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서 가능한 날들이었다
정기린 지음 / 달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사랑은 세계를 바꾼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순간 나의 세상은 그 사람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지나쳐갔던 일상의 순간들 속에 사랑하는 사람이 담긴다. 쉬이 지나치던 일들도 의미를 갖고 새롭게 다가온다. 어제와 같은 예사로운 햇빛에도 오늘은 마음이 설레고, 마음을 울적하게 만드는 차가운 비에 오히려 가슴이 따듯하게 젖는다. 세상은 이전까지의 의미를 잃어버려 우리는 사랑에 빠지기 전의 삶을 잊어버린다.

 

그러다보면 마음속에는 남들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우리는 그 사랑에 빠지기 이전에는 상상해하지 못할 마음들을 말로 하지 못한다. 말은 사랑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우리는 언제나 마음에 비하면 초라한 말들로 사랑을 이야기한다. 말은 언제나 사랑을 잡지 못한다.

 

정기린은 4년간의 사랑을 글로 풀어내기 위해 애쓴다. 그는 작가가 아니다. 그의 문장은 매끄럽지 못하고, 끊어져야할 순간에 이어지며, 닿지 못할 감정을 향해 부자연스럽게 뻗어있다. 거칠고 날것의 문장은 세련되고 다듬어진 작가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정기린의 문장은 어딘가 닿아있지만, 어디로 닿아있는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그게 사랑이다. 사랑에 대해 고민한 시간보다 문장에 대해 고민한 시간이 많은 작가들은 사랑과 문장의 괴리를 가장 좁혀온 사람들이지만, 정기린은 그 괴리를 누구보다 잘 보여주는 사람이다. 누가 이렇게 간결하지 않은 문장으로, 차마 이야기하기 어려운 솔직한 문장으로 사랑을 책으로 엮어냈을까.

 

사랑이 언제나 말과 멀리 떨어진 감정이라면, 우리는 당신이라서 가능한 날들이었다를 통해서 사랑에 다가가는 우리의 말들을 볼 수 있다. 정기린은 사랑을 하는 시간 속에서 느끼는 새로운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랑은 세상을 뒤집기에 사랑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그는 삶의 모든 순간들을 이야기해야만 한다. 사랑이 뒤바꿔놓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그렇게 정기린의 이야기는 사랑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넓어진다.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 그 모든 문장들은 사랑이라서, 당신이라서 가능한 말들이었다. 그의 사랑이기 때문에 가능한 순간들이었으며, 우리는 자신 역시 누군가로 인해 가질 수 있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그의 조금 낯뜨거울 정도로 솔직한 이야기에 수줍게 공감한다. 우리 역시 모두 다른 당신들에게서 받은 순간들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에 거리감을 느낀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의 말을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어떻게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우리에 가장 가까운 문장들을 낯설게 여기는지. 우리는 사랑을 이야기하기 위한 말들을 아직 제대로 적어보지 않은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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