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시
바바라 오코너 지음, 이은선 옮김 / 놀 / 201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온 세상을 향해 소원을 비는 아이, 찰리.

 

이 어린이의 가족은

교도소에 복역 중인 쌈닭아빠,

우울증으로 만사가 귀찮고 짜증인 엄마,

친구집에 얹혀사는 이제 곧 성인이 되는 언니 재키이다.

 

그 이전에도 바람직하진 않았지만

더 이상 이 가정에서 찰리를 돌봐줄 여건이 안된다고 판단한

사회복지사는 찰리를 이모네집으로 보내버린다.

 

하루종일이라도 떠들 수 있을 것 같은 이모와

과묵한 이모부 내외는 찰리를 반겨주지만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어른들의 판단으로

낯선 환경에 떨어진 상황이 맘에 들지 않는다.

 

가령 1111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처럼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전수받은 다양한 소원타이밍마다

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소원을 빈다.

여태껏 소원이 이루어진 적은 단 한번도 없지만

언젠가 이루어질거라는 희망과 그 행위 자체가

불행한 아이가 하루하루 홀로 세상을 버텨내는 힘이 되어준다.

빌고 또 비는 것 말고는

힘없는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찰리는 떠돌이개 위시본을 보고

자신의 딱한 처지와 동일시하게 된다.

그리고 점점 위시본을 향한 마음이 커져

함께 살기로 결심한다.

떠돌이개 위시본을 잡기 위해

이웃집 마음 넓은 남자 하워드에게 도움을 받게 되고

찰리는 하워드가족의 온화함과 넓은 마음,

집안의 아이가 처음이라 서툴지만

찰리를 이해하고 따뜻하게 감싸주려는 이모부부의 마음을 알게된다.

 

매사에 퉁퉁거리리고 미운소리를 하지만

알고보면 상처받기 싫어서였음을

그것이 본심이 아니었음을 알아주기를,

그리고 지금껏 아무런 소원이 없던 하워드가 빌었던 소원이

한 번만에 이루어지는 것을 본 찰리는

자신이 수많은 날 동안 빌고 빌었던 소원의 해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샬러메인이라는 자신의 이름이 맘에 들지 않았던 이유는

불행한 집에서 사는 아이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 이름을 버린 순간부터 찰리의 가족은 다른 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스스로 불리기를 선택한 찰리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선택한 가정에서 행복을 다시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찰리가 더 이상 소원을 빌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아이가 된 것을 축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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