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TexTan > 엘리아데-안트로포스의 힘[수정]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엘리아데(Mircea Eliade)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어떤 계기로 인도로 가 켈커타 대학에서 다스굽타(Dasgupta)에게 인도철학을 배운다. 또한 히말라야 리쉬케쉬(Rishikesh)에서 직접 요가를 수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이 <요가>라는 책으로 나오게 되었는데, 인도 사상, 요가, 탄트라, 연금술 등 고금을 넘나드는 방대한 자료들이 그의 멋진 초점 역할을 통해 훌륭하게 한 권의 책에 투사되고 있다. 이 책은 예전에 우리나라에도 고려원(다르마 총서6)을 통해 잘 번역되어 나왔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절판 상태이다.      

 

 <요가(Yoga : Immortality and Freedom)>, 이 책과 중복되는 내용이 프랑스 세이유 출판사에서 나온 [성자  시리즈]  <파탄잘리(Patanjali)>에 일부분 담겨 있다. 이 책도 예전에 대원사에서 나왔는데, 역시 아쉽게도 지금은 구하기 어렵다.

언뜻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요가-불멸성과 자유-> 이 책이 내년에 재출간 된다는 얘기도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기다려 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다행히 나는 '요가'와 '파탄잘리' 두 권을 다 가지고 있다)

엘리아데의 책들 중에서 유명한 것은 <요가>는 물론 <성과 속>, <영원회귀의 신화>, <샤마니즘>, <이미지와 상징> 그리고 마지막 저작에 속하는 <세계종교사상>'까지 굵직한 것들이 많다.

 

 

 

 

 

                                                    종교형태론                                                성과 속:종교의 본질

 <성과 속(thr Sacred and the Profane)>에서 성(聖)과 속(俗)은 궁극적으로 이원적인 차원은 아니라고 엘리아데는 본다. 특히 과거 동양 종교나 원시 문화에서 일상의 생활과 성스러운 것이 일치됨에서 그 본보기를 들고 있다. 이것은 바로 탈신성화된 현대사회에 대한 우려가 깃든 시각일 수 있겠다. 또한 이 책에서는 신성한 것의 드러남이라는 '히에로파니(聖顯, Hierophany)'로 새롭게 역사를 읽으려는 모습도 볼 수  있다(이 책은 두 출판사 한길사, 학민사에서 번역되어 나와 있다). <영원회귀의 신화>'낙원에의 향수(The Nostalgia for Paradise)'라는 '회귀와 반복'의 힘이 맥박처럼 담긴 책이다. 부제로 '"역사철학 입문"을 넣고 싶었다고 엘리아데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데,  기존 역사철학에서의 직선적 시간관과는 다른 것을 시도하고자  했음이다. 그러나 책은 너무도 얇고, 치밀하고 논리적인 근거로 무거운 이탈을 하기보다는, 하나의 은유를 담듯이 부드럽게 나아갈 뿐이다. 엘리아데의 문학적 스타일은 그래서 때에 따라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괴테의 형태학(형태학의 원리는 연금술과 유사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엘리아데는 괴테에게도 좋은 자극을 받은 거 같다)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종교형태론>이란 책이 있다. <샤마니즘>은 <요가>와 더불어 하나의 주제를 가진, 거기다가 꽤 두터운 책에 속한다. 전에 이 책을 사자마자, 샤마니즘에 관한 책이니 우리나라 부분도 있겠지 싶어 찾아 본 기억이 난다. 그런데 딱 두 군데 총 몇줄로만 다뤄져서 괜히 서운했다. 잘 모르는 멀고 생소한 장소들의 이야기들이 많아 지루하지만, 엘리아데의 역량이 보이는 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엘리아데의 아버지에 대한 헌사로 시작하는(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해인 1952녀에 나온 책이다.) <이미지와 상징>은 그의 장기인 '상징'을 적당한 두께에 담아 놓은 책이다. 뒤메질의 서문에 이어지는 상징들은 요약하면 '중심', '시간과 영원(인도와 관련)', '매듭(결박)', '조개(그리고 진주)'이다. 내 느낌엔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서인지, 엘리아데 특유의 부드러움은 없고 좀 딱딱하게 읽었던 거 같다.

<세계종교사상사>는 정말 탐나는 책이다. 3권에 걸쳐 다루는 내용이 입을 벌어지게 만든다. 정말 있어야 할 책인데, 당장 사기엔 부담이 가는 가격이다. 더 관심이 가는 권부터 차근 차근 모아야 할 거 같다. <세계종교사상사 1 >는 '석기시대에서부터 엘레우시스의 비의까지' 부제가 달렸는데, 메소포타미아와 히타이트 그리고 차라투스트라 부분에 관심이 간다. <세계종교사상사 2>는 '고타마 붓다에서부터 기독교의승리까지'로 도교와 연금술,  켈트족 그리고 피타고라스와 오르페우스가 개인적으로 흥미를 돋군다. '무함마드에서부터 종교개혁의 시대까지'라는 부제의  <세계종교사상사 3>은 유목민의 종교, 성상 파괴 운동, 헤르메스의 전통 그리고 티베트 부분이 관심을 끈다. 그러고 보니 어느 권 하나도 떨치기 힘든 구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두꺼운 책들은 인터넷 주문보다는 직접 가서 사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 가끔 받아 본 책들 중에 제본이 잘못 됐는지, 펼치면 중간 어딘가 쫙 갈라져서 불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제목도 범상치 않으면서, 나의 호기심을 독려하는 책들도 있는데, <대장장이와 연금술사>, <메피스토펠레스와 양성인>이 그것이다.  뭔가 노골적으로 양성의 겹침과 융해, 그리고 신비주의 지식을 드러내는 제목이다. <대장장이와 연금술사>는 책표지도 그렇고, 처음엔 엘리아데의 소설책인줄 알았다.  이 책은 분량은 적지만, 다른 책들에 분산되어 있는 엘리아데의 원초적인 관심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연금술'만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다. 야금술에서부터 바빌로니아, 중국, 인도 등 연금술의 궤적을 그려내고 있다. 정말 흥미로운 주제의 책이 아닐 수 없다.   



<메피스토펠레스와 양성인>
은 책표지부터 범상치 않다.  메피스토펠레스를 대극의 합일을 염두해 두고, '음'의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살피는 그의 입장은 융의 심리학과 닮아 보인다(윗글에서 엘리아데가 괴테에서 받은 영향을 말했었는데, 융하고도 다정히 찍은 사진도 있는 것으로 봐선 꽤 교류가 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 괴테의 파우스트의 모습과 다른 메피스토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고 싶은 음지의 욕구를 자극한다. 엘리아데, 융 그리고 '양성인(androgyny)'에 대한 얘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존 카메론 미첼이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헤드윅(Hedwig)]에서는 원초적 형태의 양성의 행복한 결합체를 바라는 심정을 애니메이션 장면으로 매우 잘 묘사한다.

 

<융 심리학과 동양종교>는 '티벳 사자의 서', '요가' '易經' 등 융의 눈으로 동양 종교의 핵이 들춰진다. 융은 동양에 접근하는 수준 높은 노하우가 있지만, 엘리아데와는 달리 비판적인 거리를 두고 작업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엘리아데는 단일한 주제를 가지고 책 한권을 쓰기도 하지만, 여러 곳에 낸 짧은 글들이나, 혹은 시기적으로 분산된 글들을 한데 모아서 출간하기도 한다. <메피스토펠레스와 양성인>도 그런 성격의 글로 보이고, <상징 신성 예술>, <신화 꿈 신비> 등도 그러하다.

 

  <신화. 꿈. 신비>이 책의 표지가 심상치 않다. 서양과 동양 신비주의의 '심  볼'들이 층을 쌓아 거대한 축을 짓고 있다. '샤머니즘'이라는 책과 '영원회귀의 신화'와 비슷한 괘를 이루는 모음집으로 보인다.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가 누구지? 왠 일본인.. <상징, 신성, 예술> 이 책의 헌사 "시간을 초월하는 예술 세계를 지닌 이사무 노구치에게"를 보고 떠오른 생각이었다. 찾아보니 일본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조각가라 한다. 여기까지는 아 그렇구나! 정도였는데, 브랑쿠시(Constatin Brancusi)의 제자였음을 알고는 약간 놀랐다.  이 책은 다른 책들과 좀 다른 맛을 내는데, 예술(회화, 조각, 사원, 문학 등)에 관한 엘리아데의 미학관을 살필 수 있는 책이다. 다만 표지가 너무 단순하고 밋밋한게 아쉽다.

 

 

 

 

 

우리나라 학자의 책 중에서 엘리아데에게 빌려 온 시선이 느껴지는 책 두 권이 눈에 띈다. <엘리아데.신화.종교>는 독문학 교수의 책으로 앞부분은 신화의 일반성을 살핀다면, 뒤로 갈수록 엘리아데의 사상을 비평적으로 다루는 것으로 보인다. 는 엘리아데의 <우주의 역사 : 영원회귀의 신화>라는 책을 전에 번역하기도 했던 정진홍 교수의 책이다. 종교학자로 우리나라에서 많이 알려진 분인데, 이 책은 엘리아데의 주요 개념을 간략하게 집어내고 있다. 독자적인 저술 활동도 활발한데, '종교문화'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보여준다. 특히 우리 사회 현실과도 연관짓는 실천적인 태도도 엿볼 수 있다.

내 책장엔 엘리아데의 책이 제법 많이 꽂혀 있다. 첵에 주술을 부렸는지 당장 읽을 것도 아닌데, 그의 이름만 보고 산 책도 여러 권이다. 그 남자의 글에선 왠지 여성적인 아우라마저 느껴질 때가 있다. 글의 굴곡이 크지 않은 편이라 그 단조로움이 여러 심도 깊은 빛깔을 얌전하게 품고 있으면서도, 살며시 앉아 있는 듯이 보이기에 지루함마저 주기도 한다. 하지만 별거 아닌 내용이나 소재를 가지고 문체의 화려함으로 독자를 희롱하는 글보다 차분하게 곱씹으면서 그 단조로움 안에 깃든 빛나는 것들을 끄집어내길 기다리는 책들도 있을 것이다. 엘리아데의 책을 담금질 하듯 읽다보면 그런 연성효과가 나오지 않을까?

엘리아데는 소설도 꽤 많이 썼다고 한다. 우리나라엔 아마 <만툴리사 거리>, <벵갈의 밤> 정도가 소개된 거 같다. 그런데 이마저도 절판, 품절이라 구하기 어렵다(만툴리사 거리>는 대형 인터넷 서점에 아예 정보조차 뜨질 않는다). 그의 소설들도 번역되거나 재출간되어서 어떤 문학의 맛을 가졌는지 알려주길 바래 본다.   

 며칠 전에 엘리아데의 나라인 루마니아 영화를 봤다. 루시안 핀틸리에(Lucian Pintilie) 감독의 '떡갈나무(Balanta'1992)'라는 영환데, 우리한테 익숙한 유럽 영화하고도 뭔가 좀 느낌이 달랐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슬픔은 우연한 사건들(편집이 강약 조절 하듯 불규칙한 맛도 나는데, 그것이 이 영화에 생기를 주는 효과도 있다)에 의해 오히려 해학적으로 분산되면서도 결국은 어떤 하나의 과정(아버지를 위한 딸의 여정)은 끝마친다. 약간 에밀 쿠스트리차(Emir Kusturica) 감독 영화와 비슷한 느낌도 나는 거 같다. 어떻게 보면 엉뚱한 것들이 끼어들어 영화의 흐름을 산만하게 할 수도 있는데, 그것이 묘하게 하나의 활력에 이끌리듯 고비를 넘긴다. 대사 중에 흥미로웠던 건, 시골 마을에서 저녁에 주민들이 TV에서 해주는 한국 영화를 보러 온다는 부분이다. 엘리아데의 루마니아 그리고 한국이 겨우 겨우 하나의 점으로 만난 사소하지만 신선한 장면이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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