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근대 150년 체제의 파탄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서의동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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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우리 세대는 기성세대로부터 '일본은 과학기술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왔다. 한국은 항상 일본의 그 웅장한(?) 업적과 비교당했다, 왜 한국에서는 일본 같이 노벨상이 안 나오냐, 왜 한국은 일본 같은 기술력 있는 제품을 못 만드냐 등등...


그런데 웬걸. 현재 일본은 저물어 가는 태양이다. 소니, 파나소닉, 도시바 등 쟁쟁하던 일본 전자제품 브랜드의 이름을 시장에서 못 들어본 지 오래다. 일본 브랜드가 만드는 스마트폰은 자국민조차 외면한다. 일본 기초과학의 인재라 불리웠던 오보카타 하루코는 논문 조작으로 매장되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제 일본은 블레이드 러너 속에 나오는 사이버펑크 일본 같은 80년대 버블기의 환상 속의 모습을 추억팔이하며 근근히 버텨가는 나라에 불과하다.


이 책을 읽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결국 일본도 속 빈 강정이었던 것이다.


일본의 과학기술은 제국주의와 맥락을 같이한다. 일본이 서양으로부터 과학기술을 들여온 이유는 딱 하나, 부국강병이다. 과학 연구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국력 상승의 수단으로 여긴 것이다. 그런 상태이니, 자연과학에 관한 연구는 뒷전, 혹은 보조적인 역할일 수밖에 없었으며, 사회과학과 같은 인문학적 연구는 아예 외면당했다.


세계대전을 거치며 일본은 총력전 체제로 이행하고, 기술 발전은 오로지 전체주의적인 목표만을 위해 행해지게 된다. 전쟁을 바탕으로 한 총력전 체제는 전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며, 일본 과학계와 기술 산업은 이에 대한 아무런 자성 없이 이번엔 국가의 경제성장을 명목으로 내달리게 된다. 


이 책은 메이지 시대부터 세계대전, 전후 고도성장기, 그리고 21세기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굵직한 근현대사를 망라하며, 일본에서 과학기술이란 어떤 의미였는지,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를 세세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과학 발전의 이면에 짓밟힌 서민들, 수탈당한 식민지 백성들 또한 조명하며 일본의 제국주의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전쟁 협력에 대한 자성 없이 오히려 피해자 의식만 드높인 점, 그리고 그런 분위기 하에 고도성장을 맞이하여 알맹이 없는 기술 지상주의가 된 일본의 세태를 꼬집으며,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이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증명한다.


읽고 나니 걱정되는 점이 하나 있었다. 현재 한국은 일본의 패턴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 한국 또한 군사정권 하에 경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기술 발전을 우선시하며 급속도로 성장해 왔다. 그 시절 생긴 수많은 부작용이 아직도 잔재로 남아 있는 지금, 우리는 바로 옆나라가 서서히 몰락하는 광경을 보며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을까.

이렇듯 메이지 시기 일본에서 과학은 기술을 위한 보조학으로서 학습됐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과학 교육은 세계관이나 자연관 함양보다는 실용성에 큰 비중을 두고 이뤄졌다. 이는 일본이 근대화에 재빨리 성공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일본 근대화의 바닥이 얕은 원인이기도 했다. - P61

어린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 구치소나 다름없는 기숙사에 들어간 농촌 출신 여공들은 열악한 조건에서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하며 신체를 소진했다. 노동의 가혹함을 못견뎌 도망치더라도 고향에 돌아갈 여비도 없어 작부나 창기로 전락하는 일이 많았고, 귀향해도 결핵을 앓다 죽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중략)... 메이지 시대 외화 획득의 우등생인 제사업, 일본의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방적업은 적어도 메이지 후반에는 둘 다 ‘울트라 블랙기업‘이었던 것이다. - P120

일본 근대화와 에너지혁명의 상징인 전신과 철도는 메이지 시대를 통해 중앙집권화된 신생 일본국 건설에 지대한 힘을 발휘했을 뿐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중국 진출을 위한 사람과 물자, 정보의 하이웨이 노릇을 한 것이다. - P145

거대 발전소의 전력은 콤비나트와 일본인 주택지에만 사용됐던 것이고, 토지를 빼앗기고 강제 이주를 당하거나 가혹한 노동에 내몰린 현지 조선인과 중국인에게는 어떤 혜택도 없었다. 에너지혁명에 의한 최신 화학공업의 발전은 한편으로 식민지의 자원과 노동력 수탈에 의해 지탱되었던 것이다. - P202

총력전에서는 국민을 인적 자원으로 간주해 물적 자원과 같은 차원으로 취급하면서 효율적인 "배치와 활용"을 지향한 만큼 사회 전체의 합리적 재편성도 필요로 했다. 야마노우치 야스시가 말한 것처럼 "총력전 체제는... 전 인민을 국민공동체의 운명적 일체성이라는 슬로건하에 통합하려고 시도했다. ...그것은 인적 자원의 전면적 동원을 위해 실시한 개혁이 사회혁명이 돼 여러 가지 제도의 합리화를 촉진했던" 것이다. - P265

물론 진짜 패인은 다른 곳에 있다. 제1차 대전에서 향후 전쟁은 장기지구전・물량전, 즉 장기간에 걸친 자원의 소모전임을 배웠을 터인 군부가 미국과의 전쟁에 나선 것은 단기 결전으로 사태가 바뀔 것이라는 주관주의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다시 말해 패인은 과학전 이전의 이야기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군인이 패배 책임을 과학기술에 지우는 것은 책임 회피나 마찬가지다. - P285

일본의 원자력발전 목적에 ‘우리나라의 안전보장‘, 즉 광의의 군사 목적이 포함된 것이다. 일본에서 원자력 개발은 경제만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정치와 군사・외교 문제였고 점점 더 그렇게 되고 있다. ...(중략)... 미래의 핵무장 옵션을 남겨둔다는 일본 일부 지배층의 생각을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면 안 된다. - P371

세계를 경악케 하고 일본의 ‘안전신화‘를 산산조각 낸 사고였지만, 국내에서는 하청기업의 특수하고 낮은 차원의 문제로 간주돼 충분한 교훈을 찾아내지 않고 일단락됐다. 하지만 극히 중요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JOC 사원의 ‘결사적‘인 움직임으로 20시간 걸려 임계 상태를 끝내는 데 ‘성공‘하면서 사고는 어쩄건 종식됐다. 하지만 이는 핵물질을 다루는 원전 관련 사고는 사고 대응과 주민 구조 과정에서 경우에 따라 ‘결사대‘가 필요하다는, 그때까지는 모두 눈감은 채 생각하지 않으려던 결정적인 사실을 제기한 것이었다. ‘결사대‘를 명령할 수 있는 조직은 군대뿐이다. - P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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