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의 공간 - 개정판
이정우 지음 / 산해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저자는 현대를 근대적 사유와 탈근대적 사유가 공존하는 시대로 파악한다. 사회의 한쪽에선 진정한 철학적 사유를 결하고 있는 사이비 지식인들이, 다른 한쪽에서는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믿음을 추종하는 신도의 부류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철학함의 중용을 이야기한다. 과학없는 철학은 맹목이며, 철학없는 과학은 공허라는 말에 드러난 그의 철학적 지향은 이 책을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이 책은 후기구조주의의 철학자 미셀 푸코에 대한 연구서이다. 우선 그는 1장에서 푸코의 철학적 작업의 기초가 되는 언표, 언표의 장을 개념적으로 정초한다. 2장에서는 푸코의 저작 <말과 사물>의 내용을 소개하며, 한 사회에서 합리적이고 실증적인 방식으로 체계화된 언어인 담론의 변환을 분석한다. 푸코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의 모든 담론들 - 과학의 문턱을 넘지 못한, 하지만 일정한 체계를 갖춘 언어들 - 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들을 필수적으로 요청한다. 즉, 그 담론들이 그 안에 위치함으로써 의미를 가지게 되는, 그러한 場이 객관적인 선험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는 한시대의 담론을 가능하게 해주는 무의식적인 인식체계로서의 '에피스테메'를 이야기하며, 시대의 담론을 가능하게 해주는 에피스테메의 변환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담론들이 서로 어떠한 관계를 맺으며 바뀌어 가는지를 흥미롭게 분석한다. 3장에서는 푸코의 고고학과 계보학을 현상학, 변증법, 해석학과 비교, 대조하여 분석한다.

주체가 세상을 인식하는 것은 오직 객관적 선험의 장을 통해서이다. 푸코는 주체철학의 오래된 사고틀인 주체과 객체의 이분법, 그리고 나름의 방식으로 둘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는 일련의 철학적 시도들이 무의미하다고 이야기한다. 이제 주체가 선행하고 주체의 관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체의 위치가 정해짐으로써 주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푸코의 인식론은 반주체적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해석학과의 비교를 통해 푸코의 작업을 더욱 입체화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극단적인 반주체주의에 경험이라는 요소를 도입하려는 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은 철학을 현대사회에는 무의미한, 단순한 개념놀음이라고 생각해왔던 사람들과, 푸코의 철학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는 독자들 모두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 특히 철학의 담론사적 변환에 관한 내용은 독자들에게 메타적인 차원에서의 철학에 대한 이해를 도와줄 것이다. 철학적 지식을 그저 나열할 뿐인 '철학과 교수'만이 있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철학자'가 부재하는 현상황에서, 저자는 이 시대의 철학함이 어때해야 하는가를 이 책을 통해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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