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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평점 :
이 사람들은 정말 특별하다. 정말로 반짝반짝 빛난다. 주고 받는 시선에, 미소와 웃음에, 눈물과 터져나오는 울음에, 포옹과 사랑에 별처럼 반짝인다. 알코올 중독과 더불어 '정상적 수준'의 정신병을 앓고 있는 쇼코와 호모인 무츠키가 결혼을 한다. 이들은 결혼하라는 부모들의 성화를 견디다 견디다, 서로의 흠을 맞교환하여 결혼을 하였다. 여자는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아무 이유 없이 울음을 터뜨리며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하며 아침이고 밤이고 술을 홀짝거린다.
남자는 오로지 진실만을 말하며 지저분한 걸 싫어해서 시도 때도 없이 쓸고 닦으며, 쇼코의 진심을 몰라도 너무 몰라준다. 두 사람은 서로의 흠을 사랑하면서 자신의 흠을 미안해한다. 이렇게 궁지에 몰려 시작한 결혼이지만, 이들에겐 이 결혼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보금자리다. 어떤 위협이 닥쳐도 이 생활을 지키고 싶다. 무츠키에겐 곤이라는 남자 애인이 있다. 그는 이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내에게 말한다. '쇼코에게도 애인이 있어야 해.'
하지만 쇼코는 다른 생각을 한다. 무츠키가 너무나 따뜻하고 좋은 남편인데, 곤을 미워하면 무츠키가 떠나버릴까봐 차라리 그를 자기 삶으로 끌어들이기로 한다. 곤을 집으로 초대해서 함께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듣고 농담을 하고 밥을 먹다가, 정말로 곤이 좋아져버린다. 쇼코는 모든 것을 지키고 싶다. 곤을 좋아하는 무츠키도, 무츠키를 좋아하는 곤도, 그리고 두 사람 모두를 사랑하는 자기 자신도... 그녀는 산부인과에 찾아가 이렇게 묻는다. '곤의 정자와 무츠키의 정자를 섞은 후 제 난자와 수정하면, 그렇게 하면 우리 세 사람의 아이가 만들어지는 거 아닌가요?'
에쿠니 가오리의 글은 냉정과 열정사이의 로소편 이후 처음이지만 그 분위기는 변함이 없다. 마구 흐트러진 모습을 묘사하는 글조차도 이렇게 청결하게 느껴지는 건 무슨 조화일까? 이상하게도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군더더기가 없는 듯하다. 다들 잡티 하나 없이 뾰얀 얼굴에 군살 하나 없는 몸매에 주름 하나 없는 흰 셔츠를 입고 무중력 공간을 사뿐사뿐 떠다니는 것 같다. 밤도 햇볕 같고 어둠도 반짝반짝 빛난다. 아, 부럽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그녀가. 그리고 오늘 하루 동안 나도 게이 남편과 결혼해서 각자 평생 애인 만들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요상한 상상을 거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