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김규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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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전부터 벼르고 벼르다 리디 셀렉트로 읽었다. 사실은 구글 플레이 도서로 소장도 해두었지만. 그리고 곧 종이책으로도 살 예정이다! 그만큼 사랑스럽고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은 책이다.


작가는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매우 평범한 직장인 여성이다. 남들 같이 연애하고, 돈을 벌고, 취미를 즐긴다. 단지 그 연애 대상이 같은 성별일 뿐이다. 그 자그마한 차이 때문에 작가는 미국까지 가서 혼인 신고를 해야 했고, 부모와 연락이 끊겼으며, 인터넷에 성소수자 관련 컨텐츠를 올렸다는 이유로 블로그를 차단당했다. 그러나 작가는 굴하지 않는다. 레즈비언인 게 어때서? 사회적 시선이 두렵다고 나 자신을 부정해야 하나? 이 책은 그런 작가의 성소수자로서의 삶과 연애와 결혼 이야기이다.


솔직히 이 작가, 매우 부럽다. 가장 부러운 점은 뭐니뭐니해도 작가의 자아존중감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이 작가가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작가는 학창시절 외국의 국제학교에 다니며 개방적인 친구들과 함께 생활했고, 성소수자에 대한 시선이 박하지 않은 회사와 만났으며, 무엇보다 본인의 성격이 밝고 뒤끝이 없어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 그런 성장과정 때문일까, 작가는 스트레스에 대한 높은 내성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와 슬플 수 있는 상황을 가볍고 재미있고 희망적으로 써내려갈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왠지 모를 쓸쓸함에 휩싸인다. 작가의 유쾌한 결혼 이야기에서 벗어나면, 현실이 보인다. 작가 부부의 부모님은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작가의 어머니는 작가의 성적 정체성을 부정하고, 작가의 아버지는 작가가 뉴스 인터뷰에 응하자 작가와 연락을 끊었다. 작가의 언니(와이프)는 부모님 모두와 연이 끊겼다. 가장 응원하고 축복해 줘야 할 부모로부터 마땅한 심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태인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에필로그를 읽은 후에는 답답함도 느꼈다. 작가 부부는 구청에 혼인신고서를 내러 간다. 반려될 게 뻔한 서류이다. 그런데 접수 후 불수리를 하면 되는 간단한 처리를, 구청 직원들은 큰일이 난 것처럼 허둥대며 대응하고, 처리에는 꼬박 하루가 걸린다. 이런 고구마 에피소드를 에필로그로 써서 뒷맛을 찝찝하게 하다니! 하지만 그것이 바로 작가의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도 프러포즈를 할 때는 김규진 작가처럼 기획서를 써야겠다. 물론 감성을 울리는 편지와 최고로 예쁜 반지도 같이 준비해서.

사람들이 내 얘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포털 사이트 메인에 뜨기도 했고, KBS 9시 뉴스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제 다음에는 뭘 할 거냐는 질문을 받았다.
"글쎄요……. 일단 내일 출근하겠죠?"
나는 차별을 뿌리 뽑을 히어로가 아니고, 여전히 매일 출퇴근을 해야 하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하필 동성애자다 보니 많이들 하는 결혼 좀 했다고 방송을 탔을 뿐이다.

재미도 있고 한편으로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을 기회이기도 했다. 스트리트 브랜드 오프화이트의 창시자이자 루이비통의 아트 디렉터인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는 옷을 만들 때 ‘3%의 법칙’이라는 걸 적용한다고 한다. 기성 제품에 3%의 변화만 주어도 독창적이고 새로워 보인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걸 예식에 적용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광경에 신랑・신부만 신부·신부로 바꾼다면? 생각만 해도 색다르고 재미있다. 또 동성 커플은 신비롭고 특이한 존재가 아닌 그냥 수많은 부부 중 하나일 뿐이라는 의미도 부여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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