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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
송정림 지음 / 달 / 2015년 12월
평점 :
아무것도 아니거나, 기적이거나.
내게 최고의 연애소설을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라 대답할 것이다.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유명한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생각하며 이 책을 읽는다면 다소 당황할지도 모른다. 가족과 부족의 연대기를 보여주는 『백년 동안의 고독』은 라틴 아메리카라는 장소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면,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마지막 1문장에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다고 느껴진다. 그 문장은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명백한 연애소설로 만든다.
연애소설이란 무엇일까?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을 보면 연애소설이란 사랑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사랑만큼 아름답고 가슴 떨리며 삶의 행복을 보여주는 것이 없다고 믿는 노인은 오두막에서 언제나 연애소설을 탐독한다. 노인에게 사랑이란 세상에서 가장 많은 것을 설명하는 감정이라면, 노인은 언제나 세상을 깊게 탐구하고 있는 셈이다.
송정림 작가의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 역시 사랑에 대해, 그렇게 세상에 대해 깊게 탐구해나간다. 작가에게 연애소설로 다가온 모든 소설로 연애와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랑은 보편적이기 때문에 진부하고, 그래서 이 책도 조금 진부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한 작품씩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스스로의 사랑을 정리하게 된다. 지나간 사랑, 지금 하고 있는 사랑, 앞으로 올지도 모를 사랑. 진부했고, 진부하고, 진부할 사랑.
이 책은 진부하다. 연애소설은 언제나 비슷한 면이 있듯이, 우리 삶 속 사랑은 사실 별로 기적적인 면이 없듯이. 하지만 박민규 작가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말했듯이, 특별할 것 없는 이들이 진부한 사랑을 계속 해나가는 것이야말로 ‘기적’이다. 운명처럼 다가온 사랑을 붙잡는 일은 당연한 일이지만, 일상과 진부함 속에서 사랑이라는 부조리면서 황홀한 감정을 만들어내는 일이야말로 모두가 할 줄 아는 진부한 기적이다. 그래서 이 책의 진부한 이야기들은 기적에 대한 설명이 된다.
사랑에 상처입었든, 사랑을 믿지 않든, 심지어 그 존재가 헛된 망상이자 마약이라고 믿든, 우리가 하는 진부한 사랑은 분명 기적이다. 그 행위들을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면, “아무것도 아닌” 과거의 사건들, 지금의 일상이겠지만 사랑이라 말한다면 기적이 된다. 우리가 하릴없이 지새웠던 어느 밤도, 사소한 일로 상처 받고 울었던 기억도, 헤어지고 나서 하는 쓸쓸한 후회들도, 기적의 파편이 된다.
송정림 작가는 그녀가 읽은 연애소설 속에서 기적이 될 수 있는 순간들을 발견해, 우리에게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