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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운 주체 - 정치적 존재론의 부재하는 중심 ㅣ 슬로베니아 학파 총서 5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성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5년 4월
평점 :
책을 읽으면서 왜 지젝이 매력적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지젝은 자신이 자주 인용하는 헤겔의 구절("이런 밤, 여기 실존하는 자연의 내부-순수 자기-는 환영적 표상들 속에서 주변이 온통 밤이며, 그때 이쪽에선 피흘리는 머리가, 저쪽에선 또 다른 하얀 환영이 튀어나왔다가는 또 그렇게 사라진다" 55쪽)에 나오는 언제나 존재하는 내면의 지옥에 관한 통찰을 결코 저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지젝은 우리는 여기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으며(왜냐하면 이는 현실 구성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벗어나서도 안된다고 말한다(왜냐하면 이는 현실 투쟁의 근거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지젝의 글은 나에겐 마치 너바나를 듣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커트 코베인은 미국사회, 미디어, 자본에 포위당한 상황 속에서 끊임없는 자기 파괴의 운동을 수행하였다. 마약을 하고 마지막 앨범의 타이틀을 "I Hate Myself, And I Want To Die" 으로 하려는가 하면, 마침낸 자살해 버리고야 만다. 그리고 동시에 우린 미디어가 이용한 것이 바로 커트 코베인의 바로 그러한 면이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수행했던 그 전투, 그가 전투를 수행한 방식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커트를 듣게 만든다. 그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부정성 속에 머무르면서 동시에 하나의 주체가 되는 것. 앞이 안보이는 자본의 세상에 살며 우리가 머무를 수밖에 없는 그런 부정성의 차원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커트 코베인은 정말 열심히 치르었다. 그는 마침내 어떤 정치적 효과를 만들었다.
문제는 이쪽에선 피흘리는 머리가, 저쪽에선 하얀 환영이 나타나는 차원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투쟁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아니, 지젝은 이 차원을 외면하지 않아야만 도대체 주체란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사변적 동일성이란 개념으로 그가 지적하려는 바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동일성 혹은 정체성은 자기 해체의 바로 이러한 차원 자체라는 것. 모순과 분열 없이는 어떤 주체도 사고할 수 없다는 것. 지젝은 그가 논박하는 사상가들이 바로 이러한 주체의 고통스런 성격(정신분석에선 죽음충동이라고 불릴)을 자꾸 없애버리려 하기 때문에 주체를 사고 할 수 없거나 거짓 주체를 내세우게 된다고 주장하는 듯 하다.
내 맘대로 해석해보자면, 지젝은 세상 속에서 고통받다 마침낸 우울과 냉소에 빠져버린 이들에게 고통을 어떻게 투쟁하는 주체의 탄생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 말하려 한다. 그건 물론 내면의 지옥을, 죽음충동을 가장 급진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고통이 있을지라도 자신의 열정을 배반하지 않는 것이다.개별 사상가들에 대한 지젝의 판단엔 유보적이지만, 너바나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가 전개하는 논변의 이미지가 매력적이긴 하다.
쉬운 문제는 아니며 쉬운 책도 아니다. 하지만 일부러 어렵게 쓴 책은 결코 아니다. 그러기에 읽어볼만 하다. 어려운 문제를 쉽게 써버렸다면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만은 그래도 좀 더 쉽게 논의가 파악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그래도 지젝은 내가 아는 한에선 사상가들 중에 가장 쉽게 글을 쓰는 편이다. 동의 못하는 부분도 많다. 하지만 그가 뭔가 핵심적인 것을 건드린다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