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지적 사기 -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은 과학을 어떻게 남용했는가
앨런 소칼, 장 브리크몽 지음 |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처음 읽었을 때는 단순히 프랑스 철학 혹은 사상의 현학성에 대한 재치있는 - 있기는 있다. 하지만 만족스럽지는 않다. 그리고 좀 따분한 느낌이 든다.- 과학계의 반격으로 읽혀졌었다. 그리고 다시 우연히 두 번째의 도전. 그리 어렵게 쓴 편은 아니다. 물론 소칼이 인용한 대부분의 프랑스 철학자들의 인용문이 이해하기 쉬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소칼이 의도하는 바가 '두 문화'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라고 보기에는 좀 부족해 보였다. 프리초프 카프라의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같은 경우에도 내가 보기에는 단지 현대 물리학의 개론서 정도로 밖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 제시된 카프라의 동양철학 지식은 아주 피상적인 수준이었고 기계적인 대비를 벗어나지 못했었다. 물론 소칼은 신과학과 괴델 불완전성 정리의 기계적 남용을 질타하지만 카프라의 경우에는 어떤 동양철학자도 그의 초보적인 동양철학 지식을 비난하지 않았다- 비난한 사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있었더라도 그 결과는 묻혀졌을 테고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신과학의 거두로서 찬양받는 카프라의 존재 뿐이다-.

이렇게 쓰면 일종의 묘한 편가르기 의식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나는 인문학에 비교적 편중된 독서 성향을 가졌었고 한때는 거의 맹목적으로 프랑스 철학을 마르크시즘에 이은 사상적 대안으로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이 책에서 소칼이 제시했던 몇 가지 점은 이해할 수 있다. 철학도 지역적 특성을 갖는다. 프랑스 혹은 대륙적 특징으로 이해되는 모호성과 독일의 국가적 특징으로 언급되는 비의적 난해함. 좋은 의미로 난해함이지 횡설수설에 가깝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펼쳐 들고 도대체 몇 장장을 참을성 있게 읽어 나갈 수 있었는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프랑스 철학이 비교적 기존의 독일철학과 달리 신선하게 보였던 것은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는 잡종성- 좋은 어감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난 마음에 드는 단어다- 에 크게 기인한다. 특히 고등사범학교 출신의 엘리트들이 설치는 프랑스 철학계에서 들뢰즈는 정말 정력적인 저술 활동을 보여주었고 그 점에 한국의 지식계가 매료되었을 줄로 안다. 하지만 들뢰즈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단지 여기서 내가 느꼈던 점은 또다른 '두 문화'의 충돌이다. 우리는 소칼에게 또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당신은 프랑스 철학을 얼마나 아느냐'고.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 간의 해묵은 논쟁이다. 이 무대에서는 물리학자인 스페셜리스트 소칼과 '잡종적인' 프랑스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여기서는 물론 철학의 본질이 언급된다. '도대체 철학의 학문적 분과성은 어떻게 정의되는가? 철학은 정체성이 있는 학문인가? 한마디로 '모호한'학문인 철학이 다른 사회과학과 예술 등은 건드려도 좋지만 분과(scientifical)학문의 총아이며 전문적 지식의 최고봉인 과학은 감히 건드려서는 안된다.' 이것이 '전문가' 소칼의 '권위적' 전언이다. 누구나 이런 태도에는 동의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실용성과 전문성의 두 토끼를 잡으며 현실적으로 최고의 지위를 누리는 자연과학이 내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자부심일 것이다. 이것을 일종의 시장 빼앗기라고 할 수 있을까.

최근의 이공계 논의에서 보듯 인문과학의 시장은 자연과학의 시장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사실 소칼의 '철지난' 도발은 내게 다시 철학에의 새로운 관심을 일으켜 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소칼의 화살은 프랑스 철학 자체라기보다는 좀더 과학의 지위를 상대화, 주변화시키려는 과학사회학- 블루어, 라투르, 머튼 등으로 대변되는- 에 직접적으로 겨누어지고 있다. 이들은 자연 과학의 중심적 지위에 좀더 직접적인 비판의 화살을 겨누고 있다. 한마디로 과학 지식의 증대는 필연적인 것도 아니고 어떤 특정한 집단- 물론 과학자 집단을 의미한다- 의 내부적, 사회적 역학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들 사회학자들이 사용하는 강력한 무기는 상대주의의 변형인 지식사회학이다. T.B.C.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