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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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무슨 생각으로 살고 있는 걸까...

고요한 밤의 눈이라는 제목을 보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아직 가을의 초입인 날씨 탓만은 아닌 듯 싶다.

가을치고 나는 너무도 추운 계절을 지내고 있으니

충분히 눈을 상상할 수 있었을텐데도

나는 눈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고요한 밤에 소리없이 내리는 눈이 아침에 일어나면 온 세상을 뒤덮는 일처럼

어딘가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눈들에 의해 세상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지 모른다.

 

비밀스러운 인물들의 은밀한 정신과 상담의였던 언니가 사라지자

언니의 흔적을 찾아 그 자리를 대신하는 쌍둥이 그림자동생 D.

병원에서 깨어나자 지난 15년의 기억이 사라진 X.

X의 감시원이자 그를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는 임무를 맡은 Y.

자신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중년의 보스 B.

창작지원금으로 겨우겨우 연명하는 안 팔리는 작가 Z.

 

이 이야기는 스파이들의 이야기이며 책에 관한 이야기이다.

보이지도 않고 누군지 알아서도 안 될 어느 윗분들에 의해

움직이는 스파이들의 자아찾기 운동같은 느낌이다.

그저 시키는대로 정확하게, 자신의 생각은 필요치 않은 일에

점점 자신의 생각이란 걸 하고 싶어진 그들은 도서관을 찾는다.

자신이 찾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면 절대 찾을 수 없고

미로 속을 헤매다 빠져나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곳.

그리고 각자 그들 사이에 떠도는 신기루 같은 책의 존재를 의식하기 시작한다.

 

p.144:6 그들에게 책을 읽을 여유조차 없는 삶, 시간에 쫓기도 돈 앞에 망설이는 삶을 살게 하는 이유는 상상을 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눈앞만 바라보고, 내일만 생각하고 심지어 오늘이 가장 걱정인 삶. 그래야 생각을 할 시간이 없다.

그들의 가장 큰 무기는 사색이다. 사색은 시간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모여서 내면에 관한 대화를 해서는 안된다.

 

p.146:5소설을 읽는 것은 무엇보다 재밌어. 그런데 그 재미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재미하고는 좀 달라. 너무 재밌어서 아무 생각이 안 나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뭔가 생각하게 만드는 재미가 있어. 어떤 작가들은 언제나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에게 지금 여기의 문제를 고민하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하고 있어. 그런 작가들은 본능적으로 문학이 어떻게 세상에 기여할 것인가를 알아. 게다가 작가와 독자는 스파이들의 암호보다 더 복잡한 코드로 소통하지. 그들의 연대는 그들이 직접 스스로를 드러낼 때까지는 알아내는 게 거의 불가능하고 볼 수 있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파이가 되어있고

그것을 의식할 수도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는 세상.

승자의 기록만이 남지만

패자의 기록 또한 어딘가에 은밀하게 남겨지고

소수의 깨달은 사람이 있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세상에 많고 많은 음모론이 있지만

취향에 따라 전혀 다른 장르로 받아들일 위험도 있다.

게다가 X의 기억이 사라지게 된 이유나

철통보안이라던 병원은 왜 그리 허술하고

사라진 D의 언니는 도대체 언제 찾을거냐며...ㅡㅡ

진실을 감추고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고 사는 이들의 이야기답게

여러 가지 단서와 암시를 흘려주지만

정확한 연결고리나 명쾌한 설명 없이 추측만이 모호하게 남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패자의 서의 정체와

스파이의 탄생에 다소 멍해진다.

 

p.310:1 기꺼이 패자가 되어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패자의 서는 정해져 있는 책이 아니다. 이미 쓰여져 있는 책이 아니다. 어떤 책이 패자의 서가 될지 모른다. 패자의 서는 앞으로 쓰여질 책, 우리 모두가 쓰게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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