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얼굴은 바뀌고 있다 - 세계적인 법정신의학자가 밝혀낸 악의 근원
라인하르트 할러 지음, 신혜원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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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사로, 뉴스로 접하게 되는 범죄 사건들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일들로 가득합니다. 특히 친족 간의 살인이나 성폭행, 영아와 유아에게 행해지는 끔찍한 폭력 등을 접할 때 마음의 참담함은 말이나 글로 설명하기조차 힘듭니다. 그리고 그런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나와 다른 부류의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고 비난하곤 하지요. 하지만 <악의 얼굴은 바뀌고 있다>의 저자가 말하듯, 살인, 가정 비극, 인터넷 포르노 사진, 대규모 사기뿐만 아니라 '냉혹함, 거부, 냉대, 멸시, 모략, 억압, 이해심 결여와 순수한 이기심'으로 악의 모습을 확대한다면 과연 나는 악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악의 얼굴은 바뀌고 있다>의 저자 라인하르트 할러는 오스트리아 출신 법정신의학자로,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과 함께 감옥에서 지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성범죄자, 연쇄살인범, 테러리스트, 강도, 유괴범, 나치 범죄자 등의 범행 동기와 감정 상태, 범죄 과정, 그들의 인생사와 지금의 관점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고, 이후 300명이 넘는 살인 범죄자에 대한 연구 결과와 그 과정에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그는 악이란 부정적인 것, 나쁜 것, 파괴적인 것을 총괄한 개념이지만 쉽게 정의할 수 없으며, 그저 불충분하게 설명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종교적, 철학적, 심리학적 시각에서 시작하여 잔인한 구체적인 사건과 범죄자, 그의 상황과 심리-정서적인 상태, 그리고 이를 통해 알게 된 범죄의 동기나 범죄 행동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친 요소 등을 통해 악의 형태와 모습, 그리고 그 근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영상이나 신문기사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잔인한 사건들은 사실의 나열만으로도 충분히 자극적이었고 '정말 사람이 이럴 수 있는가' 질문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을 파고들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상황, 환경, 자라온 배경을 보면 '과연 그가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범죄는 유전자 한 가지의 문제가 아니며, 그보다는 유전자와 환경적 영향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발생된다는 것, 그리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성장 배경에서 보이듯 정서적인 결핍이 만들어내는 끔찍한 결과들, 더불어 저자가 말했듯 냉혹함, 거부, 냉대와 멸시, 모략과 억압, 이해심 결여와 순수한 이기심과 같은 형태의 악을 생각해볼 때, 우리들 중 자신은 악과 전혀 무관한 존재가 아니며 악한 사람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아무 관여를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아니 과연 있기는 할까 하는 마음에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구절, 저자가 소개한 프랑스 작가 쥘리앵 그린의 묘비문을 기록해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이 이야기가 내 이야기로 느껴질 때, 사람은 자신이 있어야 할 마땅한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요. 그리고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과연 나는 어느 자리에 있는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나는 이 세상에 혼자 있었고, 신은 자신의 아들을 아래로 보내 나를 구원하도록 십자가에 처형하셨다. 의아하고 불손한 말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이 아주 많은 기독교 신자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음이 틀림없다. 당신은 이렇게 물을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그를 재판받게 만들고, 그를 때리고, 십자가에 매달았는가? 오래 찾지 말라. 내가 했다. 그 모든 일을 내가 했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그렇게 주장할 수 있다. 그의 얼굴에 침을 뱉게 할 유대인이 손이 닿는 곳에 없다면, 내가 준비되어 있다. 그를 모욕하기 위해 로마의 관료가 필요하고, 그를 조롱하기 위해 군인이 필요하고, 시간이 끝날 때까지 매달려 있도록 나무에 못박기 위해 사형 집행인이 필요할 때 항상 내가 그 사람일 것이다. 내가 그 모든 일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런데 그를 사랑했던 젊은이는? 그것이 바로 역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비밀이다. 당신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이 젊은이도 바로 내 안에서 찾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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