의 생산 현장으로 안정적으로 제공하려는 이 정책은 청년실업 해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및 인력난 해소, 왜곡된 교육과정의 정상화라는 목표로 추진되었다. 마이스터고는 삼성전자 등 대기업에 인력을 공급하고, 특성화고는 중소기업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뒤를 이어 기업 지원 정책과 특성화고 등에 대한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포함한 다양한 신사업들이 고용노동부와 중소기업청, 교육부를 중심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정책은 일시적인 취업률의 상승효과를 가져오긴 했으나 현장에서 각종 사건과 사고를 유발하였다. 시장의 수급 원리에서 벗어난 일방적 노동력 공급 정책의 폐단 때문이었다. 2018년 하반기부터 학생들의 안전과 권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현장실습의 기준이 바뀌었고,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는 등 그 부작용에 대한 일련의 후속 보완 조치가 있었다.

이러한 정책은 국가의 인력 재배치 전략으로 고졸자가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취업하도록 하여 기업 채용 환경의 획기적인 개선을 기대한 큰 그림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고졸 취업률은 일시적 회복에 그치며 여전히 저조하고, 정부의 고졸 취업 활성화 대책들이 겉돌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중소기업은 좋은 고졸 인재를 찾지 못하고, 고졸자들도 괜찮은 중소기업을 찾지 못하는 일자리 수급 미스매칭(불일치)’ 현상이 갈수록 심화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고졸 신규인력 수급 전망치(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8년까지 고졸은 수요 대비 공급이 60만 명가량 부족한 상태라고 한다. 어느 중소기업 대표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허드렛일도 많고 적성에도 안 맞는다며 고졸 채용자의 90% 정도가 중도에 퇴사하는 경향이 있는데, 대기업으로의 이직이나 대학 진학 등이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 중소기업에 5년 이상 일할 생각으로 입사하는 사례가 드물다는 것이다. 임금과 차별대우 때문이라고 한다.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고졸자의 취업 기피 원인을, 고졸과 대졸 간의 임금 격차가 커진 데서 찾는다. “고졸자는 사회적 지위나 보수 면에서 ‘2등 시민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여전하다.”는 주장은 과장이 아니다. 또 다른 원인은 현장의 열악한 환경과 감당하기 힘든 노동 강도에 있다. 젊은 나이에 수도 없는 공장 노동자들이 쓰러졌고, 사용자들은 그들을 외면하였다. 한국 사회는 경제적으로, 환경적으로 열악한 노동 현장을 방치했다. 노동에 대한 대가가 보잘 것 없었으므로 노동은 천시되었고, 그 대안으로 선택된 것이 대학 진학이라는 모순된 돌파구였던 셈이다. 기업은 기업 나름대로 고민이 있겠으나 과거의 관행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면 젊은이들로부터 계속 외면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젊은이가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학벌이 보잘 것 없더라도 기술과 능력과 노동력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을 보장하는 주체가 기업이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8. 왜 공부하려 하고, 왜 진학을 꿈꾸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졸 취업과 관련하여 정책 당국과 학교와 기업 현장은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선진한 나라의 사례들도 속속 들여와서 우여곡절을 겪고 있으나 잘해보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지점에서 다시 묻게 된다. 그런데 왜 공부하려 하는가, 왜 굳이 대학에 가려 하는가. 분명 이 물음은 오래된 것이며 낡은 것이다.

대학이 편안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하며 비교우위의 신분을 보장하는 통로로 유용하다는 것이 한국사회에 통용되던 현실 문법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여전히 유효한지는 따져보아야 한다. 대학 졸업장이, 과거 경제가 성장하던 때처럼 취업을 보장하는 자격증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학교는 남아돌고 사람은 귀해지니 대학을 진학하는 것이 특별한 일도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흔한 것이 대학생이다. 사람들은 공공연히 말들 한다. “대학은 자본과 대기업의 인간제품을 제공하는 하청업체로 전락한 지 오래되었으며, 졸업장과 자격증이 확실한 인간 제품을 보증하는 수단이 될지언정 인간 됨됨이를 판별하는 기준이 되지는 못한다. 본래의 대학은 죽었다고 선언되는 지경이니 그 속에 몸담은 대학생들의 삶도 이제는 녹록치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학생들은 여전히 진학을 하려고 하며,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취업 초기 그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회사를 그만두고 6개월 어학연수를 떠났다는 친구에게 그가 쓴 편지 일부다. “삶은 계속 이어지는데, 생각은 뚝하고 끊어져 우리를 황당하게 했어. 더 이상 들어야 하는 수업도, 해야만 하는 숙제도, 동아리도, 학생회도, 직접 만들기도 했던 토론회도 없었지. 대신 일이 있었어. 땀 흘려 일하고 대가를 받는 노동이 있었지. 그게 싫지 않았는데, 그것만 해도 괜찮은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어. 가만히 있으면 세상이 우리를 게으름뱅이 취급하는 것 같았지.”

아마 현장실습을 시작하던 때인 모양이다. 공부만 하던 학생들에게 교실 수업과 과제가 사라지고, 친구들과 함께하던 동아리 형태의 모임도 사라지고, 오로지 일에만 전념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는 것은 낯선 것이며, 과연 이래도 되는가 하는 불안이 그 속에 깃든다. 준비되지 않은 존재의 이전은 스스로를, 하찮은 곳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내몰기까지 한다. 일하는 자의 자세와도 거리가 있다. 무엇인가를 더 하지 않는 한 자신이 게으름뱅이 같다는 인식이 그러하다. 스스로의 삶에서 결핍을 발견하는 것이다.

대학 간 친구와의 대화에서 그가 말한 것을 더 들어보자. “너도 그렇고, 고등학교 친했던 애들은 다 서울권 대학에 갔으니까. 부러웠지. 나는 공장에 있는데, 자꾸만 뒤처지는 것 같고, 덕분에 열심히 살기는 했어. 시간이 지났을 때 친구들한테 부끄럽지 않고 싶었어. 돌아보면 다 나쁘지 않게 살았던 것 같아. 그래도 역시 부러웠던 건, 혼자서 하기 힘든 공부도 있다는 거야. 나도 철학이나 사회학 같은 거 배우고 싶었어. 나도, 공부를 더 하고 싶었어. 이 이야기를 하고 가슴이 먹먹해지더니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대학과 공장을 비교하고, 스스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지만 뒤처지는 듯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다. 철학이나 사회학을 배우고 싶다는 것을 지적 허영이라 하면 가혹하지 않겠는가. 부족하다고 여기고 스스로 교양 있는 그 무엇을 원하는 것이 잘못이라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는 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누구에게는 원하기만 하면 당연히 보장되는 것들이 또 누구에게는 이렇게 간절한 것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9. 일과 공부를 함께 한다는 역설

마이스터 고등학교가 막 생기기 시작할 무렵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내세웠던 정책이 선 취업 후 진학이었다. 말하자면, 굳이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 취업을 먼저 하고, 일을 하면서 학위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취득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겠다. 기업들과 MOU를 체결하고 원격수업도 지원하겠다. 경력과 학업,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도록 지원하겠다. 대략 그런 내용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하면서 공부를 했다는데,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정부와 어른들은 선 취업에는 유달리 신경을 썼지만, ‘후 진학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스물한 살이 되어서 방송대학을 다녔다. 정확히는 프라임칼리지라는, ‘선 취업 후 진학정책에 의해 생겨난 부속 기관의 학위 과정이었다. 재직자 친화형 체제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100% 온라인 강의와 시험이 이루어진 덕분에 컴퓨터만 있으면 어디서든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원하는 과정이 금융과 공학 두 가지밖에 없었다. 나는 첨단공학부 산업공학 전공이었다. 강의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첫 학기 성적도 괜찮아서, 다음 학기에는 등록금을 내지 않고 장학금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잔업이 끝나는 저녁 8시에 퇴근을 하고 샤워를 하면 금세 9시가 가까워졌다. 한두 시간 정도 공부를 하고, 가끔 과제가 있을 때는 더 늦게까지 하거나 일요일에 몰아서 해결했다. 토요일에는 일본어 학원에 갔다. 일주일짜리 시간표를 그림으로 그렸다면 아마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게 정부에서 그렇게나 큰소리치던 선 취업 후 진학인가. 그러니까 이건 기회고 나는 지원을 받고 있는 건가. 그때를 돌아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치열하게 습득한 지식이 아니라 매일 같이 나를 짓누르던 졸음이었다. 그래도 공장에서는 항상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거칠고 날카로운 기계 소음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가끔은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풀려 당황한 적도 많았다.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한 새벽에는 다음 날 출근이 겁이 났다. 지금 사고를 당하면 누구도 원망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몇 번이나 다그쳤던 밤들, 주말조차 마음 편히 쉴 수 없었던 일상 속에는 짙은 두려움이 있었다.”

졸음, 긴장, 두려움과 같은 몇 개의 단어로 그의 생활은 요약된다. 이야기를 더 들어보면서 어떻게 환경에 적응하고 자기 삶을 해석하고 있는지 보자.

지금 보면 선 취업 후 진학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인 것 같아. C와 통화하며 그렇게 말했다. ? 마이스터 고등학교라는 게 학벌주의 없애고 능력 중심 사회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세운 거잖아. 그런데 결국 사회적 의무를 개인에게 전가한 것뿐이야. 마음만 먹으면 공부할 수 있는데 왜 안 하냐는 식이지. 그렇게 힘들게 학위를 얻은 사람들은 또 고졸을 무시할 거잖아. 그래야 자기 노력에 의미가 생기니까.”

세상일들 중에는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있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들도 많다. 대신 가치 있는 것일수록 대가가 필요하다. 대가를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별 볼일 없는 것으로 취급당하는 성취들이 있다. 그는 자기가 다니는 방송대학의 프라임칼리지라는 과정이 지닌 사회적 가치를 간파하였고, 그것의 매력을 일순간 잃어버렸다. 어쩌면 한 가닥 꿈이 왔다가 사라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환승역의 딜레마인가 싶기도 하다.

수 년 전에, 한 여대생이 서울의 어느 대학을 다니다 스스로 그만두며 한 말이 있다. “오늘 저는 대학을 그만 둡니다. 진리도 우정도 정의도 없는 죽은 대학이기에라고. 무엇이든 그 대상이 본래의 모습에서 멀어지면 매력은 사라진다. 노력도 허망해진다. 눈 밝은 자가 그것을 보고 느낀다.

 

10. 삶을 성찰하다, 근본적으로

학생들이 교실에서 시험을 칠 때, 답이 보이지 않으면 오래 머뭇거린다. 마침 종을 칠 때까지 뭉개고 있으나 그런다고 정답을 반드시 맞히리란 법은 없다. 헷갈리고 답답하니 어떤 선택을 유예하고 시간이 끝내주기를 기다린다는 표현이 오히려 적확할지 모른다. 그렇다. 답을 알 수 없을 때 생각을 길게, 오래 해 보아야할 때가 있다. 그것이 풀 수 없는 문제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이며, 궁극적인 해결의 자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든 문제는 풀리지 않을 것이므로 그만 포기하라고 주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지가 않다. 해결되지 않는 일로 씨름하는 자는이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달리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반문하지 않겠는가. 읽은 책 속에서 그의 이야기를 길게 가져와 보았다.

사람들은 뭘 바라는 걸까. 나는, 도대체 뭘 바라고 그리 공부했던 걸까. 결국에는 방송대학교도 일본어 학원도 전부 그만둬버렸는데. 대신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쓰고 싶은 글을 썼는데. 예전에는 분명 대학에 대한 열등감이나 질투심이 있었다. 그래서 일찍 일해서 좋다며,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더 많이 배웠다며 일부러 주변에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 과장됨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옅어졌다. 내 삶에 집중할수록 다른 삶을 탓할 필요도, 비교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나는 회사에서 맡은 업무를 성실히 해 냈고, 대학과 학원을 그만 둔 후에도 방탕하게 시간을 보낸 적은 없었다. 운동을 하면 몸에 지방이 빠지듯,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며 마음의 군더더기를 걷어냈다. 더 이상 고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지도 않고, 캠퍼스 라이프에 대한 환상이나 동경도 없었다. 어쩌면 그제야 마음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 것은 아닐까. 눈에 보이는 효용과 이득에서 벗어난, 깨끗하고 맑은 부러움이 떠오른 게 아닐까. 나는 잘 모르겠다.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공부라고 부르는 것도, 그걸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목적도,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게 되는 계기도, 전혀 다른 환경에서 마주하는 똑같은 종류의 두려움도, 여전히 무엇 하나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우리도, 나는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나는 진짜 공부를 하고 싶었다. ‘진학이나 취득이나 학위가 아니라, 세상을 바르게 이해하는 언어를 배우고 싶었다. 같은 고민을 했던 이들이 마주한 진실을, 나도 조금이나마 엿보고 싶었다.”

고졸에 대한 무시, 열등감과 질투심은 서로 다른 것인 듯하지만 동전의 앞뒷면이며, 원인과 결과에 해당한다.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끝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면서 마음의 군더더기를 걷어냈다는 그의 말은 젊은이의 언어가 아닌 듯하다. 고통과 시련을 인내하고 깊은 깨달음에 도달한 이 청년이 진짜 공부를 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바른 언어를 얻고, 그래서 눈앞의 효용과 이득에서 벗어나 세상사의 진실에 도달하려는 그 희망이 가능할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어른들이 안내한 길을 착실하게 산 결과치고는 너무 비싼 값을 치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세상의 모든 일들이 자기 그릇만큼 이루어진다는 흔한 말을 맹신하지는 않으나 부정하지도 않는다. 교양 있는 노동을 꿈꾸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자존감을 지니고 자기 확신 속에서 일하고 공부하면서 세상의 일상에 참여하는 그런 사람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우리들의 희망이 아닐까 싶다. 취업이 되었든 대학 진학이 되었든 삶의 무게 중심에 자기의 목소리가 투영되어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누구의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의 결단으로 선택하고 행하는 것 말이다. 그리고 세상은 좀 변화해야 하지 않겠는가. 고졸이라 차별하지 말고, 그가 지닌 능력에 따라 공평하게 대우하는 세상으로 좀 변화해야 하지 않겠는가. 국가도 기업도 그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들도.

 

서평이랍시고 책의 내용을 요약하고 정리하는 내내 저자의 이야기를 다 들어야 하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의 이야기 중에 도드라져서 사회적 분노에 가깝거나 구조적이어서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이야기는 옮기지 않았다. 특히 노동 인권 개선이나 왜곡된 노동 정책에 대한 의견 개진 등은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이지만 지면이 감당하기에 벅찬 성격의 문제들로 다른 공간에서 얘기해야 할 것이어서 다루지 못한 것이 아쉽다. 다만 억압과 저항, 투쟁과 쟁취등 한때를 지배하던 이념과 구호들은 소통과 대화, 혹은 설득과 타협이라는 새로운 가치로 대체되고 있다. 이것이 마땅히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으나 이데올로기적 패러다임의 변화가 시작된 지는 오래되었다. 낡은 사회 구조와 조직들은 경직된 채로 웅크리고 있고, 그 속에서 비루한 인간 군상들은 여전히 기생(奇生)하고 있다고들 하지만 그것들은 서서히 바뀔 수밖에 없다. 그 변화가 시원찮고 느릴 뿐이다. 세상은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결국은 그 속의 구성원을 이루는 개인들이 부지런해야 하고, 창의적이어야 하고, 타자를 배려하는 등의 생산적인 모색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의 저자, 허태준 희망과 좌절이 크게 들렸다. 새로운 모색이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젊지 않은가. 청년으로서 세상 속으로 이제 막 첫발을 들여놓고 있으니 어른이 되려면 아직 한참 더 걸어 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남모를 상념과 상처가 깊을 수도 있겠으나 어쩌면 그것들이 그의 긴 여정에서 빛나는 훈장일 수 있지 않겠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에게 희망적인 말을 건네고 싶다. 환승역에 머물고 있는 그의 종착역이 아름답기를 바란다. 나의 이 말을 감상적이라고 하면 나는 또 이렇게 얘기하겠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한순간에 기적처럼 바뀌겠는가, 그럴 것 같으면 거대한 자본과 정치권력이 지배하고 부정과 부패가 판을 치는 이 세상은 아예 생겨나지도 않았을 거라고. 우리 주위의 누군가에 의해서, 누군가의 노력으로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조금씩 좋아지고 있고, 아주 조금씩 밝아지고 있다고 얘기해 주고 싶다.

<역린(逆鱗)>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를 시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으로도 알려진 정유역변을 다룬 영화다.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용상(龍床)에 앉은 정조가 노론 벽파를 비롯한 무능한 사대부들 틈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며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 속에, 정조를 섬기는 환관(宦官) 상책(尙冊, 왕의 서책에 관한 일을 맡은 내시부의 종4품 벼슬아치)의 입을 통해 인용되는 명문(明文)이 있다. ‘중용 23구절이다. 이 책의 저자가 살아가는 성실하고도 지극한 삶의 자세에서 느끼는 바가 있어 옮긴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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