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짝퉁 라이프 - 2008 제32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고예나 지음 / 민음사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책을 받아든 순간 귀엽고 깜찍하다 못해 가벼운 양장본 소설은 20대 초반의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책의 이미지였다.

책을 펴 본 순간 짧고 경쾌한 문장과 대체로 지루하지 않고 빠른 진행은 읽는데 두어시간이면 충분하다.

조선시대 기생 '황진이'의 이름에서 따온 주인공 '진이'의 시점으로 평범하고 지루하고 외로운 가짜 인생을 사는 20대의 이야기다.

어릴적 돌아가신 어머니, 그리고 '고무장갑'이라는 가명으로 나이트 클럽 웨이터로 20년 넘게 일한 아버지.

그리고 그 여자. (그 여자는 주로 집안에서 부딪히는 여자이다.)

삭막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메마른 현대 가정의 표본이었고, 대인관계 또한 그리 복잡하지 않고 얕은 관계로 꽤 오랫동안 유지해온 친구들이 있었다.

자유분방하고 꽤나 솔직하고 음담패설을 좋아하는 친구 B, 대학시절 처음 사귀었지만 남자친구의 유무에 따라 성격이 달라지는 이중적인 R, 언제까지나 친구이고 싶은 바보 Y.

 

그녀의 친구들과 관련된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나는 진이의 개인적인 관계나 이야기보다 B라는 등장인물의 동선을 따라가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고 본다.

섹스를 즐기고 넘치는 식욕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다이어트 약을 끊임없이 복용하는 B.

지금 살아가고 있는 내 주변의 20-30대 여인들을 보는 것 같아서 굉장히 친근하면서 이질감이 들었다.

그렇지만 당당하고 솔직한 면이 굉장히 부러웠던 그녀.

그녀의 솔직한 행동과 말들이 진이에게 진짜 친구라고 느껴지는 것 같았지만.. 결코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다.

 

끊임없이 연애를 추구하고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세상 모든 것으로 아는 R.

가끔 남자친구 때문에 기분이 좌지우지 되는데  정말 감당안되도록 진이의 내면은 은근히 괴롭게 하는 인물이었다.

R은 늘 쇼핑과 남자친구에 관해서만 진이를 찾고 진이에게는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귀찮고 관심없고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가는 진이에게 짜증나게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걷어차 버릴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내가 생각했을 때 우리가 말하는 대학때 친구, 말로만 친구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사회생활을 할 수록 진짜 친구보다는 가짜 친구가 많아 지는 것 같고, 내 주변에 많은 여자 친구들도 R과 진배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 Y는 진이에게 늘 웃음을 주려고 노력하는 귀여운 남자친구. (Just Male Friend!)

코빼기 만큼도 관심주지 않은 진이를 좋아하는 일명 바보.

외로움에 지치던 진이에게 힘을 주는 K라는 존재로 인해 진이에게 더욱 진지한 존재가 되는 Y.

개인적으로 그런 남자친구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파도 한점 없고, 물고기 하나 없는 호수 같았던 진이에게 가끔 산소가 되어준 존재..

Y를 끝까지 남자친구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를 떼어내지 않았던 그녀의 행동을 이해 할 수 있었다.

발칙하게 말하면 남 주기는 아깝고, 내가 갖긴 뭔가.. 석연치 않은 존재?

 

그리고 한때 너무나 열열히 사랑했던 그 사람.

잊을 수 없었고 지울 수 없었고 지독한 열병에 시달리게 해서 다시는 사랑하고 싶지 않게 만들어 버렸던 그 사람.

결국 바람같이 다가와서 사라져 버린 그 사람...

내게만 특별할 줄 알았던 그 사람은 다른 여자에게는 더욱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었던 사람..

 

 

 

그리고, 빨간 비디오 테잎을 장롱에 숨겨두고 문을 잠근 채 혼자 보던 아버지.

아무도 모르게 장례식장에서 만난 영정 사진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혼자 봤던 아버지......

늘 얼굴조차 모르던 엄마가 예뻤다고 말했던 아버지..

 

 

가볍고 경쾌한 문장 속에서도 전혀 심각하지 않고 잔잔한. 그래서 너무나 진부할 수도 있는

주인공의 삶.

그것은 나와 동갑이었던 작가의 삶이었고, 나의 삶이었다.

 

가짜 가족 속에서 가짜 친구들을 만나고 가짜 집이나 되는 냥 미니홈피로 나의 모든것을 표현하려고 하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 똑같다.

그 가짜를 우리는 누군가가 부러워하길 바라고, 그리고 그 가짜의 삶이 진짜인 마냥 우린 살아간다.

또한 그 가짜에 늘 외로워 하고 채울수록 더 허전해지는 삶을 살아간다.

끊임없이 먹고 몇회분의 다이어트 약을 한꺼번에 먹어치우는 B와 남자친구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어 수없이 많은 남자를 바꿔가며 사귀는 R  역시 외로움을 벗삼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친구에게도 애인에게도 우리의 외로움을 덜어줄 순 없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진이처럼 무척이나 독립적라서 일줄 모르지만, 실제로 많이 먹는다고 해서, 남자친구가 있다고 해서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세상은 나 혼자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가짜 인생이 아닌 진짜 인생을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일지 모른다.

모두가 가짜인데 나만 진짜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벅차고 어려운 일인가.

그렇지만 외로움을 이기고 가짜 인생이 아닌 진짜 인생을 산다는 것은 나만이 할 수 있고, 내게 남겨진 큰 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에도 나는 수천번을 생각한다.

특별한 사람이 되겠노라고.

하지만, 결코 남들이 특별하다고 말하는 그리고 남들이 부러워 하는 그런 삶이 내 삶의 해답은 아닐 것이다.

특별하다고 맘껏 생각하고 무조건 열심히 살자고 재촉하지 말자.

그저 세상이 재어놓은 잣대에 내 자신을 맞추지 말자.

가끔은 조금 다르게 가도, 내 삶을 조금씩 완성 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또 다시 생각한다.

특별한 사람보다 진이가 택한 특이한 사람이 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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