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라는 발등의 불이 떨어진 상황을 이해한다. 답이 있을 것이라고 혹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찾아 나선다. 우선 답이 될 수 없는 것들을 배제해 나가는 것이 빠를 수 있다. 그래서 지은이도 그렇게 한다. 지나친 조기 교육의 치명적 부작용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결과도 나열하지만 서문에 그가 미리 인정한 것처럼 우리 모두 해야하는 과제라고 혹은 본인도 찾고 있다고 말을 미리 한것처럼 한계가 명확하다. 그가 제시한 방법인 아이들의 행복에 답이 있다는 것과 애정을 듬뿍 담아서 주면 된다는 것도 현실이 힘든 아이를 바라 볼 수 없는 아빠의 반작용이 만들어 낸 믿음으로 보인다. 사교육이 사용하는 불안감 마케팅의 반작용으로서 방임교육이 사용하는 행복감 마케팅으로 읽힐 수 있다. 현실은 지옥도 유토피아도 될 수 있다. 대부분 그 중간에서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현실을 먼저 제대로 바라 볼 수 있게 만드는 교육은 결국 아이 하나 하나에 맞추어서 갈 수 밖에 없다. 관찰하고 교감하고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주어진 인간관계에 반응하며 해결하고. 불안 마케팅과 행복 마케팅이 아닌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부분은 한계가 뚜렷하다. 우리는 여전히 가르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