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개화기의 번역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놓고 두 사상가가 나누는 대담 형식. 그다지 읽을만한 내용은 없었다; 단지 19세기 메이지 시대에 이미 수천권의 번역서가 나왔다던가, 심지어 반정부적인 내용의 책까지도 정부에서 번역을 지원했다던가, 그 시절에 이미 영어를 국어로 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여기 대헤 논쟁이 붙었다던가 하는 얘기는 꽤 놀랍다. 대담자들은 일본이 중국과 달리 이렇게 빨리, 적극적으로 서구문물을 수용할수 있었던 이유를 '무가 지배하는 나라'였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무인이 지배햇으므로 싸움에 지면 바로 저쪽 것을 수용한다는 식의 유연한 태도를 가질수 있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