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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문학동네 청소년 39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평점 :
과거의 은유와 미래의 은유, 둘은 서로 다른 시대에 속해 있다. 느리게 가는 우체통의 편지로 연결된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비슷한 소재의 영화가 생각났다. 영화 속 주인공들 역시 두 은유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서로가 다른 시대에 속해있음을 확인했다. 그 뒤 미래를 알 수 있게 된 과거의 존재는 미래를 바꾸기 위한 시도를 한다.
만약 이런 일이 나에게 생긴다면 나의 행동 역시 영화나 소설 속 주인공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일까? 후회라는 감정 때문은 아닐까. 내가 원하는 미래의 모습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할 것이다. 원인으로 지목된 선택과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원하는 미래에 도착했을 것이라는 상상을 근거로 우리는 후회를 하기 시작한다. ‘그때 그 선택과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다른 선택과 행동을 했더라면....’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에 적용할 수 있는 ‘후회 최소화 전략’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후회 최소화 전략’에 대해 생각하다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후회의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미래의 은유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지 않을까? 과거의 은유는 미래에 일어날 큰 사건, 시험 답안, 로또 번호 등의 정보를 이용해 더 나은 선택을 하여 후회를 줄일 수 있지만 미래의 은유는 과거를 안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택에 미치는 과거의 영향에 대해 생각해보니 미래의 은유도 얻게 되는 것이 있었다. 선택은 어떤 것을 하겠다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것을 하지 않겠다는 결정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만약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이나 잘못된 정보가 어떤 것을 하지 않거나 못하게 막고 있다면 과거를 재평가하는 작업을 통해 후회를 줄일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과거를 제대로 알고 재평가하여 현재의 내가 더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후회를 줄이려면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만약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지역, 언어, 종교, 시대에 속해 있다면 상대가 속한 세계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를 이해할 방법이 없다. 상대를 이해하려면 그가 속해 있는 세계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문법을 공부해야만 한다.
하지만 비슷한 우리가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각각 다른 하나의 세계라고 인정하면 어떨까? 서로의 유사성이 아닌 고유성을 전제로 받아들이면 서로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려 할 것이다. 미래의 은유가 과거의 은유에게 아빠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말이다. 미래의 은유는 할머니 댁에 가서 아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보면서 ‘마음만 먹으면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아빠 모습을 알 수 있다는 걸 왜 난 몰랐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다른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관심이 아닐까.
서로의 고유성을 전제로 받아들이면 상대가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더라도 크게 실망하지 않을 것이고 상대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딸이 원하는 모습의 엄마, 엄마가 원하는 딸의 모습이 아니어도 그 자체로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두 명의 은유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성장하고 있었다. 둘은 서로 다른 시대에 속해 있고 서로의 시간은 다른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미래 은유의 입장에서는 일 년 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과거의 은유에게는 열 살에서부터 시작하여 이십 년의 시간이 흘렀다. 미래의 은유는 과거의 은유가 보내 온 편지를 보면서 조금씩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했다. 언니(과거의 은유)를 포함한 세상 모두가 자라나는데 자신만 제 자리에서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고 머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스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것은 충분한 시간일지 모른다. 빠른 속도의 일처리와 즉각적인 반응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기억하고 되돌아보고 후회하고 더 나은 선택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 말이다.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후회를 최소화하는 더 나은 선택을 할 확률은 높아질 것이다.
두 명의 은유처럼 미래의 나와 과거가 될 현재의 내가 대화를 나눈다면? 과거의 나와 미래가 된 현재의 내가 대화를 나눈다면 어떨까? 이 역시 소중한 관계 속에서 후회를 최소화하는 선택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린 너무 많은 기적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사는지도 모르겠어.
엄마가 딸을 만나고 가족이 함께 밥을 먹고 울고 웃는 평범한 일상이 분명 누군가한테는 기적 같은 일일 거야. 그저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p217)
미래의 은유는 과거의 은유에게 2002년에 태어나는 자신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같은 세계에 속해 있을 때 서로 만날 수 있다면 과거, 현재, 미래 속에서 계속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비록 이 부탁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둘은 계속 연결되어 있다. 편지가 그랬던 것처럼 세계를 건너 은유에게 도착한 은유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은유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은유가 있다면 둘은 계속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여태까지 알지 못했던 커다란 세계가 쿵쿵대며 다가왔던 순간, 온 세계를 기다렸던 그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후회를 최소화할 수 있는 더 나은 선택을 하여 인연을 계속 이어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