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3년 - 건국을 향한 최후의 결전
조한성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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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분기점으로 생각되는 해방정국에 대해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단순히 이념논리에 빠져 선악의 흑백논리에 매몰되어 이 시대를 파악한다면,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문제를 정확히 짚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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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
이덕일 지음 / 만권당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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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누구나 책을 쓸 수 있고, 책에 들어있는 내용이 영양가가 있는지, 사실만을 담고 있는지는 독자가 판단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말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근거를 조작하여 타인을 비방하는 행위는 용서받을수 없다. 결국 이덕일은 지식사기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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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소담 - 간송미술관의 아름다운 그림 간송미술관의 그림책
탁현규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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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 연구원이신 탁현규 선생님의 저서이다. 잡지에 연재한 그림 중에서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그림들을 뽑아 책으로 엮었다. 간송미술관은 국보급 미술품들이 있는 최고의 사립 박물관이다. 설립자이신 간송 전형필 선생(1906~1962)은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민족 문화 수호라는 일념으로 막대한 사재를 털어 우리 문화유산을 사들이고 보존에 모든 힘을 쏟아부으신 분이다. 그 분의 그런 노력은 당대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쓸데없는 짓이라고 손가락질 당했다. 그러나 그런 시선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으신 까닭에 간송미술관이라는 위대한 박물관으로 남아 지금의 우리는 훌륭한 조상의 문화를 느낄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보면 글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수 있다. 마치 같이 제시된 그림들처럼 여백의 미를 많이 살리고 있다. 또한 문장의 호흡이 그리 길지 않다. 그림과 함께 제시된 이러한 글들을 통해 우리는 느릿느릿 그림과 글을 같이 감상하면서 동양화의 참 맛을 즐길 수 있다. 마치 간송미술관을 거닐면서 저자의 도슨트를 직접 듣는 듯한 효과를 누린다고 할까나(물론 저자의 도슨트를 직접 들어보진 못했다.)

동시대의 서양화와 마찬가지로 17세기 이후 동양화 역시 이전 시기의 다양한 소재를 표현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진 일, 그리고 풍경을 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불멸의 대가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들과 김홍도, 신윤복 등의 풍속화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옛 강산, 그리고 옛 문화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수 있다. 그리고 사람이 사는 것과 느끼는 것은 매 한가지라는 감상도 받는다.

부담없이 볼수 있는 책이지만 한번 읽는 책은 아닌 것 같다. 이는 마치 동양화와 같다. 보면 볼수록 더 매력이 넘치는 책이 될거 같은 느낌이다. 항상 옆에 두고 감상하기 좋은 책이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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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펭귄클래식 14
김시습 지음, 김경미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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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소설인 <<금오신화>>는 매월당 김시습이 쓴 단편소설집이다. 제목인 <<금오신화>>는 5편의 소설이 담겨서가 아니라 금오산에서 은거할때 저술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매월당은 생육신 중 한 사람으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초년부터 영명했던 매월당은 어린나이에 세종의 명으로 궁궐에 초청 받았을만큼 당시 최고의 영재로 주목 받았다. 그러나 계유정난이 일어나고 단종이 폐위되자 산사에서 공부하던 김시습은 서적을 불태우고 승려가 되어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시를 짓고 글을 쓰면서 세조의 시대를 강하게 풍자했다.

단편집 <<금오신화>>에 대한 이해도 이런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대체적으로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작가 자신이 현실 정치에서 이루지 못한 꿈, 성군을 보필하여 태평성대를 이루고자 한 목표를 죽어서라도 이루겠다는 강한 표현이다. 이러한 태도는 <남염부주지>에 두드러지는데 주인공이 염라대왕과 대화를 하면서 내세우는 강한 현실 비판은 혼탁한 세조 치세를 염두에 둔 것이다.

집권한 세조 정권은 매월당의 존재가 영 껄끄러웠다. 사육신처럼 직접적으로 정권 전복을 시도하지 않았지만 길거리에서 고관대작을 만나면 욕을 퍼붓고 세조의 명으로 열린 법회에서 스스로 똥물을 뒤집어 쓰면서 그 권위를 조롱했다. 유일하게 인정했던 세조의 신하 서거정의 비호가 아니었으면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머리를 깎고 승적에 이름을 올렸으나 승려도 아니고 유생도 아니었다. 평생 광인으로 살면서 세상을 풍자했지만 세상을 바꾸지 못했다. 태평성대의 총신이 되고자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매월당 김시습. 그의 생을 생각하면서 <<금오신화>>를 읽으면 더 마음이 불편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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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사 속의 고조선사
송호정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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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송호정 교수는 서울대 국사학과 출신으로 대한민국 고조선 1호 박사이다. 원래 부여사를 전공하려다가 지도교수인 노태돈 선생의 권유로 고조선사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개설서에서 부여사 집필을 맡을 때가 많다. 고조선의 송호정, 가야의 김태식, 발해의 송기호, 낙랑의 오영찬의 4인은 고고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한 연구가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하 존칭 생략)

송호정의 연구는 1980년대 초반 이후 학계의 위기의식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80년대 초반 전두환 독재정권(5 공화국)의 민족주의적 우민화 아래에서 <<환단고기>>가 대두되어 위대하고 거대한 한민족의 모습이 제기되면서 역사학자들이 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르는 광경이 연출되었다. 또한 80년대 후반 민주화 이후 북한의 연구 성과가 서서히 전파되고, 그 연구를 이어받은 단국대 윤내현의 파격적인 주장을 발표하면서 재야사학을 중심으로 대고조선론이 큰 성장을 이루게 된다.

 

반면 기존 학계에서는 고조선 자체의 논의보다는 고대사회의 사회상을 그려내는데 초점을 두고 있었다. 이는 육당 최남선의 신화학적 이해에 영향을 받았으며, 해방 이후 이병도, 손진태 등의 학자들에 의한 실증적, 인류학적 접근이 기반이 되어 형성되었다. 70년대 김철준은 서양의 사회발달 이론을 차용하여 한국 고대의 사회상을 그려내려 노력했다. 이후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신진화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한국사에 적용하였고, 고조선에 대한 사회적 관심에 자극받아 다양한 연구가 발표되었다. 90년대 북한 학계의 단군릉 발굴 발표와 맞물리면서 많은 고대사 연구자들이 한편 혹은 한권쯤은 고조선에 대한 논의를 발표하였고, 마침내 제 1호 고조선 박사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송호정의 고조선 연구는 문헌보다 중국 동북지역 및 서북한 지역의 고고학 유적-유물에 초점을 두고 있다. 상당히 두께가 있는 이 책의 대부분은 고고학 유적들의 분포와 그곳에서 출토되는 유물의 종류에 대한 설명으로 할애되어 있다. 저자는 이러한 서술을 통해 지리비정, 고조선 및 주변 종족과 그들에 대한 사회상을 그리려 노력했다. 우선 지금까지의 학설들을 점검하고 문제점을 지적한 다음, 문헌을 바탕으로 서쪽에서부터 동쪽으로 차근차근 짚어가면서 근거를 쌓고 그것을 토대로 자신의 주장을 펴고 있다. 결론적으로 요서지역은 서융 및 동호와 같은 이민족들과 고죽, 영지와 같은 상-주시기 분봉된 국가들이 위치했으며, 요동지역에는 예맥족이 활동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지만, 다른 문화권을 형성했으며, 중국 세력이 요서로 점차 확장하면서 그 문화적 자극을 받아 BC. 5~4c경 연맹체로서 조선후국이라는 사회집단이 성립되었고, 이후 연나라의 진개가 동호를 격퇴하고 요동을 점유한 후, 철기문화의 세례를 받은 서북한 지역의 연맹체를 중심으로 발전하여 위만의 찬탈 이후 한의 병위재물을 받아들여 주변 지역을 복속하여 사방 천리의 강한 연맹왕국을 성립했으나, 한의 팽창정책에 희생되었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전체적으로 많은 고고학 자료를 제시하면서 내용이 풍부해졌고, 삼국시대의 초기국가 제도를 설명하는 부체제를 고조선 역사의 해석에 적용하면서 고조선과 그 이후의 고대국가들과 연계성을 표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저자가 표지에 새긴 고조선사에 대한 과장과 확대 해석을 넘어서라는 주장에 상당히 충실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책의 두께와 저자가 제시한 많은 자료들에 비해 그 내용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 책에 대해서 중국 고고학 소개책자라고 비하한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라는 책을 지은 재야학자 김상태의 지적은 상당히 과장되어 있지만, 일견 타당한 면을 지니고 있다. 물론 이 책의 서술의도 자체가 요서지역과 요동을 포함한 서북한 지역의 문화적 차이를 규명하고 고조선 및 주변의 여러 민족들이 등장하는 문헌들을 통해 고조선의 정체를 파악하려 했기 때문에 요서-요동 지역 고고학 정보가 매우 중요하고, 현재 이 지역의 경우 중국의 영토 안에 위치하기 때문에 중국학자들 손으로 연구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저자의 연구는 아쉬운 점이 많다.

 

역사연구에 있어 고고학 자료의 활용은 매우 중요하며, 특히 저자는 고고학 자료에 대한 의존도가 기타 연구자들에 비해서 더 높은 편이다. 그러나 의존도가 높다고 해서 고고학 자료를 효과적으로 이용한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제시된 고고학 자료는 대체적으로 토기, 무기류, 장식품, 기타 도구들과 무덤양식에 대한 자료제시가 대부분이다. 이와 같은 고고학 유물, 유적에 대한 풍부한 자료제시 덕분에 요서와 요동-서북한 지역의 문화적 차이를 상당히 상세하게 볼 수 있었다는 점은 이 책의 장점이었다. 그러나 단편적인 자료제시 수준에 머무르고 있고, 비판적 수용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이 책이 그저 선사시대 및 초기역사시대의 중국 동북지역 문화에 대한 연구서이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고조선이라는 고대의 정치집단에 대한 책이다. 그리고 이 지역에는 저자가 언급하듯 다양한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미 기원전 12세기 이전부터 중국세력에 의해 정치집단의 존재가 인식되고 있었다. 이러한 다양한 정치집단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취락과 주거 유형에 대한 양상까지 자세히 파악하여 그에 적절한 이론적 틀을 적용시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러한 점이 부재하다. 단지 요서지역의 산융-동호 세력과 중국계 기후세력에 대해서는 문헌에서의 언급을 반복하며 단순히 규정하고 있으며, 요동-서북한 지역의 예맥-고조선 세력에 대해서는 삼국 초기의 연장선상에서 연맹체로 규정하고 그를 바탕으로 문헌상에 드러나는 한정적인 관직들을 토대로 고조선의 모습을 그려내려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책 곳곳에는 무리한 점이 드러난다.

 

고대국가의 모습을 그리는데 있어 서양은 물론 중국 역시 많은 결과물을 내고 있다. 이는 4대 문명과 신대륙의 문명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이들 이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도시(성시)의 형성이다. 도시는 인구가 집중되어 있으며 성곽과 해자로 둘러져 있고(물론 예외적인 곳도 있다) 거대한 제단을 통해 종교의식을 행했음이 드러난다. 도시의 발달과 국가의 형성이 동시에 일어난다고 말하기도 하는 만큼,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것은 도시의 흔적에 대한 것이다. 요서와 요동-서북한 지역은 상당한 규모의 성곽과 해자, 그리고 제단을 포함하는 유적들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유적들을 배제한 채로 책을 서술했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끝으로 이 책의 논리전개가 너무 단순하게 진행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고고학 자료와 문헌자료는 모두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크다. 특히 과거로 소급될수록 문헌은 물론 고고학 자료까지도 소략하고 모호한 면이 크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듯, 매우 단정적인 어조로 자신의 주장의 타당함을 피력하고 있다. 더불어 북한의 연구를 원용함에 있어서는 정치적 의도를 고려하여 제한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중국의 연구는 거의 무비판에 가까울 만큼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부주의함이 보인다.

 

결론적으로 송호정의 <<한국 고대사 속의 고조선사>>는 고조선 1호 박사가 낸 고조선 역사의 중요한 저작이고, 집필의도와 속에 담긴 다양한 자료들과 삼국시대와의 연결선상에서 파악하고자 한 시도에 있어서는 의의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고고학을 강조하면서도 깊이 있게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과 편협한 시각을 바탕으로 한 끼워 맞추기 식의 논의 전개는 상당히 실망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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