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걸까?'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따위의 생각은 내 생활을 피폐하게 만든다. 나의 생활은 아침에 일어나 소속되어 있는 곳에서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와야 할 것 만 같다. 그런 공식에서 벗어나 있는 삶은 불안하고 공포스럽다. 익숙하게 길들여져 온 것들로 부터 도망치는 것은 그리 쉽지않은 일이다.'사람들의 얼굴은 가설 무대에서 비치는 빛을 받아 환했고, 벌어진 상처에서 고름이 흘러나오듯 웃음소리가 입에서 솟아나왔다. 내가 점점 초조해져서 앞으로 뚫고 나가려 할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웃음을 터트렸고 더 빽빽하게 밀려들었다.'<말테의 수기>는 말테라는 청년이 세상을 보는 이야기이다. 책의 첫 줄에서부터 말테가 평범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예감이 들고, 몇 줄 더 읽어나가다 보면 이 사람은 백수일 것이라는 느낌도 든다. 나와 별다를 것 없는 이 한가한 사람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거기다 왜 뭔가 세세하게 관찰하고 이야기하는걸까. 말테가 서 있는 곳은 도시의 거리이다. 도시는 살기위해 몸부림치는 온갖 냄새들로 붐비고 있다. 그러나 도시 속에서의 삶은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로부터 떠밀려 사는 것이다. 대량생산된 사람들, 다를 수 없는 얼굴들은 죽음마저도 번호표를 받는 신세가 되었다. 도시는 사람을 길들이고 사람은 그 익숙함에 중독되어 보는 법을 잊어버렸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말테가 볼 수 있는 것을 볼 수 없게 된걸까?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어른이 되면서 세상과 타협하고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한 새로운 법칙을 인정하고 학습하게 된다. 그것은 사람이 만들어 낸 사고체계이며 좀더 편리하게 사회라는 구조를 움직이기 위한 것이다. 아이들은 어떤 체계에 의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물과 이야기 할 뿐이다. 그리고 거기서 들은 것을 그대로 믿고 인정한다. 대화에서 얻은 것들을 통해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 속에 새로운 세상을 펼쳐낼 줄 안다. 말테가 어린 시절 소소한 추억들을 늘어 놓을 때마다 나는 자연스레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지금의 나를 키워내었던 겁없던 눈 속의 세상. 그것은 아프던 더럽던 모두 애정이 묻어나는 것들이다. 그런 애정을 지켜 주는 것이 말테에게는 어머니 였다. 그러나 누구나 그런 애정을 어머니로 부터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내 밑 바닥에 나도 알 수 없는 애정을 심어 준 것들. 아버지나 형제, 사람이 아닌 동물,꽃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아직 사회 속에 길들여 지기 전 맹목적인 애정을 한번쯤은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또 그런 애정을 준 적도 있었음을. 이 애정이 비로소 우리를 살아있게 만드는 눈이 된다. 우리는 그 눈을 잊어버리고 있다. 그것은 하루하루 생활하는 것에는 불편이 없지만, 잠시 돌아오는 혼자만의 시간에는 알 수 없는 공포와 불안을 느낀다. 말테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도시는 텅 빈 사람들과 함께 죽어간다는 것을.하지만 밤의 긴 시간동안 말테의 꽁무늬를 쫒아 가다보면 잃어버린 애정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말테의 이야기는 산만하고 정신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둘러가는 것은 아마도 말테가 그의 뒤를 쫒아오는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을 눈치채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우리가 맡은 역할을 모르고 있음을 안다. 우리는 거울을 찾아 분장을 지워내고 잘못된 것을 없애버리고 진실해지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어딘가에 한 조각의 분장이 남아 있다. 우리의 눈썹에는 과장의 흔적이 남아있으며, 우리의 입술 끝이 삐뚤어져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다. 이런 상태로 우리는 돌아다니고 있다. 조롱거리이자 반쪽 존재인 채로, 진실한 존재도 아니고 배우도 아닌 채로.'책은 어둡고 음울한 길을 가고 있다. 하지만 순간순간 걸음을 멈추지 않는 말테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누구라도 자신만의 따뜻함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온전하게 어느것에 기울어진 삶은 없다. 단지 잃어버린 것을 포기하지않고 찾아가는 것이 소중할 다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