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 황교익의 일과 인생을 건너가는 법
황교익 지음 / 김영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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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먹고는 산다, 황교익의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맛컬럼니스트라는 신선한 타이틀과 함께 어느날 방송가에 나타나 많은 관심을 받았던 황교익은 다양한 논란을 낳기도 하고, 또 본인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당장 인터넷에 황교익이라는 이름을 검색만 해도 그에 대한 옹호부터 비판을 넘어선 비난까지 황교익이라는 사람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출간된 그의 저서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를 읽기 시작했을 때, 내 독서의 주된 목적은 황교익이라는 사람에 대한 탐구였다. 그가 지금껏 어떤 인생을 걸어왔고 그 과정에서 어떤 생각들을 했으며 하고 있는지 황교익이라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책을 펼쳐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갈수록 소기의 목적은 점점 잊어버리고 저자인 황교익이 아니라 독자인 나, 이제 곧 사회로 나가야 하나 그러기 어려운 시국을 만나 갈팡질팡하고 있는 청년인 나의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왕도(王道)를 걷지 않은 자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

 

"그 대학에서 그거 전공하면 어디에 취직을 하는데?"가 입시를 앞둔 내 자식에게 던진 첫 질문이다. 부모가 나에게 했던 "월급쟁이가 최고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말이다.

내가 부모가 되고 나니 "워급쟁이가 최고지"라고 했던 부모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자식이 고생하는 것을 부모는 참지 못한다. 가슴이 미어진다. 이건 동물적 본능이다.

독자 여러분은 내 자식이 아니다. 내 자식 같은 젊은이들이다. 반은 부모의 마음으로, 반은 인생 선배의 마음이다. 그러니 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부모 말 듣지 마라. 부모가 보았던 세상이 앞으로도 똑같이 전개될 확률은 제로이다. 부모가 안정된 삶이라고 생각하는 직업군이 앞으로도 안정될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공무원과 교사가 당장에 안정된 직업이라고 하여 노량진에 몰려드는 것은 바보스러운 일이다. 떨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마라. 공무원과 교사 시험 문제를 보라. 그건 죽은 지식이다. 사회생활 하는 데에 아무 쓸모가 없다. 시간이 아깝다. 넓게 보라.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이 있을 것이다.겁내지 마라. 그 길로 가라. 그 길이 공무원과 교사 되는 길보다 훨씬 쉬울 수도 있다. 아무도 가지 않아 사람들이 모를 뿐이다. 부모가 반대하면 그 길이 맞다. 그 길로 가라."

 

저자는 자신도 부모로서 자기 자식에게 본인이 걸은 일반적이지 않은 길, 남들이 의문을 가졌던 길을 그대로 걸으라고 하지는 못한다고 솔직하게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같은 청년들인 독자들에게 당당하게 '다른 길을 가라.'고 조언할 수 있는 이유는 그러한 인생 철학을 관철함으로써 특출날 것 없었던 자신이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음을 스스로의 인생을 통해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률 속에서 생존하고자 다들 대졸자대기업 혹은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왕도를 걸으려 해 그 왕도의 가치조차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그래서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는 이 사회의 청년들에게 필요한 쓴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먹고는 산다

 

1980년대 대학진학률은 30%였다. 당시에 대학을 가려면 실력보다는 돈이 있어야 했다. 서울의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실력인데도 장학금을 받기 위해 지방대에 간 친구도 있다. 도저히 대학 갈 실력이 아닌데도 명문대에 갈 수도 있었다. 돈이면 가능했다. 불공정하기로 따지면 그때에도 만만치 않았다. 2000년대 이후 대학진학률은 80%이다.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하지만 교육의 기회는 86세대에 비해 넉넉하게 주어지고 있다. 대졸자가 많으니 똑같은 대졸임에도 사회적 대접이 예전만 못하다. 옛날에는 대학만 나오면 취직은 어렵지 않았는데 요즘은 대학을 나와도 취직하게 어렵다는 것은 학력 인플레에 따른 착시가 일부 작용한 결과이다.

 

(중략)

 

나는 한국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화할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빈부의 격차는 더 심해질 것이다. 불공정한 게임도 지속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극소수의 세계적 부자를 탄생시킬 것이나 그 외의 사람들은 그냥저냥 살 것이다. 크게 성공하는 꿈을 꿀 수는 있다. 다만 자신의 꿈에 치이지는 말아야 한다. 꿈이 크면 걱정도 크다. 그렇게 해서 행복해지기는 어렵다. 어떻게든 먹고는 산다. 너무 애쓰지 마시라.

 

저자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라는 강요는 하지 않는다. 또 청년들에게 당장 어떻게든 먹고살 길을 찾으라고 채찍질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이야기를 참고하되 그것이 부당하게 들리거나 당신의 가치에 반한다면 반면교사로 삼는 것으로 좋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어떻게든 먹고는 산다. 너무 애쓰지 마시라.' 고 말하면서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자 제목인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저자 스스로 한 발짝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먹고살 길이 정해지지 않아 막막한 청년들. 조급한 마음에 자신의 책을 펼쳐든 그들에게 저자가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은 너무 무리할 것 없다는 것. 조금 긴장을 풀어도 당신은 당신의 방식대로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담담한 위로가 아니었을까.

 

*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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