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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평점 :
<달과 6펜스>를 읽기에 앞서 '이번에는 어떤 책을 읽어볼까?'를 잠깐 고민했습니다. 마침 <마담 보바리>를 읽었던 탓인지 세계문학의 힘에 감명/감화되어 이 흥분을 멈추고 싶지 않아<달과 6펜스>를 바로 집어드는 객기를 부렸습니다. 다행히도 이 객기는 실패가 아닌 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실 저의 독력이라기 보다 서머싯 몸이 흥미로운 도입부를 시작으로 재미난 이야기를 전개한 덕택이지만.
<마담 보바리>와 <달과 6펜스>라는 두 권의 세계문학을 읽고 나니 불혹의 나이에 문학소년이 된 듯한 미친 차아도취가 일더군요. 미쳤지요. 그것도 확실하게 미쳤지요. 2주 동안 읽은 이 두 권의 책은 유흥과 저속한 쾌락에 빠져있는 평범한 한 샐러리맨을 자기도취에 빠지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있음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과장스러움이 조금 느껴지지만 어쨌든 글을 이어보겠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왜 제목이 '달과 6펜스인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그 궁금증은 책이 주는 스토리에 묻혀 어느샌가 사라져버립니다. 증권회사에서 일하는 40대 평범한 가장이 수많은 루머에 쌓인채 돌연히 그의 아내와 가족들을 버리고 떠난다는 강력한 호기심을 들게 만드는 이야기로 책은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단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평소 그에게는 화가가 되겠다는 꿈에 대한 동경도 없었을뿐더러(사실 밝히지 않은 셈이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서 그림에 대한 재능을 발견할 수도 없었지만 그는 처자식들을 버려두고 떠납니다. 그가 가진 재산들을 소유하지 않은 채...
그는 강력한 대답으로 떠난 이유를 말합니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대형서점에 깔려 있는 수많은 자기계발서보다 이보다 더 중요한 동기부여의 멘트가 있단 말인가?'
샐러리맨의 생활을 벗어나 1인 기업가를 꿈꾸고 있는 제게 이 대사가 주는 무게감은 상당했습니다.
그 페이지의 책장을 쉽게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비록 소설이지만 자신이 추구하려는 그 한 가지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몰입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내가 삶을 대하는 의식에 대한 일침을 해왔습니다.
<달과 6펜스>는 자신이 가진 예술에 관한 열정을 추구하기 위한 한 남자의 삶을 제3자의 인물을 빌어 추적하듯이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 소설입니다.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그림을 남에게 보여주지도 않을 뿐더러 화가로써의 명성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작가는 철저하게 예술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예술에 관한 열정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은 화가 고갱의 삶을 모티브 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고갱은 소설과 똑같이 말년에 타이티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 했지요. 이 소설이 출간된 이후, 타이티는 인기있는 여행장소로 주목을 받기도 했고.
시종일관 중반부까지 책은 주인공 스트릭랜드의 철저한 이기주의적 행동을 그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처자식을 내팽겨치고 갑자기 떠난 점이라든지 다 죽어가고 있는 자신을 간호해 치유시킨 부부의 가정을 파괴하고도 모자라 그 부인을 음독자살로 몰아간 점이 대표적으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예술적인 꿈을 쫒기 위해 제도화 된 규율과 일상에서의 관습에 지나칠 정도로 얽매이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예술을 추구하려는 그의 관점에서 본다면 얽매인 관습과 사회화 된 시선으로 그의 인간됨을 비난한다는 것이 다수에 의해 행해지는 폭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대목은 이 책에 대한 수많은 리뷰 중에서 가장 많은 이슈와 논란을 불러오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예술을 위해서라면 일상의 책임과 관계들을 모두 희생할 수 있는가? '
'또 그것이 정당한 것인가?'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들 말입니다.
사회 구성원으로써의 역할이라는 페르소나를 쓰며 살아가는 우리로써는 주인공 스트릭랜드의 행동이 달갑지 않게 느껴지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가진 기질과 비슷한 점이 많았는지 주인공의 입장에 많은 것이 동화되어 책을 읽었습니다. 사실 <마담 보바리>를 읽을 때도 주인공 엠마가 가진 욕망과 쾌락에 대한 동경이 내 안에 있는 것을 느낀 것처럼 말이지요.
네이버 캐스트에서 소개하는 <달과 6펜스>에서는 또 한가지 의미있는 해석을 곁들입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가가 극점에 이르는 과정에서 주변의 인물들이 다 미학적인 희생양이 된다는 점입니다. 20년 이상을 같이 살았던 전처는 속물의 전형으로 비춰지고, 같이 그림을 그렸던 동료화가는 사람은 좋았지만 화가로써 열정과 재능이 없는 한심한 화가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트릭랜드 본인도 문둥병이 걸려 마지막에는 눈이 멀면서까지 대작을 그린 후, 자신과 그림을 불태우게 합니다. 극단적인 예술의 모습이 경이로움을 넘어 소름이 끼칠 정도 처절한 열정에 내 감정이 동화되지요..
마지막으로 제목에 대해 이야기 하며 마치겠습니다. 달은 추구하는 꿈을 상징하고 6펜스는 현실을 상징합니다.
'예술의 세계와 일상의 세계는 과연 양립할 수 없는가? '
'예술가는 도덕과 관습으로부터 얼마만큼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일까'가 서머싯 몸이 <달과 6펜스>를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마담 보바리>에서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쾌락에 탐닉하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고, <달과 6펜스>에서는 '예술(내게는 꿈)을 추구하는 삶과 일상에서의 균형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고민하게 해 주었습니다. '내게 주어진 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인생의 화두를 소설 2편에서 진하게 배운 셈이지요.
책을 덮고 고갱의 그림을 감상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림을 천천히 감상하면서 아쉬움이 가득했습니다. 그의 열정이 가득담긴 그림을 전시관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모니터로 볼 수 밖에 없었음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