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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안녕
로리 프랭클 지음, 황근하 옮김 / 시공사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천재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 샘은
자신이 개발한 매칭프로그램으로 단번에
그토록 소원하던 자신의 반쪽 메러디스를 만난다.
둘은 급속도로 너무도 완벽하게 서로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서로를 알아가는 짧은 사이
메러디스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샘의 사랑은 상실감에 너무도 힘겨워한다.
유아기에 일찍 엄마를 잃고
별다른 친척도 없이 아빠와 단둘이 퍼석하게 살아온 샘은
애착관계과 남달랐던 손녀와 할머니의 사이를 잘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랑하는 그녀가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슬퍼하는 모습에 자신의 능력을 살려(마침 백수라 시간이 왕창 많음)
할머니와의 작별인사를 도와주기로 결심한다.
할머니지만 할머니가 아닌 존재.
살아있지만 진짜 살아있지는 않은 존재.
하지만 할머니처럼 말하고
마치 어제 만난 사람처럼 친근하며
손녀와 손녀의 남자친구를 만나고 싶어하는 그 존재에
메러디스는 위안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또 한번 놀라운 발상을 하게 된다ㅇㅂㅇ!!!
이 기술에 감명받은 메러디스는 그녀의 사촌과 함께 쿵짝쿵짝해서
이 놀라운 기술을 여러사람에게 널리 알리는 ‘리포즈’ 살롱사업을 벌이는데
아...이거 괜찮을까...
역시 리포즈의 매커니즘의 이해부족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고
사업은 이런 저런 인권 어쩌구 불법 어쩌구의 소통에 휘말리게 되지만
고객들이 그럭저럭 활용방법에 적응하며
리포즈 행위 이외에 살롱을 방문하는 고객들 사이에서
산사람들 간의 유대감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들이 이별을 지연시키고
점점 더 죽은 자들을 놓아주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메러디스 역시 전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가상의 할머니를 삭제할 수도
그렇다고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던 와중에
그 일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메러디스를 위해 시작했던 일이
이제는 샘 자신을 위한 완벽한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영상 속 그녀는 리포즈를 너무 잘 이해하고 있었고
샘에 대해서도 너무 잘 알고 있기때문에 걱정을 한다.
그리고 샘에게 메일을 보낸다.
샘은 결국 아버지 말씀처럼
긴긴 세월 인간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원시적인 애도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의 사랑은 없지만 샘의 주변에는
메러디스가 곁에 두고 간 사람들이 있다.
메러디스의 부모님과 대가족,
아래층 할머니(곧 떠날 테지만)와 그녀의 여러 자식들,
그리고 리포즈 살롱 공동체.
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둘러쌓여 그 시간을 견디고 이겨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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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샘과 메러디스가 할머니의 가상 시물레이션을 만들고
더욱 정교하게 만드는 과정을 보는 첫 느낌은
얼마 전에 본 외신을 보며 했던 생각을 다시금 하게 했다.
사지가 마비되어 휠체어에 탄 사람과 함께 등장한 발표자가
이제 곧 인간의 머리(Head)를 이식할 수 있게 된다는 소식이었다.
리포즈를 이용하기 위해
병원에서 부모들이 짧은 인생을 마치게 될 아이들에게
메일을 쓰라고 울며 호소하는 이야기 역시 맥을 같이 하는데
뭔가 인류 역사상 획기적인 것이더라도
모든 사람, 모든 상황에 안성맞춤일 수는 없으며
잘못된 이해는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인간적인 면에서, 혹은 감성적인 면에서
할 수 있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에 대처하는 방법에
딱히 정답은 없음을 보여주면서도
나라면 어땠을까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온통 죽음으로 둘러쌓인 러브스토리였다.
p.52:12 “할머니라면 이건 다 일상용품이고 하셨을걸. 할머니는 좋은 자기를 특별한 날에만 쓰려고 아껴두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하셨을 거야. 특별한 날은 그렇게 자주 오지 않으니까.”
p.202:12 “그건 사랑에 빠지는 거랑 같아. 자기의 옛날 삶이 사라졌어. 그냥 훅......사라졌어. 이런 일이 자기한테 일어났고, 자기는 겉보기에는 똑같아 보이고, 생활도 여러 가지 면에서 똑같은 것 같아. 같은 집에서 살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직장에 가고 만나는 사람들도 거의 그대로야. 하지만 자기는 완전히, 전적으로, 돌이킬 수 없이 달라졌어. 새사람이 되었다고.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거지. 그러니 그 사실을 만방에 소리쳐 알리고 싶은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남들이 어떻게 알겠어?”
p.382:10 “아파해. 울어. 던지고 걷어차. 죽을 것처럼 괴로워해. 친구들과 가족들과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엉망진창인 기분을 더 느껴. 그래야 끝이 나는 거다, 샘. 아주 저차원적인 기술이지. 네게는 동료가 아주 많단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이렇게 애도해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