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최근에 나온 책들(51)

 

 

 

 

최근에 나온 책들이 또 하나의 '방앗간'을 이루어놓은 탓에 몇 마디 남겨놓기로 한다(가급적 간단하게? 짹짹!). 가장 먼저 꼽을 책은, 나의 선호와 맞물려, 단연 데리다의 <정신에 대해서>(동문선)이다('정신에 대하여'보다 낯선 표현이군. '-에 대해서'란 책제목이 있었던가?). 동문선 책이라면 가급적 소개를 삼가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역자 박찬국 교수가 하이데거 전공자인 분이어서 번역상의 문제점은 최소화되었으리라고 믿어지기에 주저없이 소개한다. '하이데거와 물음'이란 부제를 갖고 있는 이 책은 데리다가 1987년에 개최된 한 하이데거 학회에서 발표한 내용이며, 내가 갖고 있는 영역본은 1989년에 나왔고 139쪽의 얇은 책이다(강연한 내용이므로 그만한 분량 이상일 수도 없다). 국역본도 177쪽이니까 '노멀'하다(하지만 20,000원이다).

역자도 후기에서 인용하고 있지만, (영역본 뒷표지에 실린) 하이데거 연구자 데이비드 크렐의 표현을 빌면 '하이데거에 관한 책으로서 우리 세기에 이만한 책이 또 나올 수 있을까? 데리다가 또 쓴다면 모를까'이다. 하이데거 전문가로서 역자 또한 거기에 전폭적인 공감을 표하고 있을 정도이니까 책의 의의에 대해서는 중언부언할 필요가 없겠다(일반적으로 하이데거는 데리다에게서 가장 중요한 철학자로 꼽힌다). 데리다는 하이데거와 관련하여 한번도 질문된 적이 없는 '정신(Geist)'의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하이데거의 철학은 해체/구축한다. 이런 '대결' 장면은 며칠전 이종격투기 프라이드 경기에서 표도르('효도르'라는 이름은 러시아어가 일어로 음역된 걸 다시 옮겨오면서 생긴 '괴상한' 이름이다)와 크로캅이 맞붙은 것만큼이나(나는 직접보지 못했지만 매니아인 후배로부터 생생한 '재방송'을 들었다) 흥미진진한 볼거리이다. 그런 걸 놓쳐도 좋은 삶은 또한편 나름대로 재미있을지 모르겠으나 내가 부러워하는 삶은 아니다.

데리다가 하이데거와 '한판' 붙는다고 하니까 하이데거에 관해서도 배경지식을 갖춰두는 게 좋겠다. 박찬국 교수의 소개서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동녘, 2004) 정도가 별로 부담없이 참조할 만한 책 같다. 내가 읽은 책으로는 조지 스타이너의 <하이데거>(지성의샘, 1996)가 번역도 훌륭하고 감동적이었다(비록 절판된 듯하지만). 하이데거의 저작으로 내가 언제나 추천하는 것은 <형이상학 입문>(문예출판사, 1994)이다. <존재와 시간>으로 막바로 들어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지만, 초보자라면 헤맬 가능성이 높다.  <형이상학 입문>은 그럴 때 아주 유익한 스파링 파트너이다. 하이데거의 '파워'를 슬쩍 맛보기로 보여주므로 맷집을 좀 키운 다음에 도전하면 되겠다.

 

 

 

 

두번째 책은 전방위 전업작가 장석주의 니체 읽기, <진리는 미풍처럼 온다>(북인)이다. 80년대에 잘나가던 출판사 청하의 대표로서 마광수 필화사건 때문에 옥고를 치르기던 했던 장석주는 청하판 니체전집의 기획자이기도 했다. 현재 간행중인 책세상판 전집이 나오기 전에 니체에 대한 목마름을 달래주던 10권짜리 전집이 그의 '작품'인 셈. 그러한 '열정'에 견주어 본다면 이번에 나온 250여쪽의 '니체 읽기'는 '미풍'에 불과해 보이지만, '한국에서의 니체'에 그가 끼친 기여는 언급해둘 만하다.   

사실 니체에 관한 책으로 보다 본격적인 것은 지난 여름에 나온 백승영의 <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자>(책세상)이다(저자가 7년 동안 집필했다는 이 책의 분량은 717쪽이다). 책세상 전집의 편집위원으로서 번역에 참여하고 있는 저자의 니체 공부를 중간결산하고 있는 듯한 책인데, 규모나 성취도 면에서 국내에서는 아직 이만한 책이 나온 적이 없었다. 니체 사망 100주기를 맞이하여 지난 2000년에 출간된 <니체가 뒤흔든 철학 100년>(민음사)는 한국 니체학의 수준을 정면에서 보여주는데('한국의 책 100권'에도 포함됐었다), 내가 '백승영'이란 이름을 처음 본 것은 그 책에서였고 1부 '니체의 생애와 사상' 파트를 도맡은 것으로 봐서 새로운 '강자'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그가 여성 철학자라는 건 최근에야 한 인터뷰를 읽어보고 알게 되었는데, 그의 독일 유학기 한 토막은 이렇다.

"니체를 공부하겠다고 한국에서 온 그녀를 절망케 한 최초의 인물이 바로 울리히 교수였다. 독일 사람에게도 어려운 철학자를 외국인이 어떻게 정복하겠는가, 그런 걱정이었다. 세 번의 퇴짜를 맞고서도 뜻을 굽히지 않자 그는 조건부로 승낙했다. '다른 책 보지 말고 니체의 책 전부를 달달 외우고 나서 다시 와라.' 독일어판으로 39권 분량인 니체 전집을 2년 6개월 동안 여섯 번을 읽어냈다. '죽을 것처럼 답답했어요. 참고서를 보면 쉽겠는데, 그 원서를 완벽하게 읽기가 쉽지 않아 울기도 수없이 했어요. 그 괴팍한 교수 때문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몰라요. 하지만 그럴수록 오기가 발동했어요.' 얼마나 읽어댔는지 어느 페이지 몇째 줄에 있는 ‘오자’까지 기억했다고 한다. 예전에 보이지 않던 니체가 보이기 시작하더란다. 학자로서의 삶의 일대 전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해서, 다른 건 몰라도 그 정도로 공부한 그가 니체 '전문가'라는 건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몇 권 읽고서 아는 체하는 '포스트모던' 연구자들과는 종류가 다른 것). 그런 그가 권하는 니체 공부법: "그녀가 학생을 가르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읽으라는 것입니다.'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이끌어줄 것 같았던 그녀의 일갈이다. 니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렇다면 주부들이 좀 더 쉽게 니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미안한 말이지만 읽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머리를 싸매면서, 고민을 하면서 이해될 때까지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에 니체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조금은 야박한 듯한 그녀의 권유는 은사의 교육법과 닮아 있다." 그러니 그저 읽어보시라!..

물론 니체가 (거의) 인생의 전부이고, 세상의 전부라면(그런 이들이 없지는 않겠다), 읽고 또 읽는 일을 마다하지는 않겠다. 한데, 어디 사정이 그러한가? 나 또한 '니체 애호가'로서 니체의 '위버멘쉬' 모티브를 중심으로 짤막한 책을 쓰기도 했었지만(제목은 <탱고레슨>이었고, 지금은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책이다) 다른 많은 책들을 무시할 만큼의 매니아는 아니다. 그런 만큼 얼마간 거리를 두고 니체를 (즐기며) 읽게 되는데(요즘 읽는 건 영역돼 나온 지아니 바티모의 <니체 입문>이다), 그런 독자의 관점에서 간혹 '전문가'들의 주장은 좀 오버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가령, "초인 사상이라는 말 들어보셨을 겁니다. 사실 이 말은 일본 사람이 번역한 말입니다. 대신 ‘위버멘시Ubermensch’라고 써야 합니다. 독일어 그대로 쓰는 거죠.”라는 저자의 주장에는(이건 책세상판 니체 전집 편집위원회의 결정이기도 한데) 동의하기 어렵다. 

허다한 철학용어들을 일본어 번역에서 갖다 쓰는 주제에 우리가 '일본 사람이 번역한 말'이라고 일방적으로 타박할 수 있을지 의문일 뿐더러('정신'은 어떻고, '주체'는 어떠하며, '사회'는 또 어떠한가?) 독일어를 그대로 쓰면 (아무런 오해 없이!) '이해'가 되는 건지 지극히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저자는 독일 사람들만큼 독어가 유창하다고 하니까 '위버멘쉬' 대신에 '초인'이란 말을 쓰는 데 이질감이나 거부감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일반 독자들도 과연 그러한가?(정 못마땅하다면, 김진석의 제안대로, '넘어가는 인간'으로 옮기는 건 불가능한가?) 그와 같은 논리의 연장선상에서라면, 니체는 (말 많고 탈 많은) 번역본으로 읽을 게 아니라 원어인 독어로 읽어야 한다(그런데, '위버멘쉬'로 읽는 독일 사람들이야말로 니체를 오독한 장본인들 아닌가? 그들은 '초인'이 아닌 '위버멘쉬'로 읽는데 어찌하여 니체와 나치즘의 불미스런 '연루'가 생겨난 것일까?). 해서,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을 우리는 신뢰할 필요가 있지만, 그렇다고 곧이 곧대로 다 믿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대충 주워듣는 우리의 무기는 전문지식이 아니라 '상식'이다).

상식적으로 알아둘 일. 데리다가 하이데거의 극복을 필생의 과제로 삼았었다면, 하이데거가 표나게 내세웠던 건 니체철학의 극복이었다. 하이데거는 4권 분량의 니체론을 썼는데, 그 중 한 권이 <니체와 니힐리즘>(철학과현실사, 2000)이며 역시 박찬국 교수의 번역이다. 니체, 하이데거, 데리다가 다 얽혀들어간 해석의 문제에 대해선 앨런 슈리프트의 <니체와 해석의 문제>(푸른숲, 1997)이 훌륭한 안내자이다. 번역도 좋다. 이 '해석'의 문제에 대해서는 김상환 교수의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창비사, 2002) 제2부도 참고할 수 있다. 슈리프트 이상의 훌륭한 해설이다.

 

 

 

 

 

세번째 책은 사드 후작의 <규방철학>(도서출판b). 이 책은 <안방철학>이라는 제목으로 한 차례 한국어로 번역된 바 있는데(나는 국립도서관에 있는 걸 복사했었다. 마광수 교수의 추천사가 붙어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소개에 따르면 거기엔 "책의 한 부분이 생략되어 있었다." 이번에 프랑스 문학 전공자가 상세하고 꼼꼼한 주석을 곁들여서 다시 옮겼다. 그래서 '완역비평판'이다. 목차를 보니 가라타니 고진의 해설도 말미에 붙어 있다. <소돔 120일>(고도, 2000) 정도면 분량도 분량이거니와 지루하고 부담스럽지만(사드에게서 '섹스'는 '쾌락원칙 너머'에 있다. 그러니 어찌 고통이 아니겠는가? 가령, 포르노 배우들의 '장시간 노동'을 떠올려보라. 누군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 300쪽 정도의 <규방철학>이라면 읽어볼 만하겠다(<규방철학>의 한 구절이 지젝의 <이라크>에 인용돼 있으며, 그 '오역'에 대해서는 모스크바통신에서 이전에 지적한 바 있다). 내 생각에 가장 좋은 사드 입문서는 분량으로 보나 집약성으로 보나 절판된 <미덕의 불운>(한불문화출판, 1987)인데, 이게 왜 다시 나오지 않는지는 좀 의아하다. 혹 사드가 생소한 분이라면, 영화 <사드>(1996)를 먼저 보셔도 되겠다. 좀 싱거운 영화이긴 하지만 '분위기'는 대략 파악하실 수 있으리라.





 

 

네번째 책(들)은 '1980년대 중국사상계의 대표적 인물'이라는 리저허우(리쩌허우)의 중국사상사론 3부작이다(이렇게 한꺼번에 나오는 건 '러시아식'만이 아닌 모양이다). 이전에 <고별혁명>(북로드, 2003), <역사본체론>(들녘, 2004) 등의 북리뷰들을 보면서 처음 이름을 기억해두게 됐는데(<미의 역정> 등의 미학서들을 갖고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중국학 연구자들이 이렇듯 공을 들여서 번역서들을 내는 걸 보면 필시 뭔가 있는 사상가이리라(이걸 언제 사둘 것이며, 언제 읽어볼 것이냐, 심히 의심스럽긴 하지만 이미지들을 늘어놓으니 보기엔 좋다). 그 이상의 내막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 좋은 리뷰들을 보았으면 싶다.

 

 

 

 

덧붙임: 리저허우의 <학설>(들녘)도 출간됐다. "'중국 사상계의 1인자', '중국 사상계의 4대 금강' 등의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리쩌허우가 중국의 전통사상(특히 유학)과 문화, 그리고 중국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찰한 책. 앞서 출간된 사상사 3부작이나 미학 3부작 등의 저술에서 드러내고자 했던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엮어 지은이 자신만의 학설을 세우고 있다."고 하는데, 230쪽 정도의 분량이므로 '입문서'로서는 딱인 듯하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되겠다.

 

 

 

  

중국학 책들을 소개한 김에 러시아쪽 신간들도 끝으로 소개해둔다. 먼저, 이 동네의 성실한 연구자 이장욱이 쓴 <혁명과 모더니즘>(랜덤하우스중앙). 부제는 '러시아의 시와 미학'이며, 20세기 러시아의 주요 시인들과 이론가들을 소개하는 걸 목적으로 한 책이다. 6명의 시인과 4명의 이론가 그리고 3가지 주의(형식주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모스크바 개념주의) 등이 다루어지고 있는데, '소개'를 목적으로 한 만큼, 품위를 유지하면서도 평이하게 씌어져 있다(잡지 등에 연재된 글들도 있기 때문에 어려울 수가 없다. '전문서'가 절대 아니니 오해들 마시길). 전공자들에겐 필독서가 되겠지만, 일반 독자들의 교양을 살찌우는 데도 유익해보인다.

사실 저자는 나의 친구이며 나는 이 책을 지난주에 우편으로 선물받았다(책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은 건 몇 달 전부터이다). 자주 만나는 형편은 못되지만 주변에 이렇듯 부지런한 친구들이 있다는 건 부듯하고 다행스런 일이다. 그의 책이 많이 나갔으면 싶다. 한편, 그는 시인이기도 해서 <내 잠 속의 모래산>(민음사, 2002)이란 시집도 갖고 있다. 최근엔 한 문예지에서 공모한 소설상에 당선되기도 했으므로 이젠 소설가까지 겸하게 됐다. 그의 비평문도 요즘 자주 눈에 띄는 걸로 봐서 아주 '작심하고' 쓰는 듯하다. 그런 의지와 재능을 반만 따라갔어도 내가 책 소개나 하고 있지는 않을 텐데,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그리고 지운다).

그리고 덧붙인 책은 우연찮게도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러시아연방 전 총리 프리마코프가 쓴 국제정치 비망록' <테러리즘과 세계정치>(램덤하우스중앙)이다. 소개에 따르면 프리마코프는 "현대 국제정치의 거물이다. 비록 그의 이름은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그는 옛 냉전시절부터 최근까지도 주요 국제문제의 이면에서 조언가로, 중재자로, 때로는 협상의 당사자로 가장 활발하게 움직였다. 그는 소련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지의 중동특파원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언론경험을 한 후 학계에 투신, 동방학 연구소와 세계 경제 및 국제관계 연구소의 소장을 역임했다. 2005년 현재 러시아 상공회의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푸틴 대통령에게 러시아 국정에 대해 자문하는 한편, 세계 주요 포럼과 토론회에 단골 연사로도 참가하고 있다."

작년 모스크바 체류시 간혹 언론에서 이름을 본 기억이 있지만 나는 그의 정치적 성향이나 뒷배경(마피아 연루여부 등)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책을 올려놓은 것은 그 '희귀성' 때문이다. 소위 '테러시대'에 테러리즘과 국제정세에 관한 책들은 그간에 많이 나왔지만, 러시아쪽 시각을 보여주는 건 이 책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체첸문제를 떠안고 있는 러시아도 테러리즘의 변방이 아니며(대략 7-10건 정도의 크고 작은 테러사건이 해마다 터졌던 것 같다)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무슨 '묘안'이 있는 건지 전직 러시아 총리의 의견을 한번 들어보자는 것. 사실, 누가 대신 읽어주면 좋을 책이다. 

뒤늦게 생각난 책 한권은 러시아의 민담연구가 블라지미르 프로프(쁘로쁘)의 <러시아 민담연구>(한국외대출판부)이다. 프로프의 책으론 이미 <민담형태론>(새문사, 1987; 예림기획, 1998)과 <민담의 역사적 기원>(문학과지성사, 1990) 등이 번역돼 있고, <웃음의 시학> 같은 책도 번역돼 나올 예정이다. 서사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는 <민담형태론>이 필독서이겠지만, 일반 독자나 고전문학 연구자라면 프로프의 민담연구서들은 그냥 편안하게 일독해봄 직하다. 물론 부피들이 만만찮지만...

05. 08. 31

P.S. 날짜를 적고 보니까 '그 여름의 끝'이군. 이젠 생각을 좀 해야겠다. 살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생각만 잘 하면, 어떻게든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살벌한 현실이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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