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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산들의 꼭대기
츠쯔졘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애초에 등장인물이 많다는 정보를 들었음에도
처음 포문을 연 청년 도축업자 신치짜의 이야기를 보고
이 사람이 주인인인가 싶을 만큼 매력적인 인물묘사였다.
일본인 어머니와 탈영병 아버지 사이에서 난 신치짜는
불명예스런 자신의 씨를 세상에 남기지 않기 위해
아이를 원하지 않는 여인을 찾는다.
신치짜와 결혼하기 위해 불임수술까지 한 왕슈만이었지만
아이를 너무 그리워해 멀리에서 남자아이 하나를 데려다 키운다.
그 아이가 개망나니로 자라 양아버지의 칼로 양어머니의 머리를 자를 줄이야...
왕슈만의 머리가 덩겅하고 짤리는 순간
아, 시작부터 이 분위기 어쩔...하며 난감해하던 찰나
장년의 로맨스라는 새로운 장이 펼쳐진다.
사형집행 사법경찰 안핑과 장례식장 염습사 리쑤전.
모든 사람들이 그 둘의 손을 두려워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아주었다.
마누라는 남편이 사법경찰임을 알고 히스테리를 부리다
난쟁이 아이를 낳고 집을 나가고
그 딸이 양모를 죽인 살인범에게 강간을 당하는 수모를 겪는데서
안핑의 불행은 끝나지 않는다.
리쑤전 역시 근육수축증으로 집에 누워지내는 남편을 부양하고자
모두들 꺼리는 염습사가 되어
오랜 세월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지만
그녀의 불행 또한 쉽사리 끝나지 않는다.
불행에 불행을 겹친 두 사람의 이야기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지만
남이 해도 로맨스를 만드는 장년의 러브라인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잇는 인물,
죽음을 점치는 신비한 난쟁이 안쉐얼이 있다.
난쟁이지만 신통한 능력과 기이한 행동으로
신성시되었지만 개망나니에게 범해진 후,
신화는 무너지고 신선은 인간이 되었다.
새로운 기쁨에서 행복을 찾아보려했지만
잃어버린 날개옷이 그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각 장으로 나눠지는 짧은 이야기들은
시간도 공간도 뒤죽박죽, 토막토막 끊어져 보이지만
정리의 달인인 소설가들이 그렇듯이 전부 하나의 이야기였음을
쉬이 눈치 챌 수 있다.
하나의 인물에서 주변인물로,
그 주변인물에서 그 가계도로 펼쳐지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치밀하고 매력적인 묘사로 그려내고 있다.
중국북방의 어느 가상의 도시를 무대로 한 이야기는
허구와 실제를 넘나들며 현재 중국이 겪고 있는
다양한 사회현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야기의 묘사는 매력적이지만 그 내용은 실로 처참하다.
짧지만 대륙의 스케일이 느껴지는
끝에서 끝이 아닌, 불행을 쌓은 이야기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