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인간
이석원 지음 / 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정말 사랑했던 사람하고는 영원히 못 헤어져. 누굴 만나든 그저 무덤 위에 또 무덤을 쌓는 것뿐이지.”

 

우리는 사람을 잊지 못한다. 기억을 잃어버린다. 언젠가 기억이 되돌아올 일을 만나면 자연스레 마음속에 어떤 사람이 되살아난다. 그 사람은 결코 기억의 합이다. 내가 살았던, 그리고 그 사람도 살았던 그 시간들이 모두 그 사람으로 남는다. 우리는 사랑했거나 또는 너무나 미워했던 사람들을 떨쳐내고 잊으려 애를 쓰지만 삶을 통쨰로 잘라내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나 한 때 마음속 깊이 들어왔던 사람을 잊지 못한다.

 

방세옥은, 김용휘는 누군가를 평생 잊지 못한 채 살아가야할 운명이다. 주인공 용우 역시 7년 간 만났던 지난 연인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지난 자신이 만든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특히 미친 듯이 책을 써내는 용휘는 자신만의 고집을 부리며 지난 사랑을 놓지 못한다.

 

어려서부터 남들 앞에 나서야 할 때마다 자기가 아닌 뭔가를 만들어 자신을 대신하게 하는 습성이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는 누구도 자길 봐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261

 

그는 이별의 이유를 자신의 초라함으로 생각한다. 자신이 사랑할 만한사람이 된다면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우습게도, 그가 그녀를 사랑한 이유는 그녀가 사랑받을 만한잘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닌데, 자신이 그녀와 헤어진 이유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는데, 그는 마주하고 싶지 않다. 자신에게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를 해결할 수 있다면 사랑은 돌아오고 자신 역시 행복해질 거라 믿는다. 무작정 믿는다.

 

용휘의 삶은 그 작은 맹점 하나가 좌우한다. 미친 듯이 팔릴 만한글을 쓰기 위해 애쓰고, 자신의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올라와 있지 않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자리를 유지하려 한다. 잊히지 않기 위해 질리지도 않고 책을 써낸다.

 

예나 지금이나 그가 믿는 사랑이란 오직 상대가 우러러볼 수 있는 무언가가 되는 것. 사랑을 놓치고, 그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책을 팔아도 그는 자신이 더 나은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265

 

그럼에도 그는 공허하다. 옛사랑의 그림자 끝도 보지 못한 채 머나먼 지평선만 바라보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길 끝엔 결코 사랑이 서 있지 않다. 그는 이미 너무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사실 그녀를 사랑하는 것인지, 사랑을 위해 사랑하는 것인지, 사랑을 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인지 모른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은 사랑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발버둥이다.

 

그는 어설픈 사람이다. 어디에도 가지 못한 채 글을 쓰는 실내인간이다. 자신의 마음 안에 갇힌 실내인간이다. 그는 어리석고, 멍청하고, 잘못을 저지르며, 잘생기지도 않았다. 어떤 면에서는 못나기 그지 없는 뚱뚱한 중년의 아저씨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의 어리석은 모습에 조소를 날리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어리석은 일을 하고, 그 일들로 생각보다 행복하게 잘 견뎌내며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어설프고 또 어설픈 사랑과 이별과 발버둥들로 방황하기 때문이다.

 

잊지 못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누굴 좋아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될 수는 없다고.“ 270

 

난 용휘도, 용우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답답하다. 그럼에도 그들이 하는 일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 나 역시 그들만큼 답답하지만 부끄럽지는 않으니까.

"잊지 못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누굴 좋아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될 수는 없다고." 2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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