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큐레이터 분투기 - 미국 현대미술계를 이끈 여성 큐레이터 마샤 터커의 예술 같은 삶
마샤 터커 지음, 배은경 옮김 / 아트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미국에서 유대인 여성으로 태어났습니다.

12살 때 외모는 올챙이 배와 좁은 어깨, 비쩍 마른 팔,

가냘픈 안짱다리에 검은 색 뿔테 안경과 툭 튀어나온 앞니로 특징 지워집니다.

 

10대 후반에 사귄 남자 친구는 결혼을 앞두고 갑자기 징집되어 전사했습니다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사후 6개월만에 남동생은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했습니다.

 

다시 남자를 사귀고 결혼을 했는데, 결혼 1년도 안되어 아버지 장례를 치러야 했습니다

아버지 상중에 비참함을 견디지 못해 남편과 오토바이 여행을 떠났다 사고가 나서 다리를 크게 다치고, 한쪽 청력을 상실했습니다.

결국 남편과도 이혼을 했습니다.

 

미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재능이 없음을 알고 포기해야 했습니다.

취직을 했는데 같은 일을 하는 남자보다 월급이 반 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절망했습니다.

평생을 페미니스트로 살았고, 인권운동가에 반전시위 참가자를 자처합니다

암에 걸려 66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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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다녀왔습니다.

 

르네 부셰 등 유명화가의 비서가 되어 마르셸 뒤상 등과 만나기도 했습니다.

뉴욕 현대미술관 초대 관장인 앨프리드 바의 부인이자 미술사학자인 마거릿 스콜라리 바와

40년이 넘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20년 이상 최고의 친구로 지냈습니다.

 

뉴욕의 유명한 미술관인 휘트니 미술관의 최초 여성 큐레이터가 되었습니다.

큐레이터에게 최고의 영예인 바드 큐레이터상을 수상했습니다.

또 다른 뉴욕 최고 미술관 중 하나인 뉴 뮤지엄을 설립하였습니다.

뉴 뮤지엄 설립 후 젊은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하고 싶다는

74살의 젊은(?) 화가인 앨프래드 젠슨의 뜻에 따라 그의 작품전시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43살에 17살 어린 남편과 결혼해 딸을 하나 두었고, 평생 해로했습니다.

예순 살 생일에는 그 남편이 뉴욕대학교의 스탠드업 코미디 수업 등록을 선물 해 코미디를 배우고 클럽에서 공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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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대조되는 삶인가요?

그런데, 사실은 모두 한 분의 생애입니다.

 

아트북스에서 나온 마샤 터커의 자서전 “뉴욕 큐레이터 분투기”에 소개된 그녀 자신의 파란만장한 생애입니다.

원제는 “A Short Life of Trouble : 40 years in the New York Art World”입니다

그녀는 제목 그대로 분투하는 삶 또는 온갖 풍파를 다 거쳤습니다.

 

마샤 터커가 제일 좋아하는 미술가는 테칭 시에라는 대만 행위예술가랍니다.

(어떤 예술을 했는지는 책을 보시기 바랍니다.)

테칭의 작품을 통해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지난 25년 동안 나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 화가들의 경우 그들의 눈을 통해 이해하기 위해 – 노력해왔었는데,

불현듯 바로 그런 노력 때문에 내가 지난 25년 동안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회피했었고,

또 그런 회피를 ‘일’이라 불러왔다는 생각이 나의 뇌리를 스쳤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누구인지 이해하기 위해, 또 그것을 내 일과 연계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기 시작했다.

 

이 분의 신념이나 어록은 이런 것들입니다.

 

“가장 중요한 예술작품은 대답을 주는 대신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

 

“의사결정이란, 토론과 논쟁, 해명, 투표, 재투표, 추가 토론을 거친 후에

드디어 소수 반대자들이 심신의 피로를 느끼며 마지못해 포기하면서 하나의 합의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나를 받아줄 마땅한 단체가 존재하지 않으면 스스로 그런 조직을 만든다

그 일은 생각보다 쉽다.

 

“관습적인 사고방식은 우리에게 뛰어오르기 전에 매우, 매우 조심스럽게 살펴보라고 얘기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런 사고방식은 사실상 절대 뛰어오르지 못하게 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의 내 좌우명은 다음과 같다

– 먼저 행동하고 나중에 생각하라그래야 당신에게 생각거리가 생길 것이다.

 

“내게 있어 지금까지 배움을 통해서 얻은 가장 큰 보상은 ‘실수’였다

아니 어쩌면 실수라는 것은 아예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을 할 때에 있어 올바른 방법은 한 가지 이상이기 때문이다.

 

“최고 수준의 예술은 지금까지 소중하게 여겨왔던 가치관을 의심하고 우리로 하여금 선입견을 인정하게 함으로써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습관과 가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예술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변화시키며, 우리의 시각이 달라지면, 우리의 생각과 행동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뉴 뮤지엄의 성공에 대해서는 이렇게 평가합니다.

”우리도 우리의 힘든 노력으로 어떤 결과를 얻게 될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일을 했었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다만 그 결과가 좋게 나타나기를 바랄 뿐 그렇게 되리라는 100퍼센트의 확신은 갖지 못했던 것이다

희망은 필요하다노력은 절대적이다노력과 인내와 지지

그러나 우리가 일을 하는 모습은 마치 모든 것을 처음 해보는 사람들 같았다

사실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으니까.

 

책이 심각할 것 같죠.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책은 여기 소개된 것과는 달리(?) 정말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마샤 터커가 암으로 약을 타려 서있다가 심하게 기침을 하자 다른 사람들이 모두 걱정스럽게 쳐다 보았습니다.

기침을 그친 그녀의 말: “괜찮아요보기보다 심각하거든요”…

 

찰리 채플린은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고 했다고 하는데, 반대의 경우도 꽤 있습니다.

 

편집자인 리자 루는 회고록 작업을 하면서 마샤 터커를 더 알아 가게 되었다고 하면서 이런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나는 그녀가 대단히 원칙적인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끊임없이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거짓말을 하거나 자신을 속이는 일이 결코 없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든, 업무상의 배신이든, 자신의 단점이든 그 어떤 문제든 간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관심과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세상이 좋아지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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