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얼굴
제임스 설터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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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독한 얼굴’의 이미지는 나와 시선을 마주하지 않은 채 생각에 잠긴 누군가의 옆모습이다. 그 옆모습은 젊음보다는 노년의 시간에 가깝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고유한 얼굴이랄까. 제임스 설터의 「고독한 얼굴」을 읽으면서 내가 볼 수 없을 나의 고독한 얼굴에 대해 생각했다. 혼자서 하는 인생 등반이 길어질수록 나의 고독한 얼굴은 고유한 모습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인간의 얼굴은 항상 변하지만 완전히 완벽해 보이는 순간이 있다.

그 모습을 갖춘 것이다. 그것은 불변의 얼굴이다.

p227




정상에 이르는 길

소설은 교회 지붕 위에서 일하는 일꾼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건강한 육체를 가진 두 명의 젊은이는 시간당 3달러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였다. 더운 여름, 지루하고 고된 노동의 장면에서 랜드의 영혼에 큰 영향을 미칠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다. 같이 일하던 게리가 지붕에서 미끄러져 떨어진 것이다. 다행히 게리는 랜드의 손을 잡아 추락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죽음의 위기에 놓인 사람을 구하는 일. 누군가는 이것이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이야기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위기에 놓인 사람을 구하는 일에 나의 안전이 보장되지 못하거나 그 일이 나의 성공에 장해물이 되는 일이라면 어떨까?

랜드는 교회 지붕 사건 이후 일관된 선택을 한다. 낙석에 부상을 당한 캐벗을 데리고 두뤼 등반에 성공했고, 드뤼에서 조난당한지 9일째 되는 이탈리아인 두 명을 구조하는 데 성공했다. 경찰과 산악 부대, 가이드 등 20명이 동원된 구조작업이었지만 그들이 선택하지 않았던 위험한 서벽 루트를 통해 가이드 구조대 보다 일찍 조난자들에게 도착할 수 있었다.

고독한 얼굴로 혼자 정상에 올라야 하는 인생 등반이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것이 무엇인지를 랜드는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저마다의 몽블랑을 가지고 있다. 각자의 몽블랑은 인생의 목표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몽블랑은 에귀유(aiguille)라고 불리는 눈에 덮여있는 크고 뾰족한 봉우리들이 있다. 에귀유는 100년 이상 산악인들을 끌어모을 만큼 정상에 이르는 도전 정신을 자극하는 요소인 동시에 죽을 수 있을 만큼 위험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인간을 도전하게 하는 삶의 목표 역시 에귀유에 둘러싸인 몽블랑처럼 저항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압도적인 것일지 모른다. 그런 인생 등반에서 정상에 올랐을 때 얼마나 행복할까?


커다란 산은 심상히 않다. 그것은 어렵고도 아름다워야 한다. 잊을 수 없는 여인의 이미지처럼 기억 속에 있어야 한다.

p90


그러나 정상에 오르는 과정은 쉽지 않다. 랜드가 등반을 앞두고 악몽에 시달렸던 것처럼 용기가 없어 정상에 이르지 못하고 실패하는 상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개인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과정뿐만 아니라 등반을 위해 좋은 날씨를 기다릴 수 있는 것과 같은 준비도 포함된다. 무심히 다가오는 구름, 바람의 변화처럼 중요해 보이지 않은 것들이 갑작스러운 폭풍우를 암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생 역시 중요해 보이지 않았던 작은 일들이 위험을 초래하는 경우가 있지 않던가.


등반 과정 중에서는 가장 어렵고 힘든 피치가 있다고 했다. 산이 무엇도 허락하지 않는 지점이라고 했는데, 살면서 어떤 것을 시도해도 계속 실패가 이어졌던 순간과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피치는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운 지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니 계속되는 실패에서 마음을 가다듬지 못해서 정신적으로 더 힘들었던 경험과도 닿아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을 누리는 기쁨

드뤼의 성공에 대해 세상에 알리자는 캐벗의 제안에 랜드는 “난 우리가 드뤼를 어떻게 올라갔는지 사람들이 알게 되길 원하지 않아, 우리가 해냈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해. 나머지는 그들의 상상에 맡기고 말이야.”(p121)라고 말했다. 요즘처럼 각자 채널을 만들어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시대라면, 정상에 오르는 자체보다 성공을 세상에 알림으로써 얻게 되는 이름과 그 이름을 통해 얻게 되는 부와 명예가 더 큰 기쁨일지 모르겠다.

우리가 타인의 성공에 함께 기뻐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험난한 몽블랑을 혼자의 힘으로 올랐기 때문이 아닐까? 정상에 올랐을 때의 기쁨은 그 성공을 세상에 알려 명성을 얻는 것까지 포함되는 일일까.


그는 자신이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할 것인지와 같은 일들이 설명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뭔가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가 많은 대가를 치르고 얻으려 한 지극히 가치 있는 단 한 가지는 방해받지 않고 혼자 나아가는 것이었다.

p121


캐벗과 드뤼 등반에 성공했던 때와 달리 두 명의 이탈리아인을 드뤼에서 구조한 뒤 랜드는 유명인이 되었다. ‘아름다운 미국인’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프랑스 언론에 얼굴과 관련 사건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랜드는 프랑스에서 유명인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인생 역시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 Il faut payer(대가를 치러야 한다.)

등반과 마찬가지로 인생 역시 정상에 오른 뒤 다시 내려와야만 한다. 정상에서 내려올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하게 내려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쉬워 보이는 지점에서 달리다 추락하여 죽은 사람도 있었고, 내려와야 하는 데 더 높은 곳을 오르다가 추락하여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도 있었다.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기 위해 도전을 해야 하는 경우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도전을 멈춰야 하는 경우를 판단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도전을 멈추기로 결정할 때 역시 도전을 감행하는 것만큼의 용기가 필요하다.


예전 같으면 쉽게 할 수 있었을 일이 이제는 위험했다. 몸이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서쪽에 구름이 있었다. 긴장되고 겁이 났다. 계속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어갔다. 갑자기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은 먼지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슴이 휑했다. 그는 돌아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바위는 용서가 없었다. 만약 집중력을 잃는다면 의지를 잃는다면 바위는 그가 살아남아 존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p230



랜드는 목표가 높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문제는 겁을 먹었을 경우라고 했다. 의지가 고갈되어 등반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즉 자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을 때 그는 도전을 멈췄다. 그리고 자신의 용기 없음으로 등반에 성공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세상에 알렸다. 우리는 랜드처럼 여기까지 해낼 수 있을까?


그는 가능한 한 말리까지 나아갔고 최대한 높이 올라갔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았다. 무릎이 떨리기 시작했고 떨어지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미끄러지기 싫어서 계속 필사적으로 홀드를 붙들고 싶었으나 그 대신 양팔을 활짝 펴고 얼굴은 하늘을 향한 채 성자처럼 떨어졌다.

p271


랜드가 폴라에게 했던 이야기를 나에게도 건네는 것 같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견디는 거예요. 두려워하지 말고."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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